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소설은 현실이 아닌 가상세계의 인간을 다루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의 학교에서 일부 선생님들은 너 소설 읽냐며 폄하하는 어조로 말하기도 한다. 소설을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생각을 하게 하는 유해한 매체로 여기는 것이다.
한편 유교의 이상은 현실의 인간을 다루는 것이다. 현실의 인간이 가져야할 도덕성에 대해 말한다.
소설이란 현실의 인간을 관찰하고, 소설이라는 공간 안에서 다시 인간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소설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
유교 역시 인간을 관찰하고 분석하여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을 말한다. 소설과 똑같다. 유교가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은 박제되고 표본화된 것이다. 이미 박제되어 살아있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완벽한 모습을 변함없이 유지한다. 살아있지 않기 때문에 내면을 묘사할 필요가 없다.
유교의 인간은 항상 살아 있는 현실 속의 인간이다. 소설의 인간은 살아있지 않은 거짓 세계속의 인간이다. 유교의 인간은 박제되어 죽은 세계의 인간이다. 소설의 인간은 현실에 기반한 상상력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간이다.
그렇게 치면 소설도 불교에서는 부질없고 번뇌일 뿐이라 하겠지
이 글에서 유교는 정말 살아 있는 유교일까? 아니면 나의 관념 속에 박제된 가상의 유교일까?
@ㅇㅇ(61.83) 이것 참 도교스러운 이니시네요
삼국연의는 그야말로 유교소설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