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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석, 홍경림 역의 <원잡극선>에는 원나라 시대 창작된 희곡들을 선별해놓은 책이다. 중국 희곡사의 본격적인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시대인 바 서정적인 비극과 철학적 교훈극, 사회비판과 장엄한 역사까지 많은 것을 빼어나게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는 마지막 수록 작품 <자린고비가 재산 임자를 사들이다>의 특이한 캐릭터 하나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이것은 수전노 이야기다. 헤어진 가족의 상봉과 그 사이에 끼어든 모두가 싫어하는 인물의 역사를 그린다. 먼저 한 개의 서막과 네 개의 막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살펴보자.
서막: 주영조가 처와 아들을 이끌고 나타나 조부 때에 일어났고 부덕한 아버지 때에 기울었으며 자신은 과거를 봐 집안을 일으키려는 역사를 간단히 서술한다. 그는 과거를 보기 위해 가족들과 수도로 떠나고 가져갈 수 없는 재산은 땅에 묻는다.
1막: 동악 태산의 신인 영파후는 매일같이 찾아와 신세 한탄을 하는 가인이라는 남자 떄문에 죽을 노릇이다. 그는 가난하고 가족도 없으며 원망으로 가득 차 있다. 부자로 만들어달라는 가인에게 영파후는 그가 전생의 악업이 상당하며 부자가 되어봤자 악행만 저지를 거라고 비난하지만 가인은 고집을 부린다. 결국 영파후는 20년간 그의 복을 주영조의 것과 바꿔주기로 한다.
2막: 가인은 주영조가 묻어 놓은 재산을 찾아내 부자가 되고, 이를 모르는 주영조 가족은 거지가 되어 떠돈다. 자식이 없는 가인은 주영조의 자식 주장수를 사기로 한다. 가인이 밥값을 안 줘도 되는 걸 고마워 해야 되는 일 운운하며 말도 안 되는 값만 주려는 것을 그의 하인 진덕보가 자기 임금까지 대신 주며 주영조에게 은인이 된다.
3막: 가인은 늙어 죽을 때가 되고, 입양한 아들 가장수는 성인이 됐다. 가인과 달리 가장수는 좀 더 쓰면서 살 맘이 있는 부자다. 그는 동악신의 사당에 가 친부모를 만나지만,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을 박대하며 쫓아낸다. 어느새 죽은 가인의 유령이 힌트를 주어도 마찬가지다.
4막: 가인은 죽었다. 떠돌던 주영조 부부는 이전의 은인이었던 진덕보를 다시 만나 그와 가장수는 서로가 부모자식 간이라는 걸 다시 알게 된다. 거기다 우연한 계기로 가인의 재산이 본래 자기 가문의 잃어버린 재산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가인의 인색함과 자신의 자식 팔아넘김의 인과의 이치를 깨닫는다. 돈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주겠다는 그들의 앞에 영파후가 다시 나타나 하늘의 이치를 찬양한다.
<자린고비가 재산 임자를 사들이다>의 특이점 중 하나는 번번히 등장하는 대사의 반복이다. 예컨대 영파후에게 가인은 "저리도 부귀한 자도 일개 사람이고, 나만 맨땅을 몸으로 덥혀 자고, 부자가 되면 시주하고 보시하겠고......" 하며 애원하고, 영파후가 너는 전생의 악업이 많다 하니 다시 "저리도 부귀한 자도 일개 사람이고, 나만 맨땅을 몸으로 덥혀 자고, 부자가 되면 시주하고 보시하겠고......" 하며 애원하며, 결국 영파후가 복의 신을 불러오자 또 "저리도 부귀한 자도 일개 사람이고, 나만 맨땅을 몸으로 덥혀 자고, 부자가 되면 시주하고 보시하겠고......" 하며 애원한다.
반복되는 가인의 대사는 어찌보면 동정할 수도 있는 캐릭터를 우스꽝스럽고 냉소적으로 보는 데에 기여한다. 반복은 그의 애원이 가진 무게를 희석시키며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보다 그는 외롭고 신세한탄만 하는 찌질이이며, 부자가 되어도 악행만 할 것이라는 신들의 예언은 도덕적인 인물도 아니라는 확신을 실어준다.
1막에서 가인의 캐릭터성을 형상화하는 데 사용되었던 대사의 반복은 2막에선 분리된 두 공간에서 집단 간의 소통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술을 구걸하는 주영조와 주막 주인과의 대화("부인, 민망하게 어찌 술을 구걸하라 하시오? 주인장, 제 아내가 저러니.......", "아들아, 나더러 무슨 수로 얻어오라는 게냐? 주인장, 제 아들이 저러니........" 하는 식), 자신을 판 친부모에게 "나는 때려죽여도 주가다"하고, 가인에게 가서 다시 "나는 때려죽어도 주가", 가인의 처에게 가서도 "나는 때려죽여도 주가" 하는 주장수, 아들의 가격 흥정에서도 진덕보가 오가며 비슷한 반복이 일어난다.
