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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키리니는 대표작 「첫 문장 못쓰는 남자」를 비롯한 다른 단편집도 여럿 있어서 단편소설 작가로 더 잘 알려진 작가였다. 하지만 한 번은 호흡을 길게 뺄 때도 있는지, 의외로 장편소설도 썼다는 걸 알았다. 「목마른 여자들」이 그런 책이었다. 드물게 쓴 장편 치고는 소재가 가히 파격적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용에 피에르 굴드가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옴니버스 식으로 서로 연관성이 없는 단편에 무슨 월리를 찾아라인 마냥 여기저기 기행을 부려댔던 캐릭터라서 기대가 컸다. 내가 책을 샀던 건 일단 그런 이유가 좀 더 마음에 끌려서였다.
성경 구절 중에 이브가 아담의 갈빗뼈로 만들어졌다는 건 공공연히 알려진 고리짝 대목이다. 하지만 이브의 갈빗뼈로 여자'만'을 빚는다면 어떨까? 책에 벌려진 판은 그 생각뿐인 발상이 아예 국가 단위로 구현된 세계였다.
요상한 상상력을 구사하지만 늘 한쪽 팔은 현실에 걸쳐 두는 키리니의 특성답게 그 세계는 벨기에라는 나라에서 구현되었다. 왜 하필 자신의 조국에다가 이런 가상의 무대를 펼쳤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벨기에가 입헌군주제 국가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이번 기회에 벨기에라는 나라를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여성이 우세하는 국가가 정말 실존하기도 하기 때문에 읽는 내내 이상한 기분을 내려놓기 힘들었다.
누구든지 이 책을 읽는다면 '여자들만의 세상'이라는 텍스트가 주는 1차원적인 상상을 맛보기 전에 역사책과 뉴스에서 많이 본 듯한 배경을 먼저 보고 당황하게 될 것이다. 당장 한국만 하더라도 제일 가까운 본보기가 바로 윗동네에 두 군데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러면서 또 계급은 천주교의 그것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종교인이라면 또 그것대로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런 실상을 다짜고짜 파헤치는 건 읽는 입장에서 고문받는 거나 다름없다.
작가는 그걸 염두했는지 내부고발 팀과 수박 겉핥기 팀을 책속에 번갈아가며 등장시켰다. 여성제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아스트리트의 일기, 그리고 여성제국을 취재하기 위해 방문하는 피에르 굴드 일행이 그랬다.
그동안 단편집에만 등장했던 굴드가 드디어 장편소설에서 전신을 드러냈지만 인간성에 크게 기대를 걸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 숱한 기행을 봐놓고도 관종이라는걸 잊고 있었다니.. 그는 제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자칭 깨어있는 지식인으로 변모해갔고, 정작 나는 취재 동료로 등장한 랑글루아의 시점에서 굴드를 황당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워낙에 관종이라 마침 전형적인 깨시민을 보여주기 좋았을 뿐이라는 생각은 들지만서도, 여성제국을 있는 그대로 비판한 동료를 명예훼손 따위로 법정에 세울 땐 육성으로 '야 이 인간아..!'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더라.
굴드와 함께한 취재팀은 의외로 남녀 성비가 반반씩 섞인 소수정예의 지식인 모임이었다. 다같이 여성제국에 긍정적인 관심을 갖고 출발했지만 막상 입국해서 취재를 거듭할수록 그들 사이에서 묘하게 온도차가 갈라지는 것이 볼 만 했다. 자매로서는 반갑지만 형제는 글쎄..?
여성제국에 긍정하는 남자들은 기꺼이 방문해서 둘러봐도 좋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남자라도 손님으로 대우해주니까. 하지만 공감의 영역에 침범하는 순간이면 요즘 속된 말로 대가리가 깨지는 느낌이 상당히 얼얼할 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결백함까지 공감해준다는 뜻은 아니거든.
일행이 취재했던 장소 중에는 이런 곳도 있었다.
