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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이클로노피디아>를 접했을 때의 인상은 당황이었다. 여행 중 이 원고를 발견했다는 서문과 함께 옛 중동에 대한 실험적인 해석을 제시하던 학자의 이야기가 나오다가, 악트의 십자가의 각 꼭지점과 모서리에 대응되는 숫자와 이 숫자들의 합이 10이 되거나 9가 되는데 10이 완전한 것이고 9는 그 완전함이 일부 파괴된 것으로 운운하는 수비학에 얼떨떨하다가, 이 신화 이야기가 심지어 석유 생성에 대한 이론과 중동 정세와 뒤섞이며 들뢰즈를 연상시키는 기겁할 수준의 어휘, 내가 뭔가를 잘못 읽거나 넘겼나 싶은 단언과 도약, 끝없는 아포리즘에 휩쓸려 이게 대체 무슨 책이지, 생각하며 그만 덮어버리고 말았다. 그 전에 좀 더 알아둬야 할 맥락이 많았던 글이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맥락을 알아도 딱히 읽기 쉽거나 온전한 이해가 가능한 책도 아니기도 하다. 사철 제본되어 책등 없이 기이한 아랍 문자로 가득한 겉표지까지 봤을 때, <사이클로노피디아>는 누가 봐도 한 권의 마도서에 가깝다. 옛 페르시아의 역사, 조로아스터교 및 이슬람, 수비학 및 신비주의, 석유의 음모론적 기원, 국가 정세 및 지정학, 현대 비판, 그 밖의 온갖 분류하기 힘든 것들이 잠언으로 뒤섞여 있는 한 편의 공포 소설이 수록된 마도서.
C1CRU라는 이름을 안다면 이 책의 비밀스러움이 상당수 해소된다. 하이퍼스티션hyperstition이라는, 문화를 매개체 삼아 실제로 실현되고자 하는 예언을 알고 있다면 조금 더.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이나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을 안다면 독해에 있어 딱히 어려움을 겪을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괴상하고 신비스러운 것이 <사이클로노피디아>다. 닉 랜드의 <Fanged Noumena>를 읽어보며 C2CRU에서 다루고자 했던 신비주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고 경악한 뒤 다시 찾은 <사이클로노피디아>는, 실제로 여전히 괴상하고도 신비스러웠으니까. 하지만 미리 말해두건데, 나는 어원의 역사에서 깃드는 종교와 악마성의 미묘한 뒤틀림, 완전한 사각형에서 불완전한 삼각형으로 가거나 10과 9로 합쳐지는 숫자들의 괴상한 수비학 등의 신비주의적 요소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슬람 및 조로아스터 신화에는 그보다 조금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 밖의 나머지가 주관심사였다. 개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역시 석유다. <사이클로노피디아>는 석유 및 중동을 그 자체로 살아 있는 행위자처럼 취급한다. 이 괴상한 가정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석유는 중동의 불안정한 정세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여러 정유 회사와 각 국가 사이의 이권 투쟁은 도저히 잠잠해지지 않는 복잡한 은원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으며, 많은 이들은 이라크 전쟁이 근본적으로 산유국 패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의 야욕이었다고 여기곤 한다. 곧, 서양이 중동에서 석유를 강탈하기 위해 줄기차게 중동을 침범한다는 뜻이다. <사이클로노피디아>에서 이 관계는 역전된다. 석유는 서양을 유혹한다. 박테리아 군집이 자연생성하는, 그 자체로 의식을 갖고 늘 중동 심연에서 존재하며 분출되던 석유는 중동 역사 속 여러 전쟁기계가 그랬듯 서양의 전쟁기계가 자신을 소비해 끝없이 전쟁을 이어나가도록 만든다. 마치 태양이 그저 자신을 불태우기 위해 계속 스스로를 불태우는 것처럼, 전쟁기계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지고 불을 뿜는 전쟁기계들의 모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쟁기계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양 곳곳에 빨려 들어가 사용되는 석유는 증류되며 그 미끈거리는 몸체 안에 녹아들어가 있던 온갖 독소, 사막의 먼지를 서양에 풀어놓는다. 그 이름은 이슬람이다.
