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회학자고 해당인의 이론이 독일은 물론 한국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듯 보이는데
책들이 일단 가격이 ㅎㄷㄷ하게 비싸고 어려워 보이는데
가장 최근 몇년 간 나온 일반적인 개론서를 읽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음
일단 옛날에 나온 책들은 번역도 법학과나 사회학과 쪽으로 독일 유학 다녀온 교수님들이 불친절하게 번역했을 것 같은데
Q1: 혹시 Niklas Luhmann (니클라스 루만) 책 읽어본 횽들 어떗는지?
Q2: 혹시 해당 저자 관련 추천해줄 수 있는 책들이 있다면?
아래 책 일단은 고민 중임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15439165
https://www.khan.co.kr/article/202501222112015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사회체계이론>에서 근대사회가 여러 하위 체계들을 병렬적으로 진화시켜 온 과정을 설명한다. 그는 근대사회의 각 하위체계들인 법체계, 정치체계, 경제체계, 학문체계 등이 각각 자신만의 고유한 매체, 코드, 기능 등을 발전시켜 왔다고 본다. 예컨대 법체계와 정치체계는 두 가지 전혀 다른 세계이며, 각자 서로 다른 코드를 통해 스스로를 타 체계와 구분해왔다. 법체계가 ‘합법인가 불법인가’라는 코드로 자신을 특화해왔다면 정치체계는 ‘통치하는가 통치받는가’라는 코드로 스스로를 인지한다. 요컨대 합법성과 통치성의 개념은 서로 기원이 다를뿐더러 섞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근대사회 원칙과 같은 것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968783.html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853100.html
https://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92209
루만은 근대사회의 세계사회론을 1970년대부터 개진한 독일 석학이다. 모든 사회 부문 넘나들며 체계이론적 분석 전개했다. 생전에 500여 편의 논문과 100여권의 저서를 남기고 지난 1997년 71세의 나이에 혈액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루만이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자신의 이론적 개념을 적용
(중략)
인공지능 연구자인 박충식 교수는 “인공지능의 입장에서 보면 루만은 심벌그라운딩을 가운데 두고 의식과 사회 양쪽을 위한 전체적인 그림과 이론을 제공한다”며 “싫던 좋던 인공지능과 함께 해야 할 미래의 사회를 이해하고 대비해야 한다면, 루만은 더할 나위없는 시작점”
(중략)
루만위크를 기획한 이철 동양대 교수는 “루만은 복잡한 인간 현상과 사회 현상을 정확하고 중립적으로 볼 수 있는 체계의 관점을 개발했다”며 “그의 이론을 어느 정도 섭렵하면, 연구 현상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현상들을 함께 파악해낼 수 있다”고
https://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721
사회학적 관점에서 사랑을 하나의 ‘소통 코드’로 규정한 니클라스 루만의 고전 『열정으로서의 사랑』이 20여년 만에 원어 번역본으로 출간됐다. 20세기 최고의 사회학자로 손꼽히는 루만은 사회를 소통으로 이뤄진 체계라 설명하는 체계이론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 체계이론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법, 경제, 정치 등 기능적으로 분화된 여러 체계로 구성된다. 루만은 이런 체계의 기능 분화가 법률, 권력, 화폐 등과 같은 ‘상징적으로 일반화된 매체’가 소통 자체를 ‘자기생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결과라고 설명
(중략)
루만은 『열정으로서의 사랑』에서 사랑을 소통매체의 한 형식으로 바라본다. 일반적 통념과 달리 그에게 있어 사랑이란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코드화’된 소통매체다. 저자는 이미 중세부터 이런 사랑의 ‘코드’가 여러 사람에게 학습 되고 널리 퍼졌다고 설명한다. 중세 연가문학에서 항상 귀부인에게 사랑과 충성을 서약하는 기사가 등장하는 등 소설 속의 인물들은 시대적 ‘코드’에 맞게 사랑하는 방식을 보여줬고, 사람들은 소설을 연애의 학습 교재로 사용
(중략)
사랑의 코드는 시대적·사회적 산물이다. 역사적으로 사랑의 코드 형식이 ‘이상화’에서 ‘역설화’로 이행되면서 사랑은 점차 독립적 영역으로 구축됐다. 중세에 ‘이상화’된 사랑은 여성에 대한 사랑을 신에 대한 사랑과 동일시하는 등 종교적 가치·도덕관념과 합일된 개념이었다. 그러나 17세기부터 사랑의 주제가 이성적 숭고함과는 거리가 먼 열정의 무절제함을 강조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에 따라 열정적 사랑의 자기파괴적 속성에도 연인들이 사랑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사랑의 역설적 형식이 점차 사람들의 행동양식으로 코드화됐다. 이렇게 역설을 내포한 ‘열정으로서의 사랑’이라는 코드가 널리 퍼지면서 사랑은 더 이상은 도덕,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에 지배받지 않는 독립적 영역으로 분화
(중략)
