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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문사 판본은 2권인지 3권까지 읽다가
생각했던 흐름이 아니고
주인공의 아내가 외도하는 장면이 걸려서
중간에 접었었다.
이번에 민음판으로 읽었는데
일본문학은 번역은 크게 번역을 잘못하지 않으면
거기서 거기라고 보는 편이지만
확실히 김난주가 번역을 더 유려하게 잘한 거 같더라.
소위 하루키 터치가 느껴진다고 해야되나.
태엽감는 새를 끝으로 본의 아니게
하루키의 굵직한 작품은 모두 읽게 됐는데
하루키에게 제일 성숙한 작품이며
터닝 포인트가 되는 작품은 태엽감은 새인 거 같다는 인상이네.
1p84가 당대의 충격적인 사건인 오옴진리교를
모티브로 자신이 속한 세계를 끌아 안는다면
태엽감는 새는 오늘을 사는 주인공의 결락감의 근원을
일본제국주의 시대의 막바지인 1940년를 거슬러 올라가
더듬는다는 면에서 시원적이고
그 부끄러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역사를 회피하지 않고
마주한다는 면에서 성숙함이 느껴지더라.
다만 좋게 말하면 하루키의 장끼랄수 있는
이야기 가지치기와 소설의 한축인 초현실적인 세계의
핍진성을 강화하기 위한 인물의 역할이
너무 기술적인 수단, 테크닉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쉽고
각 가지에서 생성되는 밑도 끝도 없는 초현실적 환상성이
언제나 그렇듯 미봉되는 느낌이라 좀 찝찝하긴 하다.
다 읽고나서 생각해 보니 태엽감는 새를 기점으로
하루키의 남자 주인공이
매력이 없어지는, 좀 건조하고 밋밋한 인물로 설정되기
시작하는 거 아닌가 싶네.
초기작 주인공은 꽤 쿨하고 니힐하고 그렇차늠.
갠적으로 일큐팔사 주인공은 진짜 최악이었음.
하루키는 남자 주인공이 품어내는 매력과 작품의 성숙도를 맞바꾼 느낌도 드네.
암턴 나름 태엽감는 새는 재밌게 읽었다.
김난주 번역도 좋았고. 문사로 이미 읽었더래도
만족할수 있을 꺼 같다.
생각했던 흐름이 아니고
주인공의 아내가 외도하는 장면이 걸려서
중간에 접었었다.
이번에 민음판으로 읽었는데
일본문학은 번역은 크게 번역을 잘못하지 않으면
거기서 거기라고 보는 편이지만
확실히 김난주가 번역을 더 유려하게 잘한 거 같더라.
소위 하루키 터치가 느껴진다고 해야되나.
태엽감는 새를 끝으로 본의 아니게
하루키의 굵직한 작품은 모두 읽게 됐는데
하루키에게 제일 성숙한 작품이며
터닝 포인트가 되는 작품은 태엽감은 새인 거 같다는 인상이네.
1p84가 당대의 충격적인 사건인 오옴진리교를
모티브로 자신이 속한 세계를 끌아 안는다면
태엽감는 새는 오늘을 사는 주인공의 결락감의 근원을
일본제국주의 시대의 막바지인 1940년를 거슬러 올라가
더듬는다는 면에서 시원적이고
그 부끄러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역사를 회피하지 않고
마주한다는 면에서 성숙함이 느껴지더라.
다만 좋게 말하면 하루키의 장끼랄수 있는
이야기 가지치기와 소설의 한축인 초현실적인 세계의
핍진성을 강화하기 위한 인물의 역할이
너무 기술적인 수단, 테크닉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쉽고
각 가지에서 생성되는 밑도 끝도 없는 초현실적 환상성이
언제나 그렇듯 미봉되는 느낌이라 좀 찝찝하긴 하다.
다 읽고나서 생각해 보니 태엽감는 새를 기점으로
하루키의 남자 주인공이
매력이 없어지는, 좀 건조하고 밋밋한 인물로 설정되기
시작하는 거 아닌가 싶네.
초기작 주인공은 꽤 쿨하고 니힐하고 그렇차늠.
갠적으로 일큐팔사 주인공은 진짜 최악이었음.
하루키는 남자 주인공이 품어내는 매력과 작품의 성숙도를 맞바꾼 느낌도 드네.
암턴 나름 태엽감는 새는 재밌게 읽었다.
김난주 번역도 좋았고. 문사로 이미 읽었더래도
만족할수 있을 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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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문단에선 등장인물들이 능동성을 희생해서 체계의 완성에 일조했다고 읽히는데, 이 댓글에선 오히려 삐걱거리는 느낌이 있다고 하니까 신기하네. 어떤 점에서 그렇게 생각했음?
내가 지적하는 부분은 초현실적인 환상을 소설적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등장 인물을 기능적으로 활용하는 느낌이 있다는 아쉬움에 대한 부분이고 아미야가 지적하는 부분은 극중 80년대의 현재의 시간과 40년대의 과거의 시간 그리고 이 두 시간성을 아우르는 초현실적 시간대를 접합시키고 연결되는 사이의 단차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소설의 본문에서 말하는 삐걱임 자체가 태엽감는 새가 배후에서 태엽을 돌리는 그 소설적 세계의 매력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그게 별로였다는 건 걍 취향의 문제일수 있겠다 생각함.
난 본문 읽고 생각한 게 그런 도구적인 등장인물의 배치는 분명 고전적이고 사람에 따라서는 구태연하다고 할지라도 소설의 체계를 (어느 정도는) 성공적으로 이끈다고 봤거든. 중성적이지 않고 아예 한 쪽의 무게가 분명하다면 그만큼 얻을 수 있는 득과 실도 뚜렷해질 거고. 만약 말하고자 한 게 그런 단차였다면 등장인물의 배치만으로는 좁히기 힘들 거 같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