이슬람. 사막의 종교. 우상숭배를 벌하고자 모든 높게 치솟은 것을 무너뜨려 평탄한 땅을 만들고, 딱딱하고 견고하게 안정적인 고체 기반에 구멍을 뚫어 안과 밖을 연결시키며 고체와 공백을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체 복합체의 문화. 이슬람은 사막화를 꿈꾸며, 중동 사막에서 석유를 뽑기 위해 뚫은 구멍은 필연적으로 이 석유를 받아먹기 위해 서양으로 이어진다. 구멍 뚫린 스펀지가 꼭 중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서양 역시 어느 정도 중동이 된다. 자신을 걸어잠그고 오직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외세를 받아들이려는 중동이 억지로 열릴 때마다, 파괴되는 중동에서 독소가 쏟아져 나오며 서양을 더욱 탐욕스러운 이슬람의 군세로 만들고, 둘을 서로 분리할 수 없게 결합시킨다. 유럽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노르트스트림을 통해 러시아의 가스가 러시아를 유럽의 경제권에, 유럽을 러시아의 정치권에 포획하는 것처럼. 물론, 석유는 자신의 땅을 지키고자 하는 중동의 전사마저 자신의 땅에 구멍을 뚫어 페트로달러의 이름으로 자신을 저 너머에 퍼뜨리도록 강제하는 악마다.
레자는 여러 고전 호러 영화를 바탕으로 이러한 분석에 살을 붙이는 동시에, <사이클로노피디아> 자체를 그런 호러 소설 중 하나로 만들고자 한다. 고체와 공백 사이의 관계는 경전의 서사로 건너뛰며, 그 자체로 사람을 유혹하며 사건을 일으키는 역할을 해내는 비생물 행위자를 게임 내 유물로 보듯, 오류 없이 잘 정렬되어 있어야 할 경전의 서사 속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설정 구멍 아래에서 각 구멍을 이을 것으로 여겨지는 로어의 세상을 펼쳐 보인다. 어디까지가 본디 경전의 내용이고 어디까지가 후에 첨삭된 위작인지 판단하거나, 본디 기술되어야 했지만 당시 사정이나 여러 신비주의적 힘의 발현으로 인해 적히지 않고 문장과 문장 사이로 사라진 서술. <사이클로노피디아>의 부제는 <작자미상의 자료들을 엮음>이며, 러브크래프트의 <네크로노미콘>처럼 <사이클로노피디아> 역시 가공의 저자 아래 수많은 역자와 주석가를 숨기고 꿈틀대는 마도서로서, 그 마도서의 원본을 읽고 반쯤 미친 학자가 자기 손으로 다시 쓴 마도서로서 존재한다.
덕분에 <사이클로노피디아>는 현실 속의 마도서가 되는데, 중동과 이라크 전쟁이라는 실제 현실 위로 펼쳐지는 하이퍼스티션, 석유 자연발생이라는 반박된 가설과 초현실적으로 확장되고 비틀린 이슬람-조로아스터교-페르시아의 신비스러운 믿음이 괴상한 현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대한 공포소설로, 동시에 그 공포소설이 상징하는 현실 비판에 대한 선동서로 읽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중동 뿐 아니라 서양까지 자신의 위장 안에 넣고자 하는 뚜렷한 영역 없는 괴물 석유의 이야기. Mystery Flesh Pit이 사람들이 자기 안으로 들어오도록 유혹하는 아귀와 같았다면 석유는 자신의 외벽을 서서히 확장시키는 괴물에 가깝다. 석유로 깔린 아스팔트 도로 위를 달리는 석유로 움직이는 자동차 안에서 석유로 만든 옷을 온몸에 두르고 석유를 먹고 자란 음식을 입에 넣는 사람이, 자신의 주변 뿐 아니라 자신의 안에서부터 꿈틀거리는 괴상한 악의를 느끼며 움직임을 멈춘다. 그러나 옆에 놓인 석유로 움직이는 휴대폰이 그 스스로 다른 휴대폰에 메세지를 보낸다: "더 많은 석유가 필요해!"
P. S. 닉 랜드의 악명 덕택인지, <사이클로노피디아> 말미의 인터뷰에서도 재차 자신과 현재 닉 랜드의 사상 사이의 연결고리를 최대한 끊어내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속하라>의 편집인이 약간의 냉소-랜드의 '암흑 계몽주의'는, 사실상 당신이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지에 관한 가정을 구상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읽기로 결심한다면, 매력적인 글입니다-와 함께 말했듯, 레자 역시 그런 글이 매력적이지 않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 내용이 형식의 매력적인 급진성에 비해 그리 급진적이지 않고 진부할 수는 있겠지만.
Ccru 금지어임? - dc App
cc가 뭐 매크로나 링크 때문인지
이거 ㄹㅇ 어지러워보이던데 이런 내용이었구나
들뢰즈가 먹물들에게 독을 풀었다
책 엄청 빨리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