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RS. Rachel Lynde lived just where the Avonlea main road dipped down into a little hollow, fringed with alders and ladies’ eardrops and traversed by a brook that had its source away back in the woods of the old Cuthbert place; it was reputed to be an intricate, headlong brook in its earlier course through those woods, with dark secrets of pool and cascade; but by the time it reached Lynde’s Hollow it was a quiet, well-conducted little stream, for not even a brook could run past Mrs. Rachel Lynde’s door without due regard for decency and decorum; 


소설 시작 부분이다. 창밖을 바라보는 레이첼 린드 부인이 매슈의 외출을 보고 사정을 궁금해하는


몽고메리는 이렇게 길게 늘어지는 풍경 묘사가 많아서 번역하기 힘든 작가다.


소장 중인 국내 번역본 위주로 살펴보면 

 


느릿하게 비탈진 애번리 마을 큰길을 따라 내려가면 움푹 파인 땅에 이른다. 


레이철 린드 부인은 이곳에 살고 있었다.


둘레에는 오리나무며 푸셔(바늘꽃고의 관상용 딸기나무)가 우거지고,


훨씬 안쪽 크스버트네 숲에서 흘러오는 시냇물이 그 사이로 흐른다.


숲 안 상류 쪽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못이랑 폭포 등이 있어 꽤 세차게 흐르는 듯하지만,


린드네 집이 있는 움푹 파인 땅에 이를 즈음은 흐름이 고요한 시냇물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레이철 부인의 집 앞을 지날 때는 시냇물조차도 예의범절을 차리지 않고 흐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1981년 동서문화사 박순녀 역 



레이철 린드 부인은 애번리 마을 큰길이 느릿하게 비탈져 내려가는 작은 골짜기 언저리에 살고 있었다.


둘레에는 숙녀의 귀걸이라고 불리는 자줏빛 꽃들이 핀 야생 푸셔와 오리나무가 우거지고, 오래된 커스버트네 집 뒤편 숲에서 흘러


내려오는 시냇물이 그 사이를 가로질러 흐른다.


이 시냇물도 상류 쪽에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못이며 구불구불 폭포를 이루어 꽤 세차게 흐르는 듯하지만, 린드네 집이 자리한 골짜기에 


이를 즈음에는 고요하게 잠잠히 흐른다. 


그도 그럴 것이 린드 부인 집 앞을 지날 때는 시냇물조차 예의범절을 차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 2014년 동서문화사 김유경 역   



참고는 당연히 했겠으나 차이가 있다.


오리나무와 함께 언급된 숙녀의 귀걸이는 원문에선 ladies’ eardrops. 푸셔나무를 부르는 여러 명칭 중 하나인데 


박순녀 역이나 후술할 현대지성 역은 푸셔라고 번역했고 김유경 역은 숙녀의 귀걸이라 불리는 자줏빛 꽃으로 풀어썼다 


한국인이 푸셔 나무 꽃의 이미지를 바로 떠올리지 못하리라 여겨 나름의 배려로 한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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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철 린드 부인은 에이번리 마을 큰길이 작은 골짜기 쪽으로 경사져 내려가는 곳에 살았다.


오리나무와 푸크시아꽃이 부인의 집을 빙 둘러 싸안고 있었다.


커스버트네 낡은 집 근처 숲에서 솟아난 시내가 이 길을 가로지르며 흘렀다.


상류에서는 어두운 비밀이 서린 것처럼 보이는 연못과 작은 폭포를 곳곳에 만들어내면서 구불구불 세차게 흐르기로


유명한 시내였지만, 린드 부인네 골짜기에 이르면 잔잔하고 얌전한 실개천으로 바뀌었다. 


시냇물조차 예절과 품위를 지키지 않고서는 부인의 집 앞을 지날 수 없었던 모양이다. 


- 현대지성, 오수원 역



원문의 dark secrets of pool and cascade; 을 박순녀 역에선 깊이를 알 수 없는 못이랑 폭포로 의역했고 

(역자가 다크 시크릿을 번역 못해서 그러진 않았겠지)


김유경 역도 이를 따랐다.


현대지성은 어두운 비밀이 서린 것처럼 보이는 연못과 작은 폭포로 원문을 살려 잘 번역했다



레이철 린드 부인은 에이번리의 아담한 골짜기를 향해 비탈진 큰길이 나 있는 곳에 살았다.


큰길가에는 오리나무와 금낭화가 늘어서 있었고, 커스버트네 숲 속 깊은 곳에서 시작된 개울이 린드 부인의 집 앞을 가로지르며 지나갔다.


그 개울은 숲 속 상류에서는 은밀한 비밀로 가득한 웅덩이와 폭포를 이루고 구불대며 세차게 흐르지만,


린드 부인네 집 앞을 지날 때는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예절을 갖춰야 한다는 걸 알았던 모양이다. 


