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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인간 실격과 구의 증명을 차례로 읽고 저는 예민하고 감정적이고 충동적이고 내성적인 생각 많은 주인공을 극혐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취향의 문제인가 하고 대충 넘겨버릴 때쯤 생각 없이 빌렸던 대문호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통을 읽고, 저는 전술한 특징을 죄다 때려박은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이라 할지라도 이를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게 하는 방식을 완전히 달리 만들어낼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인간 실격과 구의 증명은 회상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오래전 일어난 일을 푸념하는 넋두리의 인상이 강했던 반면, 여기서는 편지의 형식을 취하며 현장성을 키우고, 독자를 수신인, 즉 관찰자의 위치에 서게 함으로써, 독자가 베르터의 행동을 어느 정도는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실제 수신인인 빌헬름의 답장을 수록하지 않음으로써 베르터의 고독을 훨씬 강조시킨 것은 덤입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작품이 완전히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 되어버려서 그냥 독자가 완전히 베르터에 이입하게 용이하도록 되어버린 것 같긴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읽고 따라서 죽었나봅니다...)
이와 더불어, 베르터의 정신병이 극단으로 치닫는 후반부에는 아예 편집자가 사건을 서술하는 형식을 택하며 작품이 지나치게 과격해지는 것에 균형을 맞추었습니다. 편지 형식의 초중반부에서는 베르터가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생생하게 표현하였기에 베르터라는 사람을 온전히 체험한다는 느낌이 강했던 것과는 반대로, 후반부는 편집자가 재구성해낸 등장인물들의 모습만이 드러나는 탓에 베르터에 대한, 직접적 경험 없는 지식의 습득만이 남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이 편집자, 묘사력이 보통 수준이 아닌지라 굉장한 몰입감을 가져다줍니다...)
작중에서 끊임없이 성경에 대한 알레고리를 선보인 탓에, 내용을 성경과 결부짓지 않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실제로 을유판 해설에서는 베르터와 예수를 연관 짓기도 하더군요. 저는 무의식적으로 후반부 홍수 장면을 창세기에서의 홍수와 끊임없이 이어보게 되었습니다. 창세기에서 야훼는 타락한 지상을 정화시키기 위해 대홍수를 일으킵니다. 홍수로써 지상의 죄를 씻어내는 것이지요. 만약 홍수 장면에서 베르터의 충동이 미수에서 그치지 않았더라면, 그는 안타깝게 사고로 사망한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작품 마지막만큼의 고통을 남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장례식에 성직자들이 참석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하지만 베르터는 죽음을 뒤로 미루고, 로테에게 부담과 고통이 될 뿐인 유서를 남기며 결국 죄인으로서 죽었습니다. 여기서 베르터에 대한 가치판단을 절제한 편집자의 서술은 인간 실격의 마지막 대사와 비교해보았을 때, 훨씬 뛰어나 보입니다.
이 작품이 어째서 예나 지금이나 끊기지 않는 사랑을 받아왔는지 이해가 됩니다. 감정 이입을 하는 독자이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독자이든,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이렇게 몰입해서 독서한 것은 오랜만이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