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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본주의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은 광고가 없는 세상 역시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세일즈는 어디에나 녹아들어있어 그것을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대중에게 있어서 자신이 광고임을 당당히 천명하는 광고, 세일즈의 대상을 냉소적으로 보는 광고가 나름의 인기를 얻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이 광고조차도 단지 세일즈를 위한 수단이란 점에서 우리는 이 광고로 뒤덮인 세상을 벗어날 수 없음은 더욱 명확해진다.
dfw의 에세이 중에서 미국의 정치와 사회 현상에 대한 글들 위주로 추린 책이지만, 미국 텔레비전에 대한 첫 번째 글과, 2000년 공화당 경선 당시 존 매케인을 취재했던 에세이가 중심이 되는 글. 두 개의 에세이에서 dfw가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광고-세일즈의 공식이 너무나도 깊이 사람들에게 파고들어 있으며, 텔레비전-혹은 세일즈는 스스로에 대한 냉소적 반어법까지 포함시켜 스스로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하고 더이상 그 누구도 진지한 무언가를 받아들이기엔 힘들어진 시대가 되었단 것이다.
특히 첫 번째 에세이에서 작가는 1950년대 이후에 태어난 미국인에게는 텔레비전이 태어났을 때부터 존재했던 도구임을 언급하며 텔레비전이 단순한 중독-냉소적 시청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사회 전체에 텔레비전의 문법이 스며들고 이에 대한 비판마저도 텔레비전의 문법 안에 포함되어 흡수되었단 것을 언급한다. 특히 추가로 언급하는 조지 길더의 텔레비전의 종말-네트워크 시대의 개막을 언급하는 부분은 의미심장한데, 기술적 발전이 일종의 미국적 자유주의(공화당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그의 낙관론에 대한 냉소적 비판(이 부분에서 우리는 진지함이란것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려워졌단 것을 알 수 있다)은 오늘날 쇼츠와 유튜브가 지배하는 시대를 볼 때, 그가 주장한 자유주의의 결론을 상상할 수 있다.(더욱 더 발전된 나만을 위한 환상을 볼 수 있다. 단지 보기만 할 뿐이지만.)
글쓴이는 그렇다면 이 텔레비전의 문법-모든 것을 가벼운 냉소의 대상으로 만들며 최종적으론 세일즈를 위한 전략-이 지배하는 오늘날에서 개인이 추구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한 진지함(오글거리고, 감성적이며, 쓸데없이 무거운)에 대한 접근은 어떻게 올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infinite jest와 같은 맥시멀리즘이었을까?
어찌되었든 우리는 이 무한히 생성되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개인이 기술과 거리를 두더라도 이미 대중에게 자리잡아 사람을 통해 흘러들어온다는 점에서 회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어떠한 '진지한' 논의도 무력화되는 세상에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역시 냉소적 반어법이란 것에서, 우리들은 실로 텔레비전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게된듯 하다.
끔찍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