루만은 개인주의 이념이 확고히 자리 잡은 현대사회에서는 ‘열정으로서의 사랑’ 역시 그 자체로 절대화되기보다 한 개인이 가진 감정의 일부로 간주된다고 설명한다. 익명성과 비인격적 관계가 지배적인 현대사회에서 사랑은 고독한 개인이 타인과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확장하는 친밀성의 코드가 됐다. 루만은 친밀함의 코드를 자신의 세계를 잃지 않으면서 타인의 세계에서 체험을 공유하는 ‘상호침투’로 정의
(중략)
연인들은 상호침투의 관계 속에서 각자 고유의 세계를 인정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중략)
독자들은 난해한 사회학적 용어들 앞에서 난색을 보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루만은 책에서 연인과 어떻게 소통해야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제적 방법론을 제시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는 두 사람 간 소통 자체에 바로 그들이 원하던 사랑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0212
독일에서는 루만의 체계이론이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의 저서가 계속 읽히는 것은 물론 그의 체계이론을 발전시킨 연구들, 체계이론을 소개하는 입문서들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그의 대표저서인 <사회체계이론>이 번역 출간됨으로써 루만의 이론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체계이론, 전혀 새롭고 놀라운 사회학
루만의 사회체계이론은 전혀 새롭고 놀라운 사회학이다. 먼저 루만 이론의 근원이 되는 것은 '주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오히려 자체를 관찰하는 '체계'가 그의 이론의 근원이 된다. 이는 분명 과거의 전통 이론과 커다란 차이점이다.
과거의 이론들은 모두 관찰과 인식의 전제로 관찰하는 주체를 설정했다. 그러나 루만 사회학은 주체를 설정하지 않고도 매우 체계적인 사회학을 구축함으로써 이제까지의 전통 이론을 전복하고 전혀 새로운 사회학을 보여준다. 기존 사회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건 매우 혁명적인 설정이다.
하버마스는 근대적인 주체를 어떻게 수정할 것인가에 대해 커다란 관심이 있었고, 반면 푸코는 더이상 근대적 주체의 수정에 매달리지 않고 근대적 주체의 죽음을 선언했다. 그럼으로써 근대적 주체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노력
(중략)
그에 비해 루만은 이론적으로 근대적 주체를 분석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다른 차원에서 그것을 넘어서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의 새로운 개념들은 주체에서 해방을 꿈꾸는 매우 포스트모던한 개념을 제공
(중략)
나아가 루만 사회학의 기반이 동일성이 아닌 '차이'에 있다는 점이나, 관찰에는 사각지대가 존재하며 커뮤니케이션은 불확실하다는 점, 기능적 분화가 사회를 해체시켜가고 있다는 점 등은 현대 철학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주제들이 이미 사회학적으로 구현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데리다나 들뢰즈의 철학을 연상하게 되며, 특히 데리다의 해체 철학이 사회학으로 구현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실제로 루만의 사회학에는 근대 철학의 가정을 뒤엎는 발상들이 매우 많다.
루만의 이론은 근대적 주체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이론이고, 동일성이 아닌 차이에 기반한 이론이며, 해체 철학의 사회학적 구현이다. 이러한 그의 새로운 이론은 기존 사회학에서 볼 수 없었던 현대 사회를 보는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열어준다. 이것이 루만 사회학의 혁신적인 점이며 또한 커다란 매력
(중략)
'뜨거운' 하버마스 VS '쿨'한 루만
루만 사회학을 이해함에 있어 하버마스와 비교하는 것은 흥미롭고도 썩 괜찮은 접근법이다.
하버마스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지속함으로써 사회가 지향할 합리성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에 반해 루만은 사회를 계몽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단지 우리는 사회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뿐이라고 본다.
마찬가지로 하버마스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사회를 계몽하는 도덕적인 책무를 사회학에 부여하지만, 루만은 현대사회를 알기 전에 도덕적인 판단이나 비판을 유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 나은 사회를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사회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
(중략)
그리고 하버마스는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개체가 합리적 이성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중략)
행위로 간주하는데 반해, 루만은 사회체계를 성립시키는 요건이 바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주장한다.
