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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풍요의 바다 연작 4부작의 마지막이자 미시마 유키오의 유작. 풍요의 바다 연작은 화자인 혼다가 친구인 마쓰가에 기요아키의 죽음과 환생을 관조하며 그 당시의 일본을 그려내는 글인데, '천인오쇠'에서는 16살의 고아 소년 도루가 그 환생으로 비춰져 등장한다. 젊고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점에선 '달리는 말'의 이사오나 '파도소리'의 신지를 떠올리는 면이 있지만 도루가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그는 전후 태생이라는 것이다.
'봄눈'에서 미시마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일본 화족 사회를, '달리는 말'에서는 그 나름의 애국적 행동을 그려냈다. 그러나 풍요의 바다 3번째작인 '새벽의 사원'부터는 배경이 전후로 바뀌면서 더이상 그가 그리는 이상적인 일본은 사라져가게 된다. 전후 일본은 이제 외국의 영향에 지배받으며 사상적, 정치적인 것들조차 맑스주의와 같은 탐탁치 않은 것들로 가득하다. '달리는 말'에서 철썩같이 환생을 믿었던 혼다가 '새벽의 사원'이후로는 의심을 품은채 기요아키의 환생에 다가가는 것은, 전후의 일본이 이전과는 달라진 새로운 곳임을 짐작하게 한다.
미시마에게 전후의 일본은 이제 수많은 외국 선박들이 드나들며 사방에는 코카콜라로 대표되는 외국의 산물(특히나 미국)들로 가득하며 일본적인 것들은 일본인에게조차 제대로 닿지 못하는 방황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그가 기요아키의 환생을 통해 발견하기 원하는 것에는 결국 작가가 생각하는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담겨있단 점에서, 이 연작이 그의 삶 전체를 그려냈다고 하기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글의 마지막에서 혼다는 자신이 기요아키의 환생임을 믿어 입양까지 했던 도루가 기요아키의 환생이 아닐뿐더러, 그가 친구라 생각했던 기요아키의 존재조차 (역시 기요아키의 정인이라 생각했던)사토코에게 부정당한다. 오직 그것들은 혼다의 마음에만 존재하는 무언가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혼다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일본의 미의 마지막 연결점인 사토코에게 그 미를 부정하는 것은 철저하면서도 완벽한 붕괴를 드러낸다.
혼다가 평생을 쫓아왔던 윤회환생의 자취가 그 뼈대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봄눈'을 통해 그려냈던 그 일본적인 아름다움조차 실재하는 것인지를 의심케 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고뇌를 느낄 수 있는데, 특히 이 글의 원고를 마무리한 뒤 바로 미시마 사건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이 글은 미시마 나름의 자신을 완결짓는 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전체에서 혼다는 늙음과 단지 살아있기만 하는 행동에 공포와 분노를 느끼며 젊음과 아름다움을 질투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서술이야말로 미시마가 가장 두려하는 것을 잘 드러낸 부분이 아니었을까.
풍요의 바다 연작은 미시마 유키오 개인의 고뇌와 일본의 시대상을 불교의 윤회환생과 유식론의 논의를 빌려 상당히 잘 짜내어낸 글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 불교적 기반-오직 각자의 마음(아뢰야식이라 할 수 있는 근원적인것)만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는 유식 사상-을 활용해 혼다가 '보는 것'을 통해 믿어왔던 것들에 대한 부정을 하는 것으로 미시마가 주장해왔던 일본적인 것에 대한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은 매우 좋았다.
번역에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4권 모두 무사히 번역된 것은 다행이고 풍요의 바다 연작이야말로 미시마의 집대성에 가까운 글이니만큼 후기의 미시마를 설명하는 데 있어 이 이상 가는 글은 없을듯 하다. 대부분의 대표작들은 번역이 되었단 생각도 있어, 앞으로 미시마의 글을 얼마나 접할 생각이 들지는 의문이지만.
정리하자면 미시마는 진실로 이 연작 안에 자신을 담아내려 시도했고, 그것은 꽤나 잘 해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의 생각이 개인의 일탈적 사건 이상으로 더 뻗어나가지 못했단 점에선 다행스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여기에 약간의 낭만적 허무함을 느끼게도 한다는 점이 그가 뛰어난 작가인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풍요의 바다를 일본적인 것 vs 미국(이나 대립적 가치)로 나누는 해석이 많은데 나는 좀 공감이 안됨 일본적인 걸 강조했나? 그냥 소재가 그런거지 딱히 그게 주제가 된 적은 다른 소설까지 통틀어서 한번도 없었다고 보는데
미시마는 철저하게 일본 내부에 집중한 것에 가깝기 때문에 대립적인 면으로 썼다기보단 외부가 들어오는 것을 통해 바뀐 일본이란게 더 중요할 듯 합니다.
그니까 미시마는 오히려 문학적으로 엄청 관념적인 작가지, 민족주의나 국가의 정체성같은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고 나는 봐서
미시마에게는 항상 그 이상적인 일본의 이미지가 박혀있단 것은 글과 행동과의 동치를 통해 말할 수 있을듯 한데요...
나는 모르겠음... 그의 최후가 문학과 동치인 건 오로지 예술의 영역에서만 그렇지, 어떤 정치적 사상으로 보면 천인오쇠 결말과 자결은 굉장히 모순적이고 아이러니함 그래서 더더욱 일본성이나 국수주의적인 것으로 미시마 사상을 이해하면 안된다고 봄
꼭 일본과 그 외를 대립시킨다기보다도 아름다웠던 과거와 그렇지 못한 현재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그렸다고 봐도 될 듯
난 반대로 시리즈 초중반 자전적인 소설인가 싶었는데 끝으로 갈수록 전후가 바뀐듯한 느낌을 받음. 미시마 생애를 훑고 달리는말까지 읽으면 그냥 관념을 관철하기 위한 도구로 소설을 활용한 느낌인데 천인오쇠까지 읽으니 글이 먼저고 후에 행보는 자기가 쓴 글을 위한 행동들인가 싶었음
전 그 괴리감과 방황이 행동을 만들었다...쪽으로 생각을 하곤 있네요. 현실이 글처럼 되지 않았단 것에 상당히 고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