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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새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등대로를 처음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무언가를 읽었음은 분명한데 그 무언가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분명 미문을 음미하며 즐거움을 느꼈고, 인물들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본 것들을 정리하려고 하니, 인물도 줄거리도 주제도 아무것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깨달았는데, 나의 반응이 지극히 정상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등대로는 뚜렷한 사건이 부재한 작품이고 각각의 인물들은 한 마디로 규정되기 어려운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모두 모순되는 심리와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구별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역량에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 때문에 저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추적하고 메모하면서 읽어나갔다. 그래서 나름의 결론을 도출하기는 했지만, 이게 맞는지도 모르겠고, 완전히 틀린 게 아닐까 걱정이 든다. 나의 자의적인 해석이 작품을 더럽히지나 않을까.
자조적인 얘기가 길었지만, 울프의 작품을 좋아하면서도 그 앞에서 주눅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문장이 밀도있고 구성이 정교하다는 걸 감각적으로는 느낄 수 있어도 이성적으로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아서 그렇다.
이 글은 그러한 그녀의 작품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남기는 하나의 긴 메모다.
나는 그녀의 작품을 사랑하고, 온전하게 감상하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읽을 것이기 때문에 이 글을 남긴다.
램지 씨는 Q까지 발견하고도 자괴감을 느낀다.
나는 내가 B까지만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번의 독서가 A에 불과하며 Z까지 영원히 가지 못한다해도 상관없다. 어쨌든 나는 무언가를 보았고, 선을 하나 그었다. 설령 그게 다락방에 걸리고, 파괴된다 해도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339p)
1. 램지 부인
(언급이 적은 램지 부인의 몇몇 자식들을 제외하면, 등대로의 인물들은 모두 복잡다단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잠시 보편적인 인물상을 대변하다가도, 금세 내면의 충돌을 일으키며 복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특성을 간결하게 정의내리게 된다면 그건 성급한 일반화가 될 것이다. 이러한 복잡성 때문에 나는 램지 부인과 릴리만을 최대한 자세히 살펴보았다.)
램지 부인은 아름다운 외모의 중년 여성으로, 램지 씨와 결혼하여 8명의 자식을 키우고 있다. 그녀는 아들이 슬픔을 느끼지 않도록 희망찬 말을 건네주는 부모이며(9p), 동정심 많은 여자다.(12p) 그녀의 선심이 때로는 위선적으로 비춰보이긴 하지만, 텐슬리와의 산책 장면에서, 그녀가 진심으로 타인을 동정한다는 걸 알 수 있다.(21p) 그러나 그녀의 연민은 대부분 남자들에게 향해있다. '그녀는 남자들에게 뭔가 부족한 점이 있는 듯이 그들을 늘 동정했고, 여자들은 결코 동정하지 않았다.' (139p) 그녀가 남자들에게 보호욕구를 느끼는 이유는, 램지 씨의 끝없는 요구 때문이기도 하고, '어쩌면 그들의 기사도 정신과 용기 때문에, 그들이 조약을 협상하고 인도를 통치하고 재정을 관리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자신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그러했다.' (13p) 또한 이것을 결혼 생활에 필요한 자질로 여긴다. (99p) 남자들이 공감을 바라며 다가올 때 돕는 것을 여자의 일로 느끼는 건 램지부인만이 아니다. 비교적 독립적인 릴리 브리스코도 (계산적이긴 하지만) 똑같은 생각을 한다.(148p) 램지 부인과 릴리의 차이가 있다면, 램지 부인은 그것을 의무로 여기고, 릴리는 계약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 그렇지만 램지 부인이 순종적이지만도 않다. 램지 씨와는 달리 직접적으로 사랑을 전하지 않는다 197p)
램지 부인의 선심에는 이렇게 모호한 부분이 있다. 물론 스스로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무관심한 오거스터스를 바라보며 '베풀어 주고 도와주려는 자신의 모든 욕구가 허영심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는다.(70p)
그리고 '자신의 어떤 치졸한 부분을 의식하고, 인간관계에 어떤 결함이 있는지' 돌아본다.(71p) 그러나 이런 고민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녀는 곧 자신의 아들에게 동화책을 들려주는 데 온 신경을 쏟으려고 노력한다. 램지 부인은 이런 식으로 행동으로 사고를 덮어버리는 사람이다. 릴리 브리스코가 '행동이 무력하고 사고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램지 부인은 '남쪽을 향해 날아가는 제비의 본능이나 햇빛을 향하는 국화꽃의 본능처럼' 먼저 행동을 취한다.(321p)
그러나 램지 부인이 사색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그녀도 가끔 혼자이기를 원하고, 그렇게 온전히 자기 자신인 상태를 원한다. (102p) 그렇게 가끔은 사색에 빠져 세상의 무질서에 분개하기도 한다.(105p) 하지만 그녀는 삶을 응시하고, 그것의 복잡함을 감수하지 못한다. 그녀는 사랑, 혹은 결혼으로 삶을 정화시키려고 한다. 릴리와의 대조로 이를 알 수 있다.