또 하버마스는 커뮤니케이션을 실행할 합리성의 주체를 설정하지만, 루만의 체계이론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을 실행하는 것은 주체가 아닌 사회체계이다. 그리고 하버마스의 커뮤니케이션은 완벽한 상호이해를 지향하는 반면, 루만의 커뮤니케이션은 넘어설 수 없는 차이에 근거하여 성립
(중략)
전체적인 평을 하자면, 하버마스는 '동일성'을 추구하지만 루만은 '차이'를 추구
(중략)
그리고 하버마스가 근대 프로젝트의 수정을 위해 노력한다면, 루만은 탈근대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중략)
루만의 이론은 어떻게 현대 사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 커다란 매력이 있다.
(중략)
루만 체계이론의 가장 기본시각은 세계를 '체계'와 '환경'으로 구분
(중략)
체계는 자신의 환경과 단절된, 즉 환경에 속하지 않는 모든 것이다. 그는 체계를 크게 생물체계, 사회체계, 심리체계로 구분한다. 인간의 몸은 생물체계이고, 인간의 의식은 심리체계이며, 사회체계들은 회사, 매스미디어, 기자협회, 가족, 동창회 등을 포괄한다.
하나의 체계는
(중략)
환경에 일어난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복합성의 환원 압력을 받게 된다. 즉 선택을 해야 하는 필연성에 놓인다. 그럼으로써 체계는 환경의 복합성을 감소시키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쉽게 말해 체계를 안정화시키는 작업을 하게 된다.
(중략)
이것이 체계의 전제조건이고, 나아가 이는 루만 체계이론의 기본가정이다.
또 환경이 복합성으로 이해된다는 것은 비필연성(우연성, 우발성)이 발생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체계의 복합성이 증가할수록 체계의 비필연성도 증가하게 된다. 나아가 루만은 일생이란 비필연성의 집합체와 다름없다고 본다.
유기체가 세포를 생산하듯이, 사회체계는 커뮤니케이션을 생산한다. 루만은 사회체계의 최소단위를 커뮤니케이션으로 본다.
(중략)
루만에게 상호주관성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창출되는 것이지 주체를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그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은 완벽한 이해는 없을뿐더러 오히려 서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 설정이다. 또 모두가 합의에 이르는 상황은 있을 수 없다. 루만은 근대 사회가 지나치게 통합되어 위태롭게 되었다고 본다. 또는 지나치게 통합으로 이끌어가려고 해서 위태롭게 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오히려 그는 서로 합의할 수 없음을 합의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즉 현대 사회에서는 합의할 수 없음에 합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27298.html
<근대의 관찰들>은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1927~1998)이 1990~1991년 사이 강연했던 몇 개의 주제들을 글로 다듬어 1992년에 펴낸 책이다. 전기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사회적 체계들>(1984)에서 ‘체계이론’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나름의 사회학을 ‘일반이론’으로 정립한 루만은 자신의 작업을 집성한 후기 대작 <사회의 사회>(1997)를 펴냈는데, 이 책은 그 중간에 위치한 작업
(중략)
이 시기 그는 <사회의 경제>(1988), <사회의 학문>(1990), <사회의 법>(1993) 등 구체적인 현상을 깊이 관찰하는 저작들을 펴냈는데,
(중략)
“당시 루만은 이론적인 추상성의 강도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된 시점, 그렇게 구체적인 현상을 깊게 관찰할 수 있는 수준에 있었다”
(중략)
책은 ‘근대사회의 근대적인 것’, ‘유럽적 합리성’, ‘근대사회의 고유가치로서의 우연성’, ‘미래의 기술’, ‘무지의 생태학’ 등 다섯 편의 논문을 통해 근대사회, 합리성, 우연성, 시간, 인식, 무지 등의 주제들을 다양하게 다룬다. 각 편은 독립적이지만, 한결같이 근대사회를 기술하기 위한 전통적 인식의 한계 지점과 이를 넘어서기 위한 ‘체계이론’으로서 사회학적인 방법을 논하고 있다. 말하자면 “체계이론을 통해 근대사회를 ‘재기술’하려는 시도”로, 옮긴이는 “체계이론의 이론적으로 일반적인 층위뿐 아니라 근대사회의 기능적 질서의 구조적인 풍부함과 그 다양한 의미론을 다층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중략)
이른바 ‘포스트모던’ 선언에 대한 일침으로 서문을 시작한다. 수많은 기능들의 분화가 누적되면서 근대사회는 정점도 중심도 없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성에 노출됐는데, 이전까지 ‘무엇’을 묻는 데에 주로 기대왔던 서구의 지적 전통을 따라서는 근대사회를 관통하는 특징이 무엇인지 잡아내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상대주의, 역사주의, 다원주의 등 ‘메타서사의 불가능성’만을 앞세우는 포스트모던 담론은 단지 “모든 것이 다 된다”고 말하는 데 그치는, 매우 게으른 접근일 뿐
