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하게, 아무 쓸모 없이 방기된 십자가. 이 신앙심 깊은 여자도 죽는 순간에는 그리스도보다 프레데릭이 더 중요해졌던 걸까? 그녀는 정말로 프레데릭을 사랑하게 되었던 걸까? 아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보다 개인적인 차원의 어떤 감정이었다. 그녀는 프레데릭이 자신의 심판자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로부터 찬사를 받아내기 전에는 자신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가본 사람' 이라는 결 그에게 입증해 보이기 이전에는, 자신이 도달한 그 궁극 역시 본질적 현상이고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받기 전에는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프레데릭의 평가가 이처럼 절실한 문제였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인정과 확인을 그리스도에게 갈구한 것이 아니라, 그저 명민한 의식의 소유자일 뿐 한 인간에 불과한 프레데릭에게서 얻어내려 함으로써 사상의 어떤 놀랄 만한 이단성을 노출했다. 그것은 삶을 위해 절대를 포기하는 일이었고, 한 인간의 심판자는 신이 아니라 또 다른 인간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고백하는 일이었다. 그 순간에는 물론 나도 그것을 지금처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인간의 두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그녀의 시선을 본 순간 전율이 내 몸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히폴리트의 아내 손에 들려 있던 신은 무용지물이 되어 잊혀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