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e88675b3846bf136f1c6bb11f11a3953f50ec6d5f2c42862



자유주의적 이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을 때면, 나는 언제나 왜 인간들이 공허한 말의 울림을 가지고 서슴치 않고 거기로 끌려들어 가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이념은 자유주의적이어서는 안 된다! 이념은 강력하고 그 자체로 완결되어 유용한 것이어서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신적 소명을 충족시키는 것이리라. 개념도 더욱이나 자유주의적이어서는 안 된다. 개념도 전혀 다른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자유주의적 본성을 찾아야만 할 곳은 신념에서이다. 신념은 살아있는 정서이다. 그러나 신념들이 자유주의적인 경우는 드물다. 왜냐면 신념은 개성으로부터, 그 개성의 가장 가까운 연관들과 필연성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생성되기 때문이다. ─잠언과 성찰




헤겔을 읽지 않아야만 우리는 그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을 읽는 것, 읽지 않는 것, 그를 이해하는 것, 오해하는 것, 거부하는 것,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 헤겔의 결정에 달려 있거나, 그 모든 경우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리가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 가져오는 강도에 따라, 하나의 자리도 있을 수 없다는 불가능성 속에서, 우리는 헤겔을 완성된 의미라는 사기를 칠 수 있도록 살아 있게 만드는 어떤 죽음─독서의 죽음, 글쓰기의 죽음─을 준비한다. (헤겔이 사기꾼이라는 것, 그 사실이 그를 극복할 수 없게 만든다. 자신의 심각함에 빠져 미쳐버린 자, 진리의 위조자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러니의 거장이 되기까지 '속인다'─실비아 아가친스키.)  ─카오스의 글쓰기




(··) 청년 장교였던 오쿠라 에이이치大蔵栄一는 나중에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천황이 연회장에 나타났을 때 참석자들 전원이 최고 예우로 맞이했다. 연회장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내가 최고 경례를 하면서 문득 생각한 것은 천황을 눈앞에서 맞이하면서 왜 만세를 부르지 않는 것일까, 이럴 때야말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하늘에 울려 퍼지는 만세 소리를 내야 하는 것 아닌가······ 천황이 없을 때는 흔히 만세 삼창을 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맞이하고 보니 그저 황공하게 엎드려 있기만 했다. 어딘가 잘못됐다. 천황을 구름 위에 떠받들고, 구름 아래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현상이 오늘날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요운(妖雲, 불길한 징조가 느껴지는 구름-역주)이다. 이 요운을 하루라도 빨리 열어젖히고 진짜 일본의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우리는 도쿄의 회합 석상에서 좋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요운을 걷어낸 새벽엔 천황께서 니주바시(二重橋, 천황이 지내는 황궁 앞에 놓인 다리들의 통칭-역주) 앞에 나오시게 해서 국민과 함께 천황을 헹가래 치지 않겠는가?' 이는 우리 청년 장교들 사이의 솔직한 기분이었다." ─국체론




레비나스: 내게 진보 관념은 그리 믿을 만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다른 인간을 위한 책임이─또는 이렇게 표현해도 괜찮을 텐데─인간의 얼굴의 현현이 '자신의 존재에 집착하는 존재'의 껍질에 구멍을 뚫는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타인을 위한 책임이고, 성스러움 sainteté의 이해관심을-벗어난dés-interessé 타자를-위함이죠. 인간들이 성자라거나 성스러움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나는 다만 성스러움의 소명이 모든 인간 존재에게 가치로서 인정된다는 점, 이런 인정이 인간적인 것을 규정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죠. 인간적인 것이 흔들림 없는 존재를 꿰뚫은 겁니다. 어떤 사회 조직이나 어떤 제도도 순전히 존재론적인 필연성의 이름으로 성스러움을 확증하지도, 심지어 생산하지도 못한다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성자들이 있었지요. ─타자성과 초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