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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기존에 알던 일반적인 것들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가족의 소중함, 사랑의 위대함, 우정의 아름다움, 용기, 지혜 등등. 이러한 소설들을 보며 독자들은 공감을 느끼고 즐거워한다. 아 내가 아는 것들은 아직 유효하구나.

다른 한 종류의 소설은 기존의 통념에서 일그러진 것들을 제시한다. 뒤틀린 사랑, 용기의 무가치화, 자유의 악함, 망각, 모순 등등. 이러한 소설들을 읽는 독자들은 거대한 충격을 맛본다. 그리고 두 개의 태도 중 하나를 택한다. 충격을 받아들이거나 충격을 거부하며 소설을 탐탁치 못한 것으로 취급하거나.

어느 소설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후자를 선호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를 택한다. 전자가 더 일반적이고 받아들이기 쉽고 무엇보다 감동적이니까. 보편적이라는 미명하에 아름답게 치장된 가치들은 인류 멸망 직전까지도 목숨을 유지할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전자에 속하는 소설이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20년대의 미국인의 타락, 개척 시대의 순수함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아직도 미국인이라는 존재들이 쉽게 받아들이는 개념이다.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법한 소재, 여기에 위대한 개츠비의 흥행 이유가 존재한다.

미국에서의 흥행이라면 이미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군림하는 세계에서 미국인들이 숭상하는 가치는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다른 국가들에서도 위대한 개츠비는 명작이 된다. 딱히 공감가는 내용이 없지만서도 다들 그렇게 얘기하니 명작이 된다.

물론 위대한 개츠비는 재밌고 괜찮은 소설이다. 시간나면 읽어볼 만한 수준 이상은 된다. 피츠제럴드의 문장은 적어도 지금 범람하는 대부분의 장르 문학들 보단 후대의 남길 가치가 있다. 하지만 과연 이 소설이 20세기 최고의 소설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가 한다면....... 적어도 나는 그것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등에 업고 얻은 칭호가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미국 소설들은 대부분 이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미국 소설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기에 편견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나 호밀밭의 파수꾼은 둘다 자유라는 소재로 독자들에게 어필한다. 전자는 모든 이들에게(미국인들에게) 보편적이게, 후자는 청소년들에게 보편적이게. 그런 것이 미국 소설의 핵심이라면 한동안은 그쪽 동네 소설을 접할 일은 없겠다.





밤에 잠을 안자니 뻘생각만 떠오르는구먼. 개츠비를 재독한 것도 아니지만 읽은 지 몇 달 안됐으니 아직 유효한걸로 ㅎㅎ....

하루키나 김영하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위대한 개츠비는 상당히 과대평가를 받는게 아닌가 생각함. 비평 쪽으로 들어가서 작품을 분석하면 또 모르겠다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메리칸 파워의 수혜를 많이 받은 소설이 아닌가싶음. 뭐 내가 문알못라 그럴수도 있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