(중략)
루만은 “사회 안에는 사회에 대한 구속력 있는 어떠한 재현도 없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지만, 그것은 체계의 자기관찰과 자기기술 형식의 성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다 되는 게 아니라 “되는 것만 된다.” 이때 왜,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되는지 질문하는 관찰자의 작업이야말로 사회학의 출발점이란 것
(중략)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구 형이상학의 전통적 인식은 세계를 범주들로 나누고 이로부터 존재의 문제를 해명하는 데 매달려왔다. 그러나 존재의 명료성을 획득하려는 이런 시도는 항상 분할하고자 하는 주체의 위치는 과연 어디에 있느냐는 역설에 대한 물음을 수반했고, 수많은 기능적 분화들이 누적된 근대사회에서 그 한계는 더욱 뚜렷해졌다. 이에 대해 루만은 ‘구유럽적’ 합리성 전통으로부터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인식 방법을 찾아냈다. 구별을 실행하는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어떻게 결정되고 어떻게 선택되는지 등 관찰의 작동 자체에 주목한 것
(중략)
“구별은 어떤 한 면을 지칭하기 위해서 어떤 구별을 실행하는 모든 방식의 작동을 말한다.” 모든 관찰은 하나의 구별에 따라 한 면을 지칭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표시되지 않은 다른 한 면을 야기한다. 이때 구별 자신의 작동은 표시되지 않은 채 남게 되는 역설 자체는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관찰의 대상이 아닌 그 작동 자체를 시야에 넣는다면, 관찰 또한 관찰(이차 등급 관찰)되며 그 결과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재귀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체계에 대한 ‘기능적 분석’이 가능해진다. 이런 인식의 전환으로부터, 하나의 중심이나 위계적인 체계에 기대지 않아도 근대사회를 복수로 관찰하면서도 이를 이론화할 수 있는 틀이 만들어진다
(중략)
루만 체계이론의 핵심은 사회체계와 환경을 구분하는 데 있다. 체계는 환경으로부터 ‘작동상’ 배제되며, 환경 안에서 관찰하면서 포함된다. 커뮤니케이션 작동을 통해 환경과는 다르게 스스로를 생성하는 체계의 통일성, 곧 ‘차이의 통일성’을 포착하려는 것이 루만의 체계이론이다. 이 때문에 체계이론은 진보·보수 같은 이념적 지향이나 가치판단 등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564315.html
1960년부터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했던 루만은 미국의 이론사회학자 탤컷 파슨스와의 만남을 계기로 사회를 체계로서 파악하는 ‘사회체계이론’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으며, 30여년 동안 정치학, 매체과학, 법학, 철학, 언어학, 심리학, 환경·생태학,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70여권의 저서를 쏟아냈다. <사회의 사회>는 루만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97년 출간된 책으로, 1300쪽이라는 엄청난 분량에 자신의 이론적 작업을 집대성해 쏟아넣은 대작
(중략)
루만은 근대사회를 설명하기 위한 보편적이고 거시적인 사회이론을 만들어내는 데 평생을 바쳤다. 무엇보다 그는 사회를 인식하는 자신이 그 사회 속에 포함되어 있는 역설을 직시했다는 점에서 기존 사회학과 전혀 다른 새로운 접근법을 만들어냈다. 1장에서 루만은 “기존의 휴머니즘적인 개념 전통과 지역주의적 개념 전통이 사회를 인식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고 비판한다. ‘사회는 인간으로 구성된다’거나 ‘브라질과 미국이 서로 다른 사회인 것처럼 사회는 지역적·영토적으로 제한된 단위다’와 같은 기존의 관점들은 관찰자를 주체로, 사회를 외부에 있는 객체로 삼았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관찰자 역시 인식 대상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중략)
때문에 루만은 “반휴머니즘적이며 반지역주의적인, 그리고 구성주의적인” 사회이론을 세워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며, 사회를 체계로서 파악하는 새로운 차원의 이론을 펼친다. 일반적으로 체계는 어떤 고정된 사물이 아니라 ‘작동’에 의해 스스로를 생산하고 또 재생산하는 것을 가리킨다. 살아 있는 유기체가 작동하는 것은 생명 체계, 인간의 의식이 작동하는 것은 심리 체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 체계는? 루만은 사회적 체계는 ‘커뮤니케이션’이 작동하는 체계라고 본다. 사회는 인간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들의 연관으로 이뤄졌다는 것