2. 릴리 브리스코
폰스퍼트 씨가 온 후로 그림들은 모두 녹색과 잿빛 바탕에 레몬색 돛단배와 해변의 분홍빛 여자들 뿐이다. (24p)
그러나 릴리의 그림은 그렇지 않다. 정확히는, 그렇지 못하다. 그녀가 폰스퍼트 씨의 그림처럼 그릴 수 없는 것은, 그녀가 곧 다른 사람들의 삶 (부부의 삶)을 영위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녀의 그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그것은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다. 78~88p는 이런 상징을 잘 보여준다.
1) 뱅크스 씨는 램지가 위선적이라고 말하며 릴리의 의견을 구한다. 램지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녀는 대답을 피하며 고개를 숙인다. 그렇게 계속 고개를 숙이는데, 램지 가족이 가진 '사랑에의 몰입'을 보기 싫어한다.
2) 뱅크스 씨가 기다리자 릴리는 곧 대답을 하려는데, 뱅크스 씨가 환희에 젖어 램지 부인을 응시하는 모습을 본다. 그 환희는 순수한 사랑이었다. 소유욕이 아닌 고양된 감정.
3) 순수한 환희를 보자 릴리도 고양감을 얻는다. 모든 여자를 감싸는 그 경의에 삶의 무거움이 사라지는 듯하다.
4) 그러나 릴리는 온전히 동조할 수 없다. 그녀 자신도 스스로를 한탄한다. 남들처럼 그리지 못하는 것을, 폰스퍼트 씨 처럼 흐릿하게 그리지 못하는 것을 한탄한다. 형체를 확실하게 보는 릴리는 흐릿한 고양감에 빠지지 못한다.
5) 릴리는 대답하려던 말을 기억한다. 그것은 램지 부인에 대판 비판이었다. 릴리는 뱅크스 씨의 환희에 젖은 눈을 보며 램지 부인에 대해 숙고한다.
6) 릴리는 램지 부인의 고압적인 성격과 결혼을 강요하는 그녀의 말을 상기한다.
7) 그녀는 혼자 있는 자신의 삶을 내세운다. 릴리가 바란 건 이해심이 아니라 합일이었다. 릴리는 램지 부인의 권유를 의심한다. (지혜였을까? 이해심이었을까? 아니면, 진실을 향해 절반쯤 나아간 곳에서 인간의 의식을 황금 그물에 빠뜨리는 아름다움의 기만이었을까?)
8) 릴리가 그린 램지 부인과 제임스의 그림은 전통적인 모자상이 아니다. 그녀는 빛에 눈이 멀지 않았고, 그림자를 그려넣는다.
릴리는 '사랑에의 몰입'을 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녀는 '산울타리와 집과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난 이 모든 걸 사랑해요." 라고' 말할 수 없다.(34p) 그녀는 사물을 똑바로 보는 인물이고, 환희에 젖을 수가 없다. 램지 부인은 '연인들처럼 사물의 어떤 요소들을 뽑아내고 배합해서, 그리하여 그것들이 실제로는 갖고 있지 않은 완결성을 부여함으로써 어떤 장면이나 사람들의 만남을 우리 생각이 머물고 사랑이 유희를 벌이는 압축된 구체로 만드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315p), 릴리는 그런 재능이 없다. 그녀는 '교묘히 빠져나가는 뭔가를 붙잡으려고' 애쓰며 '무엇으로든 형성되기 이전의 사물 그 자체'를 포착하고자 한다.(316p)
램지 부인은 릴리와 달리 결혼에 낙관적이다. 카마이클 씨의 결혼생활은 분명 실패했고 (69p) 그가 불행하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의 '결혼도 나름대로 충분히 행복했으리라" 믿는다. (20p) 그러나 램지 부인도 결혼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좋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민타와 레일리가 결혼하도록 부추겼지만, 왜 그랬는지 의아해한다. '나는 왜 사람들이 결혼하기를 바라는걸까. 이런 생각이 서서히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물의 가치, 사물의 의미가 무엇일까? 뭔가 말해 봐요. 그녀는 그저 그의 목소리를 듣기 바라며 생각했다. 그들을 감싸고 있던 것, 그 그림자가 자신을 다시 에워싸기 시작한다고 그녀는 느꼈다. 무엇이든 말해 봐요. 그녀는 마치 도움을 청하듯 그를 바라보면서 애원했다.' (195p)
( 그리고 이것은 우연일지도 모르겠으나 결혼의 불행에 대한 암시가 램지 부인에 의해 드러난다. 다음은 폴 레일리의 묘사다. '언덕 위에 올라가서 발아래 펼쳐진 마을의 불빛을 보았을 때, 갑자기 하나씩 둘씩 다가온 불빛들은 앞으로 그에게 일어날 일들(그의 결혼,그의 아이들,그의 집처럼 여겨졌다'. (127p) 그리고 램지 부인의 묘사.'그녀는 어깨 너머로 마을을 바라보았다. 불빛들이 바람에 붙들린 은빛 물방울처럼 잔물결을 이루어 흐르고 있엇다. 그리고 온갖 가난과 온갖 고통이 그 불빛으로 변했다고 램지 부인은 생각했다.' (112p) 그리고 나중에, 민타 도일과 폴 레일리의 결혼생활은 1년만에 실패로 끝난다. 282p )
그러나 램지 부인에게는 보잘것없는 순간이라도, 결속으로 맺는 능력이 있었다. '그녀는 이것과 저것, 그리고 또 이것을 결합했고, 그래서 하찮은 어리석음과 앙심으로부터(시시한 말다툼을 벌이던 자신과 찰스는 어리석고 심술궂었다.) 무언가를 (예컨대 바닷가에서의 장면을, 이 우정과 애정의 순간을) 만들었다.' ( 263p) 릴리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순간을 만들어내고, ' 그들 사이에 있었던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 이른바 사람들을 아는 것이고 그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며 그들을 좋아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282p)
