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24b0d121e09c28a8699fe8b115ef046c65f62b4d9d


불타면 알아서 자삭함


*


미국의 정치가 돈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그 돈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체계적으로, 그리고 얼마나 압도적으로 작동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뿔뿔히 흩어져 어떤 목표를 위해 모여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다시 조용히 사라지곤 하는 돈. 이스라엘 로비는 바로 이런 식으로 동작한다. 물론 이것이 유대인이 미국을 지배한다는 음모론 이야기는 아니다. 미어샤이머와 월트가 몇 번이고 강조하듯, 이스라엘 로비는 합법적인 영역에서, 다른 모든 로비가 그렇듯 동작한다. 그러나 그 돈과 능력은 다른 로비를 압도하며, 대통령1)조차 이 로비를 막는 건 거의 불가능한 듯하다. 그리고 이 로비의 유능함과는 별개로, 로비가 미국은 물론이고 이스라엘에게도 그리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것이 <이스라엘 로비>의 핵심이다. <이스라엘 로비>는 이 로비를 해체하는 동시에 로비의 수많은 악영향을 사람들의 눈앞에 늘어놓고자 한다.



<이스라엘 로비>는 먼저 미국이 이스라엘에 제공했거나 제공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보여준 뒤 이것이 미국에 이득도 되지 않고 도덕적으로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니라는 걸 설명한다. 그 다음엔 AIPAC(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이라는 이스라엘 로비의 핵심 단체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로비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를 정치 및 대중 영역에서 각각 보여준 뒤, 이스라엘 로비가 실제 국제정치 현실에서 얼마나 무능하고도 파멸적인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하나씩 정리하며 마무리한다. 그 결과의 목록에는 당연하게도 핵심인 팔레스타인을 포함해 시리아, 이란, 레바논이 있으며, 이스라엘 로비가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를 어느 정도 내려놓지 않는 이상 이 목록은 끝없이 이어지기만 할 뿐이라는 저자들의 당부 역시 함께한다.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리라. 중동 반미 정서의 핵심에는 이스라엘, 혹은 굳이 구분하자면 이 무분별한 이스라엘 로비에 의한 결과가 있다.



이스라엘을 향한 엄청난 지원과 미국의 극단적 편향은 유명한데, 그 재정 및 군사적 지원과 주변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미국 군사 개입의 빈도 및 수준은 상상 이상으로 엄청나다. 만약 한국이 이스라엘 입장이었다고 생각해보면 그 결과가 어땠을지 상상해볼 수 있는데, 일본은 공산당 정부가 들어섰을 것이고 대만은 중국에 합병되었을 것이며 핵 보유국 한국에는 압도적인 규모의 연구 협력 단지들이 들어서 자체 생산 반도체 칩을 통한 인공지능 개발에 뛰어들만큼의 기술력 및 자금이 가득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적당히 80년대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는 엄청난 이스라엘 지원 규모를 토대로 생각해본 것일 뿐이다) 미국이 중동에서 느끼는 위협은 대체로 석유에 대한 수요보다는 이스라엘이 느끼는 '위협'2)을 대리하는 것에 가까웠으며, 이라크 전쟁의 발발에는 분명 이스라엘 로비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현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있어서도 정책 기조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도 당연하다. 대중적 거부감이 커진 것과 별개로, 정치인 개인에 있어서 이스라엘 로비의 힘은 여전하니 말이다.



이스라엘 로비는 정치인에게 핵심 쟁점을 정리해주거나, 정책에 대한 반대 여론을 쏟아붓거나, 친-이스라엘 정치인에게 금정적 지원을 하고 반-이스라엘 정치인의 경쟁 상대를 지원하는 식으로 진행되며, 점조직에 가까운 미국 각지의 이스라엘 로비 단체는 AIPAC의 지도 하에 여러 지역에서 이를 실현한다. 이스라엘 로비의 쟁점이 대체로 미국인에게 무관심의 대상인 탓에 정치인이 이를 굳이 거스르려 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미국 내 유대인 세력에 비해 중동 세력은 거의 없다시피 해 정책 반영에서 친-이스라엘 노선을 거스르는 일은 득은 없으면서 거대한 실만 있는 수준이다. 이들은 주요 선거구에서 표가 갈리는 경합주 위주로 특히 맹렬히 활동하며 표의 가치를 극대화하며, 미국보다 이스라엘에 더 충성한다는 이중 충성의 오명까지 감수할 정도로 맹렬히 이스라엘을 위해 싸운다. 지금은 꽤나 유명무실해진 방식이지만, 대중적으로 유대인의 무고함을 강조하고 반-이스라엘 노선을 반유대주의로 매도해 몰아세우고 해당 인사를 보이콧하도록 유도하는 대중적 활동도 무시할 수 없다.