이 반복은 1막에서 나타난 수전노 가인의 우습고 경멸스러운 특성을 부자가 되고 난 후 그의 생활환경 전반으로 옮겨놓는다. 보다 자세히 말해 부자와 빈자 간의 위계 관계를 익살스러운 것으로 바꿔놓는다. "나는 때려죽여도 주가"라는 주장수의 말은 가인과 처음 대면해서야 한 번 터져나왔다면 비장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같은 대사가 세 번 반복되고, 관객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가인이 아이가 순종하기를 기대하는 걸 볼 떄, 이것은 익살스러운 것으로 변모한다. 인색한 부자가 된 가인은 전혀 변화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힘을 얻은 세상 역시 가증스럽고 진정성을 잃은 채다.
가인이 매우 부정적인 캐릭터이며 그 자신이 욕망하던 것을 실현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부정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작가는 확실하게 못박았다. 그런데 이후의 내용이 약간 미묘하다.
먼저 작가가 딱 가인의 반대항으로 설정하기 좋을 법한 인물들을 그닥 긍정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주영조도 덕을 노래하지만 은근히 찌질하고, 가장수는 아버지보다야 배포가 좋은 부자지만 친부모를 몰라보고 내쫓은 건 물론이고 심지어 알아본 후에도 주영조가 그때 때린 것을 고소하겠다고 협박하자 뇌물을 써서 무마할 거라는 소리나 한다. 가인과 대립하는 이들은 의로운 빈자와 부자로 설정하여 가인의 악을 명확히 드러내기 딱 좋은데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2막에서 사회 전체로 확장된 냉소를 다시 가인에게로 소급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3막부터는 가인이 오히려 지혜로운 쪽의 역할을 맡는 듯도 하다는 것이다. 3막의 초반부에는 늙어 죽어가는 가인이 가장수와 만담을 주고받으며 유언을 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가인의 우스꽝스러운 인색함을 묘사하기도 하지만 오랫 동안 사업을 해온 노련한 부자인 가인이(사실 가인은 재산을 훔치기만 한 게 아니라 그걸 밑천으로 본인이 투자해서 늘린 것도 있다) 별 생각 없는 가장수를 걱정스러워하는 모습 역시 나타나는 것이다.
거기다 그의 돈에 대한 집착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정작 죽을 떄가 되어서는 주영조에게 복을 돌려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유령이 되어서는 가장수가 친부모를 찾는 것을 도와주기까지 하는 것이다.
또 3막에서의 대사 반복은, 가장수와 주영조 사이에서 일어나는데, 가장수가 주영조를 알아보지 못하고 쫓아낸 후 가장수가 헤어진 자신의 아버지의 복을 비는 기도문을 한 구절 읊을 때마다 주영조가 "에취"하고 기침을 하며, 주영조가 기도를 할 떄도 같은 반복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제 대사의 반복은 인물들의 무지함을 비웃도록 유도하는 장치이기도하며, 명확히 가인의 범위를 벗어난다.
4막에서 작가가 준비해둔 재밌는 역설이 있다. 서로 고소를 하니마니 하던 가장수는 자기 아버지에게 뇌물을 가져다 바치는데, 그 뇌물 상자 안을 열어보니 금괴 중 하나에 주영조의 조부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로써 주영조는 가인이 자신의 재산을 밑천 삼아 재산을 불려 왔다는 걸 알게 됐다. 그의 인색함 덕분에, 주영조는 몇배나 불린 재산의 주인이 된 것이다. 가인은 주영조의 재산을 이십년간 지킨 꼴이 되었다.
초반에 등장해 극을 이끌어 가던 가인은 모두가 싫어하는 외톨이이다. 그를 조롱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작가의 냉소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냉소받을 만한 것을 사회 전체로 확대시키며 오히려 가인에게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의 혐오받을 만한 찌질함에도 위대한 인과응보의 흐름 속에서 보면 나름의 의의가 있었던 것이다. 하늘 아래 그와 그를 싫어했던 다른 인물들 역시, 모두 조금씩 멍청하고 조금씩 사악한 중생들이었을뿐이다.
마지막 영파후의 입을 빌려 작가가 전하는 교훈은, 천지신명이 엄연하므로 부자가 되고 싶어 이 이치를 속이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에 나는 한 가지 말을 더 덧붙여봐야겠다.
"싫어할 만한 이유가 충분한 이를 모두가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럴 때라도 그에게 모두의 모습이 있음을, 그는 이를 알려주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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