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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바리부인을 워낙 좋아하지 않아서 플로베르를 내심 싫어하고 있었는데 한 작가의 에세이에서 감정교육을 좋게 평해서 읽었다 인생소설?하나 찾은 것 같다
둘다 현실성, 조소가 은은히 담긴 점에서 비슷한 두 작품이다 그런데 보바리부인은 별로였는데 감정교육은 너무 좋은 이유가 뭘까? 감정교육은 그래도 어느정도 서정성이 남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 보바리부인을 읽을 때는 너무 으스스하고 추웠던 기억이 남아있다 하지만 감정교육은 저녁노을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노을에는 항상 조소가 깃들어있는 법이다
<…게다가 깊은 애정이란 정숙한 여자들을 닮아서, 혹시나 드러날까 두려워하며 눈을 내리깔고 생을 보내는 법이다>
정숙하단 말이 불편하다면 여자를 사람들로 바꿔도 괜찮겠지
만약 누군가에게 드러냈다면 그건 그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도 무의식에 염두에 둔 것이다 ‘감히’강요할 수 있었던 것일터 그건 애정이 식어간단 거였을까 그 줄어듦이, 식어가는 줄어듦이 노을의
전조가 되는 주황색 구름조각 하나로 떠 있었을까
깊은 애정이란 속으로만 두는게 더 나은 경우도 많다
프레데릭은 스토너와 닮았다 동시에 다르다
데로리에는 프레데릭을 보며 여성성을 떠올렸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 점이 프레데릭을 가장 특징짓는다
꽃을 꺾어서 줄 때 줄기의 가시에 손이 찔리지 않도록 정성스레 천에 담아주는 것
사랑하는 여인의 딸을 무릎위에 올려놓고 이마를 쓸어넘겨주는 것
항상 생각하는 것 조금..미련스럽다
그러한 여성성외에도 프레데릭이 외로워보이는 지점들이 그를 다시 한번 특징짓는다
남편을 위해 돈을 융통하러 온 여인이 목적을 이루고 바로 돌아가려할 때 정원을 같이 둘러보자고 하는 것
어찌됐든 마음을 돌려말하고 있는 것
파리로 올라와 피상적 관계속에 머무르는 것
결국 현실을 받아들인 것
비슷한 주제를 다룬 순수의 시대는 사실 애정의 실패는 의도된 것이고 실용적인 실패같았고 공식처럼 짜인듯한 실패여서 절절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나로서는 불쾌했다 선인은 선인으로만 남고싶어하는 것민 같아서
하지만 프레데릭은 비도덕적으로 휘청휘청대다가 애정에 실패함으로써 마지막에 안정에 가닿는다..머뭇거리다가 망쳐버린 하루뒤에도 찾아온 잔잔한 저녁처럼
그리고 친구인 데로리에와 인생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어쩌면 그것이 살아갈 수 있는 박카스, 프레데릭에게 더욱 절실한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망나니 프레데릭은 객관적으로 용서받기 힘든 삶을 살았다
프레데릭이란 사람 자체는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행동과 사람을 분리시킬 수 있을까? 어쩐지 날이 갈수록 분리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플로베르의
묘사에는 다시말하지만 조소가 깃들어있다 어떤 장면에서는 너무하다싶을 정도로 변명의 틈없이 프레데릭은 비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 회상할 나이가 되면 웃게된다 그 장면이 이 소설을 조소와 조롱만이 아닌, 따뜻한 주황 저녁 놀을 떠올리게 한다
존나 개노잼이던데 ㅜㅡ
노잼이긴 해..근데 난 꿀노잼인거 좋아해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