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대통령후보는 7인으로 낙착되었다.
민주공화당 박정희
추풍회 오재영
자유민주1당 송요찬
정민회 변영태
민정당 윤보선
국민의당 허정
신흥당 장리석.
신문지상에 난 그들의 사진을 훑어보며 성유정 씨의 말이 있었다.
"닭 쫓는 X들."
"그 험구 좀 삼가시오."
했으나 나는 성유정 씨의 익살에도 일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일렬로 세워놓고 보니 관상학적으로도 박정희 씨가 제일 똑똑하게 보이는군."
성유정 씨의 그 말도 타당했다. 박정희 씨를 제외한 사람들의 모습은 아무래도 들러리의 모습이지 승리를 기할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섯이 함께 힘을 모아도 될까말까한 판국에 그 힘을 여섯 갈래로 분산하고 있으면서 이들은 승산의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는 것일까.
"사람의 마음은 알고도 모를 일이다."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자넨 누구헌테 투표하겠는가."
성유정 씨가 물었다.
"기권의 자유가 없다면 나는 오재영 씨에게나 할까 하는데요."
"왜?"
"추풍회란 이름이 로맨틱하지 않습니까. 정치의 빛깔이란 조금도 없는 단풍진 단풍잎을 연상케 하는 추풍회, 나는 그 이름에 투표하겠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박정희 씨는 이 사람에게 공로훈장을 주어야 할걸."
"그건 또 왜 그렇습니까."
"죽으면 죽었지 박정희 씨에겐 안 갈 표라는 것이 있을 게 아닌가. 만일 추풍회가 없었더라면 그 표가 윤보선 씨나 허정 씨의 표를 불려 주게 될 것 아닌가. 박정희 씨의 당락을 결정하는 관건이 추풍회에 있다고 나는 생각하거든."
"투표로서 결정될 거라고 선배님은 믿고 계십니까?"
"일단 그렇게치고 말해보는 거지."
"투표에 굴복할 사람이 수도에 총부리를 돌렸을까요?"
"이 교수는 나보다도 의심이 많군."
"그럴 수밖에요."
"그러나 투표는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될지 몰라. 대립후보 6명을 상대로 오직 자기 하나인데 자신 만만할 것 아닌가."
"그럴 수도 있겠지요."
"추풍회가 로맨틱하다는 이 교수의 의견엔 나도 동감이다. 그런데 그 로맨티시즘이 심리주의자 이상의 현실적인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 역사란 묘한 게 아닌가." (…)
10월 17일 상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가 있었다.
장리석 19만 8천 37표
박정희 4백 70만 2천 6백 42표
오재영 40만 8천 6백 42표
윤보선 4백 54만 6천 6백 13표
변영태 21만 6천 2백 53표
결국 박정희 후보의 당선이었다.
선거 직전 한국에 와 있던 프레데릭 조스는
"한국 국민은 위대하다."
고 했다.
"무슨 소릴 그렇게 해. 쿠데타를 승인한 국민이 어째서 위대하단 말이냐."
성유정이 버럭 화를 냈다.
"아니다. 미스터 성. 투표결과를 보라구. 박정희 후보의 반대표가 70만 표나 상회하고 있지 않는가. 이만 했으면 한국 국민의 위신이 섰다. 윤보선 씨의 낙선을 패배로 보아선 안된다.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두세 번 민주1당 정권 때 그를 만난 적이 있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그만한 표를 모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싫어하면서도 표를 찍은 국민들의 마음을 알 만하지 않는가. 윤보선은 패배해도 국민은 승리했다고 보아야지. 그러나 저러나 한국 국민의 위신을 이만큼 보였으니 박정희 씨의 당선은 한국 국민을 위해 잘된 일이다. 박정희 씨는 당선되어 대통령으로서 실패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쿠데타의 악순환을 방지할 수가 있다. 만일 그가 낙선되었더라면 어딘가에 누군가의 가슴에 미련이 남는다. 그 미련을 말끔히 지워버리기 위해서도 이런 식으로 당선해야만 한다."
조스의 이 말에 성유정 씨와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걱정이야."
하고 성유정 씨가 이 주필 얘기를 꺼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조스는 자신있게 말했다.
- 『그해 5월』(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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