이스라엘 로비의 무시할 수 없는 요소는 물론 종교다. 미국 내 기독교의 우세는 이스라엘 로비와 떼어놓을 수 없다. 기독교 세대주의, 시온주의자들의 종말론적 신념은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종교적 지위를 부여하며, 홀로코스트라는 거대한 참극과 더불어 많은 이들이 이 문제에 있어 일단 한발 물러나도록 하는 데에 기여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을 비판한 전 대통령 지미 카터처럼 기독교 내에서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인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분야에 비해 신기할 정도로 기독교인의 대-이스라엘 친화도가 높으며, 다른 국가에서 이스라엘의 이미지에 비교하면 더욱 놀라울 정도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완고할 정도로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대체로 종교적인 문제에 가까울 것을 생각하면 이상할 건 없지만, <이스라엘 로비>의 기나긴 폭로의 목록을 보고 있자니 기독교에 대한 호감이 훨씬 떨어진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제 그만 정상적인 타협을 하거나, 최소한 미국의 비정상적일 정도의 지원이라도 그만둔다면 좋을 텐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이 책이 나온지 20년이 지난 지금 보건대 대중 영역에서 이스라엘 로비는 확실히 파탄에 이르렀다. 미국에서조차 이스라엘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으로 보이지 않으며 미국 밖 서구권에서는 더더욱 심하다.3) 허나 상술했듯 너무 구조적으로 유능하고 견고하게 짜여 있는 이스라엘 로비의 힘 덕에 정치권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미어샤이머 역시 기본적으로는 이스라엘 로비로 인해 미국 뿐 아니라 이스라엘도 장기적으로 매우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것을 피력해 이스라엘 로비 내에서의 자정 작용을 기대하는 듯 싶지만, 현재 상황을 보면 결코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이 위력과 자체적인 생존력, 내부 인사의 자정 불가능성을 보고 있자면 둠스데이 클락이 떠오르는데, 이스라엘 자체가 핵 개발 이후 위기 시 전세계를 핵탄두로 자동 공격한다는 삼손 옵션을 내세웠다는 걸 생각하면 이스라엘 로비의 지금 같은 상황이 의도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책임회피를 할 수는 없을 듯하다. 참 징그러운 나라다.


*


1) 이 목록은 길다. 레이건은 미국-이스라엘 간에 전략 및 무역 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중동 무력 도발을 자제시키고자 했지만 의회는 그의 뜻을 전혀 따르지 않았고, 이후 그는 이 대세에 거스르는 걸 포기하고 결국 다양한 친-이스라엘 협정을 맺었다. 아버지 부시는 요르단강 서안에서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을 막고자 했다가 실패했는데, "지금 의회에는 이스라엘을 위한 차관 보증을 로비하는 1,000명의 로비스트들이 있고, 나는 여기서 120일간의 연기를 요청하는 외로운 작은 남자 한 명일뿐"(링크)이라는 말을 남겼다. 아들 부시의 실질적 실패는 911 테러에서부터 이라크 전쟁까지 이어진 소위 네오콘과의 합작에서-특히 이것이 주로 부시의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비난받는다는 점에서-훤히 드러난다. 전직 대통령 지미 카터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이스라엘을 비판했다가 반유대주의자로 몰린 것까지 넣을 순 있을 테다.



2) 이스라엘의 '위협'은 기실 미어샤이머가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에서 개괄한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이스라엘 로비는 이스라엘이 주변 국가의 공격을 막아낼 능력 이상을 갖추길 원한다. 주변 국가를 완전히 꺾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무력을 갖춘 지역 패권국. 그 무력을 위해 핵을 개발하고 미국의 힘을 늘 빌리고자 하며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지역 패권국으로 중동 정세를 위협하는데, 여기에서 공격적 현실주의와의 조화는 끝난다. 이스라엘 로비가 이스라엘을 향한 긍정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만든 서사-중동 전쟁은 주로 이스라엘에게 위협을 느껴 이를 미리 짓밟고자 한 주변 국가들에 의해 발발했다-와는 달리 이스라엘과 다른 중동 국가 사이의 분쟁은 대체로 이스라엘이 자초하거나 심지어 직접 시발점을 마련한 듯하니 말이다. 



3) 이 대중적 반응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는 이스라엘 음악가와 함께 이스라엘 음악을 만들며 이스라엘 내 활동을 한다고 공연을 보이콧 당하는 라디오헤드의 조니 그린우드가 있고, 또 한쪽 끝에는 자기가 반유대주의자이자 나치라고 주장하며 관심을 긁어모으는 카녜 웨스트가 있다. CNN에서 치른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 지지도는 젊을수록 급격히 떨어지며, 65세 이상에서는 81%였던 지지도가 18-34세까지 오면 27%에 불과하다. (링크) 나는 기왕이면 더 젊은 미국을 선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