(중략)
체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체계를 둘러싼 환경과의 차이에 따라 자신을 재생산하는 재귀적인 네트워크를 이룬다. 이때 중요한 것은 체계와 환경의 차이인데, 이 차이로부터 ‘자기 생산’과 ‘자기 관찰’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회적 체계에 비춰보면, 사회는 커뮤니케이션의 작동으로 자기를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해 관찰하고, 이 관찰은 다시 재생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루만의 이런 접근법은 한없이 복잡하게 분화된 근대사회의 구조적인 변화 자체를 추적하는 것과 함께 사회에 대한 이해와 발언 등 자기 관찰에 따른 ‘자기 기술’들이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도 함께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사회의 사회>란 제목도 이런 측면을 반영
(중략)
루만은 아예 인간이나 근대적 주체의 개념을 사회 파악을 위한 기본 범주로 사용하는 것을 배제하고, 사회라는 대상을 파악하기 위해선 갖가지 커뮤니케이션들로 작동하는 사회적 체계들을 서로 비교하고 그 차이를 읽어내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편다. 거시적이고 보편적인 사회이론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비판이나 이념, 도덕마저도 사회를 파악하는 관점이 아니라 사회의 현상으로 자리매김
(중략)
“루만의 사회이론은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사회이론 가운데 가장 포괄적이고 정교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864578.html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1927~1998)의 말년 저작 <사회의 정치>
(중략)
먼저 책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방식인 <정치와 사회>, 또는 사회에 대한 정치의 우위를 암시하는 <정치의 사회>가 아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라도 사회 외부에 있는 초월자가 아니다. 또한 여러 기능이 분화된 근대사회에서 정치 역시 하나의 기능체계이기 때문에 정치가 사회 밖에서 사회의 방향을 조종할 수 없다. 더구나, 정치는 알 수 없는 미래와 직면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불확실성은 사회 안에서 생기기 때문에 정치는 사회를 넘어설 수도 없다. 사회를 통합하거나 변혁하는 기능을 정치에 부여하는 고전적인 정치이론은 낡은 것이 되었다. 통합과 해방의 정치 모두 사회 안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이 <사회의 정치>인 이유
(중략)
이런 이유에서 루만은 “사회의 운명, 그것은 다른 사회들”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사회의 정치>는 정치를 사회 안에 묶어두지 않는다. 대신 정치의 공간을 사회 안에서 확보하면서 정치와 사회의 역량을 응축하고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인 시도를 한다. 그 가능성은 곧 민주주의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중략)
<사회의 정치>는 현실정치에서 강제되는 더 많은 정치적인 결정들이 축적된다고 그 결정의 확실성이 보장되지 않으며 정치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반대로 더 많은 정치적 결정들은 더 많은 정치적 불투명성을 낳으며, 그것이 정치의 새로운 조건이 된다. 정치체계에서 자체적으로 생겨난 불확실성과 그 내적인 미규정성에도 불구하고―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정치의 자율성, 더 정확히 말해서 사회 안에서 정치의 자기정당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정치가 사회 안에서 전개되는 그 작동양상과 정치적 결정의 생산조건을 근대 사회의 기능적 분화와 그에 따른 정치체계의 기능적 특화의 맥락에서 정교하게 설명한다. 정치적 행위가 의미를 갖고, 하나의 결정이 정치적인 결정이 되고, 정치적 행위와 결정이 사건으로 현실화되며, 그 사건들이 정치적 소통의 재생산으로 안정되는 재귀적 메커니즘의 작동이 정치체계 자체의 기술과 진화를 구성
(중략)
요새 한 권 한 권 피땀흘려 읽는 중인데 쉽지 않고 개념 선택에 있어 역자마다 번역이 다른 경우가 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다수의 판본 번역 좋은 거 같음. 이철, 김건우 이 분 번역이 엄청 좋더라 - dc App
루만 글 난삽해. 독일어로 봐도 머리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