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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처음 천인오쇠 표지를 봤을 땐 놀랐었다
난 대강 무채색 정도의 색감으로 나오지 않을까 했었거든

황홀하면서도 충동적이고 음울했던 봄눈은 탁한 분홍색 + 탁한 흰색
순수하고 거침없었던 달리는 말은 파란색 + 흰색
가장 육감적이고 도색적이었던 새벽의 사원은 밝은 분홍색 + 밝은 연두색이었으니까

예전에 독갤에서 본 천인오쇠 스포와 혼다의 노쇠를 토대로  표지 색감을 예측해보자면
1.하얀색, 2. 회색 or 적어도 채도 낮은 색이 선택될 줄 알았어

근데 예측은 뭐 하나 맞는 게 없고
선택된 건 그 어느 시리즈보다 농밀한, 깊은 바다와 그곳에 내려앉은 피 같은 색깔들..
처음엔 이질적인 느낌이었는데 읽다보니 이런 색감 배치가 꽤 적절하게 느껴지네

풍요의 바다 시리즈의 특성상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에 작가놈의 국가관이나 시대성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지만
그런 부분을 빼고 본다 해도 나한테는 만족스럽게 느껴졌음
말 그대로 풍요롭게 ㅋㅋ

사실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님
봄눈, 달리는 말에서 빌드업되고 새벽의 사원과 천인오쇠에서 드러난, 소설의 가장 원초적인 기제는 전작들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진 않았음
미시마 유키오가 늘 말하던, 이른바 피해의식이나 컴플렉스..

책으로 4권에 달하는, 사람의 삶으로는 60여 년에 해당하는 이 서사시는 결국 부족한 한 인간을 주인공으로 만들기까지의 과정인 것 같다
혼다가 생애 내내 관찰해온, 비교조차 감히 생각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자신의 친구를 결국 지상으로 완전히 끌어내리고 자신의 고뇌를 극복해 마침내 하나의 온전한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아무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만약 혼다가 도루를 양자로 삼아 평범한 인간의 양식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도루는 또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며 20살에 죽고, 윤회가 반복되지 않았을까?
혼다는 도루를 만나 쇠함을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해, 천인 같던 제 친구의 두 날개를 찢어 깊은 바다로 던져버리고 주인공 자리를 찬탈해낸 거지

내 소설 내공이 부족한 편이라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소설의 말미도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지금까지의 방대한 서사를 단 몇 페이지로 모호하게 만들어버린다기보단
원 주인공 기요아키를 따돌리고 혼다만 저 멀리 새로운 진리의 경지로 나아간다는.. 그런 느낌을 주기 위한 것 아닐까?

아님 말고


아무튼 이 시리즈를 읽다 보면 작가 문제로 인해 그 독특한 행보나 희한한 죽음의 실마리가 이곳에 담겨 있지 않을까 하고 그 부분에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소설 외적 배경을 제외하더라도 나한텐 무척 풍요롭게, 또 한편으론 짜릿하고 통쾌하게 느껴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