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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젊은작가상 리뷰 시리즈


https://gall.dcinside.com/m/reading/722285

2025 젊은작가상 총집편

[시리즈] 2025 젊은작가상 리뷰 시리즈 · 2025 젊은작가상: 반의반의 반(백온유) · 2025 젊은작가상: 바우어의 정원(강보라) · 2025 젊은작가상: 리틀 프라이드(서장원) · 2025 젊은작가상: 길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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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둘러싼 얄팍한 신화들,


그것들을 한꺼풀씩 벗겨낼 거예요


우리는 새롭게 정의될 수 있어요


지구가 멸망한다면 말이죠


한 줄 요약

소설은 지구가 될 수 없다




마지막 젊작상이다. 본의 아니게 거의 두 달을 붙든 셈인데, 나로서도 끝이 보이니 기쁘다. 물론 끝으로 이걸 읽은 것에는 많은 생각과 감상이 들었지만...... 뭐, 젊작상이 실험적인 작품 하나씩 뽑는 건 유구했으니 말이다. 솔직히 이 작품에서 실험적인 부분이라곤 조사 생략해서 구어체를 살린 비문 덩어리들인데, 솔직히 말해서 엄청 안 읽혔다. 처음 접했을 땐 진짜 진지하게 작가가 조현병 증세를 보이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뭐, 그게 아니라고는 하니 일단 그런 줄로 알겠지만...... 장르의 탈을 쓴 순문이다. 장르의 탈을 쓴 순문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쿨찐 서술이 꼭 한 번 이상은 등장하는 것이고, 하나는 인간 혐오가 빠지질 않는다는 것이고(당연한 얘기지만 쿨찐 서술이랑 맥락을 같이 한다), 또 하나는 설정의 목적성이 굉장히 뚜렷해서 굉장히 작위적이라는 것이다. 이건 암만 내적으로 설명을 보충해도 마찬가지다.


김초엽이 그랬었고, 김멜라가 그랬었고, 현호정이라도 다르지 않다. 젊작상을 벗어나서 한국과학문학상을 따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뭐, 이거에 대해 떠들기 시작하면 리뷰를 이어가지 못하니 넘어가자. 어쨌든 그렇기에 현호정의 소설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임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아포칼립스 특유의 어떤 느낌조차 기대할 수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세계는 철저하게 현호정이 기존의 신화와 관념들을 부정하고 재정의하기 위해 설정된 무대 장치에 불과하다.


배경은 해수면이 끝없이 상승해 육지 대부분이 잠기고, 바다는 쿨찐 서술에 의하면 조상님들 덕분에 충분히 따듯해져서 36도쯤 되어 사람들이 숨만 밖으로 나와 호흡하는 걸 빼면 바다에서 살아가는 게 무리 없는 게 배경이다. 식량은 전세대 잠겨 죽은 사람들의 시체 녹말이며, 이걸 만나라고 부른다. 맛나다는 개드립까지 나오는 건 덤.


멸망 이후 2세대는 대다수가 기생체를 달고 태어나며, 기생체는 다양한 신체부위가 다양하게 달려 있어 운이 좋으면 핑거 섹스도 도와준다. 이 기생체와 숙주는 성장하면서 주도권이 왔다 갔다 하다가, 기생체 중에 뇌가 달린 기생체가 자아를 가지고 머리를 굴리다가 본인이 '지구'라는 깨달음을 얻어 지구를 자처하며 '부랑자'에게 빙의해 '부랑자'가 'K'에게 지구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게 기본적인 소설의 구조다.


정신 없어 보인다면 정답. 실제로 시점 전환도 되게 잦고 특히 '지구'가 떠드는 파트는 '구어체 실험' 때문에 가독성이 박살이 나버렸으므로 읽고 이해하는 것부터가 고역이다. 3줄짜리 한 문장을 봤을 땐 비문이고 구어체 실험이고 뭐고 퇴고부터 제대로 된 글이긴 한 건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퇴고를 안 했다면 안 한 상태로도 수상까지 한 이 작품의 압도적 퍼포먼스가 개쩌는 것 아니겠는가.


주제의식은 뭐 인간 혐오 한 스푼, 기독교 혐오 한 스푼, 서구 자본주의 혐오 한 스푼, 전위적 퍼포먼스 한 스푼, 정신병 한 스푼, 환경론자 한 스푼 등등을 첨가했다. 무슨 뜻이냐고? 하고 싶은 말 잔뜩 했다고. 어떤 통일적 주제를 찾기보다는 그냥 '아 작가는 이 말을 하고 싶었구나' 하면서 읽는 편이 훨씬 이해하기 쉽고 간편하다. 실제로 해설이 푸는 꼴을 보면 크게 다르지도 않다.


좋게 말해서 작가의 생각 진열장이다. 나쁘게 말하면...... 뭐 나랑 비슷하게 느낀 사람들은 대충 알지 않을까?


이 소설을 읽고 어떤 결론을 내리려고 했는데, 작품이 아니라 작가에 대한 결론만 자꾸 내려져서 그 부분은 관뒀다.


참고로 해설은 다시 쓰는 창세기라면서 이 소설의 거의 모든 부분을 작가의 다른 작품까지 열심히 들어가며 설명해주는데, 내가 이 작품을 그래도 상 받은 작품이랍시고 머리로 '이해'해보고 싶다면 해설을 읽는 걸 추천한다. 그런 거 없다면 읽는다고 이해되진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성경 언급해주고 만나 언급해주니까 창세기로 엮어준...... 뭐 그런 수준이라. 실제로 작품을 보면 그냥 김멜라가 성경 인용하듯 '있어보이니까 끌어다 쓴' 수준이고, 특히 만나는 그냥 말장난 구어체 실험용으로 쓴 수준에 불과하다.


제일 얼척 없던 파트는 나름 기생체 설정의 현실성(내지는 핍진성)을 높여보겠다고 조사한 티를 내는 건데...... 솔직히 말해서 진짜 의미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건 이미 앞선 설정 서술에서 모든 게 박살 났기 때문에 기대할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하고 싶은 말을 위해 꾸며낸 설정일 텐데 개연성 좀 박살 나는 게 어디 대수인가. 그런 걸 따질 거면 최소한 챗gpt에게 바닷물이 36도가 되면 일어날 일 정도는 물어봤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정말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는 소설이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니 작품이 안 읽히고 작가가 읽히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