2008, 세종서적 강주헌 역 



세종서적 역본 역시 현대지성과 같다. 푸셔랑 금낭화가 같은 꽃인지는 모르겠다.


촌동네 개울에 무슨 은밀한 비밀이냐 할지도 모르겠는데 몽고메리 다른 작품 보면 프린스 에드워드 시골 동네에 괴담 같은 게 많다


몽고메리는 고딕 소설도 썼다



보면 (일어 중역본인 신지식 선생의 역본은 제외하고) 최초의 완역이라 할 수 있는 박순녀 역은 의역을 망설이지 않았고 김유경 역도 그 영향 아래 있으나


후대 작품들은 가급적 직역을 선호했다.



개인적으로 각 역본의 미덕은 차이가 있다.


일단 동서의 박순녀, 김유경 역은 모두 외전인 에이번리 연대기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짚고


박순녀 역은 전부 읽어 본 결과 역시 한국어 구사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 번역도 또 다른 작품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훌룡한 문학작품이다


근데 80년대 나온 물건이라 상태 좋은 중고책 구할 방법이 없을거다


 

김유경 역도 미덕이 있다. 이 김유경 역은 내가 아는 한 몽고메리와 그녀의 작품에 대한 해설과 각주가 가장 풍부한 역본이다. 


나무위키에는 박순녀 역부터 각주가 충실한 것처럼 이야기했는데 박순녀 역에는 주석 별로 없다


인터넷 미리보기에는 안 나오는데 일단 책 펴면 30페이지 이상을 사진을 곁들여 모드의 삶과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모드의 작품은 그녀가 살아온 삶에서 겪은 에피소드들이 잔뜩 들어가 있는데다 


(가령 수업 시간에 시 끄적이며 딴짓하다 필립스 선생한테 걸리는 에피소드나 필립스 선생의 고별사에 별로 친하지도 않던 애들이 울면서 귀가하는 건 실화 기반이다)


 19세기 캐나다 섬 정서가 우리하곤 달라서 상세한 해설이나 각주가 필수인데 충실하다


빨강머리 앤은 해적번역으로 악명 높았던 동서문화사가 80년대부터 철저하게 저본을 밝히고 있는 역본이기도 하다


이 놈들은 몽고메리에 한해서는 정성이다

 


현대지성은 원문 충실도가 가장 높은 번역이라 생각된다


이 부분에 민감한 독자라면 현대지성 역을 추천하려 한다


주석도 김유경 역 만큼 빼곡하진 않으나 괜찮게 달았고 


외전을 포함하지 않은 점은 아쉬우나 삽화도 있고, 오디오북도 있고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쓴 역본이다  



세종서적은 판형이 제일 작아서 들고 다니기 편하다.


원문 충실도는 현대지성보다 떨어지고 주석은 김유경 역보다 떨어지고 한국어 구사력은 박순녀 역보다 떨어지는데


들고 다니긴 쉽다




동서가 2025년에 최순영 역으로 새로 번역을 냈다. 


이 역본은 가장 떨어지는 역본이라 생각한다.



린드 부인이 외출하는 매슈를 보고 차 마신 다음 머릴러를 찾아가 사정을 캐물으려 다짐하는 장면이 있다


 the worthy woman finally concluded.


현대지성 역본은 '현숙한 여인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라고 번역했고 


잠언 31장 10절에서 따온 표현임을 각주로 알렸다


성경의 이 부분은 어떻게 번역할지 논쟁이 있고 개역성경(현숙한 여인)과 새번역 성경(유능한 아내)이 다른데


현대지성 개연개정판을 따랐다. 백 번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박순녀 역은 '마침내 이 호기심 많은 부인은 마음을 먹음먹었다'


고 번역해서 원문 늬앙스는 살리되 표현을 간략하게 밀어버렸다 



세종서적은 '이 현명한 부인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로 제대로 했다 



김유경 역은 '린드 부인은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 엉뚱한 오역을 했다. 


박순녀 역은 원문 표현은 밀어버렸어도 린드 부인이 머릴러를 찾아가 물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점은 분명히 했는데 


김유경 역의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린드 부인이 포기했다는 늬앙스가 버리지 않은가?


바로 뒤이어서 머릴러에게 사정을 묻기로 하는 장면과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 한다

 


이제 25 동서 최순영 역을 보자. 구매를 안 해서 미리보기 비교다


<결국 린드 부인은 추리를 단념할 수 밖에 없었다>


김유경 역의 오역을 승계한 것도 모자라 추리라는 창조 번역을 덧붙였다


이 새 번역은 본편 8권만 번역하되, 시리즈 4권에서 기존 번역본(일부 어두운 내용 삭제)들과는 다른 저본을 써서


삭제 없이 그대로 담아냈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4권만 사서 비교해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