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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너무 정치적인 감상이 되어버린 감이 있어서 불타면 알아서 자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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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글은 너무 관념적이고 어렵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신화를 삼킨 섬>은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을 입증해주는 듯하다. 최근 나이 든 작가들의 후기작을 몇몇 읽으며 느끼는 것이지만 자기 글쓰기의 틀이 완전히 잡힌 작가에게 있어서 나이는 오히려 그 기법을 가장 완숙하고 훌륭하게 펼쳐 보이는 추동력이 되어준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신화를>은 누가 읽어도 이청준이 썼을 법한 글임과 동시에, 이런 특징을 가장 훌륭하게 펼쳐내는, 개인적으로는 이청준의 최고작이라고 꼽을 수 있을 만한 글이 아닌가 싶다. 으레 대표작이라고 하면 꼽히는 <당신들의 천국>의 주제를 훨씬 더 넓은 영역에서 복합적으로 펼쳐내면서도, 마찬가지로 대표작인 단편 <눈길>의 감수성이 너무 과하지 않을 정도로 묻어나는 소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동시에 매우 정치적으로 민감한 글이기도 할 것 같다. 혹자는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신화를>은 제주 4.3 사건 및 여타 대규모 학살의 무고한 원혼을 달래는 굿을 전국적으로 진행하는, 소위 '역사 씻기기'라고 하는 작중 정부 사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중 배경은 제주도로, 이곳에서 굿을 하며 돈을 벌고자 찾아온 육지부 무당 요선과 굿의 업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두 남녀 만우와 금옥, 한국 무속 신앙에 관심을 가진 재일교포 종민 네 사람을 중심인물 삼아 진행된다. 제주도 사람들은 역사 씻기기 사업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데, 이들에게는 우파 독재 정권이나 좌1파 민중 운동이나 외부에서 와 너무나 많은 사람을 죽이기나 한 외부 권력에 불과하며 실제로 역사 씻기기 사업에서 씻길 원혼을 고르는 과정에서 이 두 진영은 상대 진영에 의한 피해자 수를 최대한 늘리고자 열성을 다한다. 이 네 사람은 굿판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데, 요선은 돈만 충분히 벌면 바로 굿판을 뜰 생각이며, 만우와 금옥은 부모로부터 무당 자리를 승계받고 싶어 하지 않으며, 종민은 어디까지나 해외 사람으로서 인류학적 관심으로 굿판을 관찰하고자 할 뿐이다.



그러나 정치적 갈등이 섬 바깥에서 극대화되며 민주 항쟁과 새로운 독재 정권이 시작되려는 차, 사람들의 냉대를 받으며 권력의 요구를 받아 시작되는 굿판은 놀랍게도 본연의 방식대로 동작하며 자리를 함께하고 싶지도 않았던 연고자의 한을 풀고, 중심 인물들이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방식으로 굿판과 자신의 소속감을 재확인하도록 만든다. 만우와 금옥은 자기도 모르게 신열에 휩싸여 굿판에 참여하거나 굿판에 참여한다는 것의 의의를 뼛속 깊숙한 곳에서 느끼며 무당 가문의 후계자가 될 결심을 하며, 요선 역시 무당의 가치를 느끼고 자신이 본디 속해 있어야 할 외부자 정체성을 자각하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따라 어머니와 함께 소록도에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씻김굿을 하고자 제주도를 떠난다. 재일교포 고종민은 개중 가장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물인데, 그는 조사 과정에서 아버지가 4.3 사건 사망자로 기재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되고, 아버지가 이곳에서 한국인으로서 죽고 기억을 묻어둔 채 일본인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여러 차례 굿판을 보며 육지와 섬에서 근본적으로 동일하게 이어지는 한국인의 뿌리를 느끼고 자신도 외부자가 아닌 내부자로서 굿을 느낄 수 있기를 기도하며 이후 한국에서 펼쳐질 환란 속에 남아 있고자 한다.