2년이나 공들여도 비자를 얻을까 말까하는 폐쇄적인 국가이지만 표면적으로는 여권 신장을 갈구하는 여자들에게 언제든 열려있는 기회의 땅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리 '여성끼리' 행복해 마지않는 곳에서 왜 '목마른 여자들'이라는 제목이 뽑힌 건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마냥 피에르 굴드의 취재 일정을 따라 양지로만 걸어다녔으면 생각하지 못했을 부분이었다.
혹여 이런 나라를 막연히 꿈꾸는 여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여성제국은 불과 20년만에 무너졌다는 걸 스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남자들이 아니라 내부 여자들의 반란에 의해서다. 혁명으로 흥한 나라가 혁명으로 망한 셈이다. 그 옛날 2차 대전때 히틀러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작전명 발키리, 그게 문득 생각나더라고.
간호사 아스트리트의 일기는 미처 거기까진 따라가지 못한 채 끝이 났다. 중간에 피에르 굴드와 마주치지도 않았고, 그녀가 일했던 폐쇄 병동이 취재받는 일도 없었다. 사실 그 부분이 겹쳐질까봐 읽는 내내 조마조마했었다... 그 폐쇄 병동에는 거세당하고 울부짖는 남자들이 있었거든.
평범한 간호사였던 그녀가 우연히 제국의 수장에게 애첩으로 간택받아 하루아침에 인생이 격변하는 일기는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봐도 좋았다. 어릴때부터 교육받은 피해의식, 제국에 대한 숭배심, 동성애의 탐닉 같은 거북한 요소만 감수하면 심경의 변화를 가감없이 서술한 것이 꽤 흥미로웠다.
제일 중요한 건 계급제도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몸소 겪고 국가의 정체성에 회의감을 느끼는 것도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제도에 길들여진 의존성향이 더 강했기 때문에 감히 이의를 들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 한다. 그녀가 신데렐라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애초에 국가에서 하라는 대로만 따라갔기 때문이다. 그러다 단 한 번 이성적으로 거부한 것이 그녀의 인생을 절단내는 가위로 되돌아왔다.
이 일기는 나중에 발견돼서 나온 건가?
아직 살아있는가?
책을 읽는 동안 슬쩍 깔렸던 불안감이 결국 벌어진 것을 확인했을 땐 어쩐지 조금 안타까웠다. 끝까지 제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녀는 결국 피해자였을 뿐이었다. 뼛속까지 남성혐오가 배었을지언정 자기가 낳은 아들을 버릴 정도로 비정한 엄마도 아니었기에 더 그런 것 같다.
아마 이 책을 읽은 여성 독자 중에는 단단히 화가 나서 키리니를 여혐 작가라고 낙인을 찍었을지도 모른다. 제법 인지도가 있는 작가인지라 출간된 단편집마다 평점이 많지만 유독 이 책만 싸-늘하고 오히려 중고책으로 판매하는 재고가 더 많았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후기를 쓸 때가 걱정됐다. 내가 이런 글을 씀으로써 좋아하는 작가가 괜히 수면 위로 떠올라서 뭇매를 맞지나 않을까 말이다. 아님 나 혼자 읽고 닥치고 있어야 했나? 어느 쪽이 작가를 아끼는 방법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반쯤은 sos를 치는 심정으로 쓰는 후기글이다. 누구든 관심 있으면 나처럼 읽어보고 이 작가의 진면목을 평가해 달라고 말이다. 난 리뷰 읽는 것도 좋아하는데.. 유일하게 텅 빈 이 책의 평가란은 지금도 당혹스럽다.
끝맺는 말로 작가가 이 여성제국을 완전히 악의적인 의도로 상상한 것 같느냐면 그건 아닌 것 같은 게 내 결론이다. 그저 가장 적절한 제도를 찾아서 구현한게 저 모양이었을 뿐이다. 1970년대 시대에 오히려 이 정도로 통제해서 20년이나 간 것도 꽤 오래간 것 같다. 만약 이게 지금같은 시대라면 또 어떨까... 그건 좀 상상하기 두렵네. 아니, 지금 돌아가는 꼴 보면 그렇게 되가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소설보다 오히려 현실이 더 무섭다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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