3. 릴리의 그림
시간이 흘러, 램지 부인은 죽었고 릴리는 남았다. 2장에서 시간은 10년이 흘렀고, 많은 인물들이 죽었다. 프루 램지는 출산 도중 사망했고, 앤드루 램지는 전사했다. 램지 부인의 죽음은 조용하게 암시적으로 묘사된다.(208p)
섬에 남은 릴리는 차분하게 삶을 반추한다. 그녀는 램지 부인과의 기억을 떠올리고 순간의 풍요에 대해 생각한다.(280p)
그리고 레일리 부부의 실패한 결혼생활을 생각하며 그 결혼을 장려한 램지 부인에게 약간의 승리감을 느낀다.
또 불같은 사랑의 위험, 그리고 윌리엄 뱅크스에 대한 사랑, 층계참에 앉아있던 램지부인에 대한 기억 속에 잠긴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깨닫는다. 결국 '삶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램지 부인에 대해서. 아니, 누구에게든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당신과 나 그리고 그녀가 지나가고 사라진다는 것, 그 무엇도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을. (292p)
그러나 '자신의 그림, 그리고 그 그림이 시도했던 것에 대해서, 그것이 영원히 남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292p) 그녀는 원래 선을 긋기를 두려워했었다. '캔버스 위에 선 하나를 그으면 무수한 위험에, 상습적이면서도 돌이킬 수 없는 함정에 빠지고' 말기 때문에.(258p) 그리고 현재의 모호한 순간을 '단순하게' 만들어서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도 완벽하게 살아남'는, '무언가를(예컨대 바닷가에서의 장면을, 이 우정과 애정의 순간을)' 만드는 것을 주저했었다.(263p)
모두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상실감을 딛고 일어선 릴리는 램지 부인의 부재, 시간의 흐름, 모호함 속에서 끝내 하나의 선을 긋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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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있는 무언가에 의해 불현듯 생각이 난 듯 그녀는 재빨리 캔버스로 몸을 돌렸다. 거기 그녀의 그림이 있었다. 그래, 초록색과 푸른색 선들이 올라가고 가로지르면서 무언가를 시도했지. 이건 다락방에 걸릴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결국은 파괴되고 말겠지. 하지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녀는 붓을 다시 잡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녀는 충계를 바라보았다.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캔버스를 보았다. 흐릿했다. 갑자기 강렬하게, 마치 찰나의 순간 그것이 선명히 보인 듯이, 그녀는 그 한가운데 선을 하나 그었다. 완성했어. 끝났어. 그래, 그녀는 극도의 피로감이 밀려오는 가운데 붓을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이제 그것을 보았어.' (339p)
릴리는 끝내 선을 긋는다. 그녀는 선 하나를 긋는 행위에 뒤따를 위협을 결국 감수하기로 선택한다. 그러나 그녀의 그림은 아마 다락방에 걸릴지도 모른다. 폐기될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 채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그녀가 삶의 모순들을 감내하고 그것에 다가가려 했다 한들, 그림은 잊혀지고 말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녀는 삶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했고, 누군가는 그러한 그녀의 노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녀의 노력에 힘입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리고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러면 마침내 어느 찬란한 아침..............'
아마 우린 영원히 등대에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겐 등대로 가는 과정이 분명히 남아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신이야
2장의 흐름과 3장의 도달이 참 인상깊은 작품… 잘 읽었어요
굉장히 베케트의 프루스트적인 글쓰기네요 - dc App
ㄹㅇㅋㅋ( 이해 못함)
좋당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