<신화를>에서도 이청준의 권력 비판은 여전한데, 성긴 권력의 그물이 우파에서 뻗든 좌2파에서 뻗든 그것은 늘 일반 시민을 옭아매곤 하며 자연스레 냉담한 반응을 부른다. 이 도식은 제주도의 옛 신화, 삼별초 항쟁 당시 김통정과 김방경이라는 두 외부 장군이 신화화되는 것과 겹쳐지는데, 제주 시민들을 불러 모아 강대한 세력을 일군 이와 그런 이가 제주도민을 착취한다며 공격해 패퇴시킨 이, 두 장군 모두 각각 다른 세력에 의해 신화화 되었지만 이 두 세력 사이에는 그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대다수의 냉담이 있다. 두 장군이나, 서로 다른 정치 세력이나 둘 다 육지에서 온 외부 세력에 불과하며 섬에서는 아무 의미 없을 뿐이라는 태도. 그러나 이 간극은 굿이라는 의례로 메워진다. 참여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정서가 담긴 원형 신앙-아기장수 전설1)-을 바탕으로 귀신을 소환해 원혼의 한을 풀어주며, 일이 어찌 되었든 이제는 다 끝난 일이라는 식으로 세속의 세부 사정을 얼버무리는 동시에 집단적 연대감을 상상한다. 눈앞에서 사람들의 화해를 이끌어내고 신화를 만들어내는 굿판의 신기한 효능은 늘 분석적인 태도로 제주도와 역사 씻기기 사업, 굿판을 바라보던 종민조차 한국의 내부자로 한발짝 걸어 들어오게 만들 정도다.



이 몇중으로 겹겹이 쌓인 구조에서 가장 생산적인 영역이 이 모든 대립이 얼버무려지는 굿판이라는 게 참 흥미롭다. 나는 예전에 임종현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읽으며 역사적 비극의 희생자를 따지는 것만큼이나 희생자를 따지지 않는 태도 역시 그리 올바른 방향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청준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한듯 <신화를>에서 그럴듯한 대안을 내세운다. 신화 만들기2). 신화는 꼭 특정 영웅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신화가 내세우는 보편적으로 매력적인-혹은 그럴 것이라 예상되는-인물상을 토대로 형성되곤 한다. 이 신화의 힘을 어느 쪽으로 쓰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한국에서 모두에게 보편적인 특성-한의 정서니 아기장수 이야기니, 과연 나를 포함해서 나보다도 더 어린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통적인 것으로 느껴질까?-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지금, 민주화 신화가 과연 얼마나 한국인의 연대감에 기여할지는 모르겠다. 이청준이 여기에 보여주는 냉소에 공감하며, 한국에 카니발3) 이상의 의례가 새로 탄생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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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기장수 전설에서 나온 동화 중 김일성을 모티브 삼은 악역을 물리치는 반공 동화가 있다는 점은 <신화를>을 더 아이러니하게 만든다. 혹은 이청준 본인이 이런 동화를 보고 <신화를>을 썼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정치 세력의 본질을 찾는 것은 실질적으로 무의미할 때가 많은 것처럼, 원형 서사에서 정치적 비판점을 찾는 것 역시 우스꽝스러울 때가 많다. 이야기의 뼈대에는 서술자가 붙이고 싶어 하는 살이 붙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여기에서 민족적 연대감을 찾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보편적인 선악 구도를 찾을 수도 있으며, 또 누군가는 자기 뜻을 펴지 못하도록 개인을 억압하는 체계의 숨막히는 압박을 찾을 수도 있는데, <신화를>은 이 셋을 전부 끌어오는 편이다.



2) 이순신 신화화의 역사는 이순신 사후 대대로 무과 급제 후손을 통해 이어지다 구한말의 민족 창조에서 다시 시작해 박정희 정권의 프로젝트로 끝나며, 그 의도나 과정이 어찌했든 이순신 신화의 계승은 한국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줬다고 본다. 영화 <명량>이 그리 크나큰 반향을 불러온 것은 여전히 이순신 신화의 효과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며, 한국에 그리 남지 않은 긍정적 연결고리를 아직 붙들어맬 수 있다는 희망이지 않을까? 



3) 카니발. 바흐친이 프랑수아 라블레에 대한 논문에서 분석한 중세 카니발은 꼭 서양 중세가 아니라도 꽤나 빈번하게 등장하는 혼돈의 도가니이자, 나름대로 사람들의 불만을 분출하며 연대감을 다지는 의례다. 대체로 매우 폭력적이고, 바보의 왕처럼 어떤 희생양을 잡고 추앙하다가 끌어내리기도 하며 집단적으로 공격할 대상을 삼아 다시 한번 슈미트 식의 '정치적인 것'을 되새기는 의례. 인터넷에서는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런 의례는 현대 한국에서도 매우 흔한 편이며, 코로나 시절에는 국가 기관까지 동참해 밀폐된 생활의 불만을 분출하고 한국인의 올바른 처신을 재차 확인했으며...... 솔직히 그리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보기는 그렇다. 유용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