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니체 얘기가 나와서 쓰는 글)





~세 줄 요약~

1. 니체는 "절대적인 도덕"을 거부한다

2. <도덕의 계보>는 니체의 저작 중 가장 이해하기 쉬움

3. 니체를 정말로 이해하려면, 니체 이전 철학사에 정통해야 한다(모든 철학이 다 그렇긴 한데, 니체는 특히)







니체의 사상 중 가장 중요한 영역은 '비판철학'이라,

비판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니체는 무엇을, 왜, 어떻게 비판했는가?"를 이해하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함

"대충 도덕이나 진리 같은 건 없다고 욕하는 내용 아님?"

하고 묻는다면, 그 말이 맞음

니체 안 읽어보고 그 명제만 알아도 솔직히 아무 지장 없다고 생각함. 현대인들은 대강 체화하고 있는 내용이니까.





내가 니체의 저작들 중 하필이면 <도덕의 계보>를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신병자의 일기장 같은 나머지 저작들과 달리

<도덕의 계보>는 은유가 적고 문체도 읽기 쉬우며, 전통적 도덕을 비판한다는 아주 명료하고 한정적인 목표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임

즉, 그냥 이게 제일 쉬운 책이야

(가끔 우상의 황혼부터 먼저 읽으라는 악랄한 썩은물들이 있는데 속지 말자)




그런데 쬐끔 더 딥하게 니체를 알아보자면,

그 전에 잠깐 플라톤으로 돌아가보자.

다들 알듯이 플라톤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현실"과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이데아"를 구분했음

왜냐?

이데아는 너무나 완벽무결해서, 더 변화하지도 움직이지도 만들어지지도 사라지지도 않기 때문임. 근데 현실에 그런 물건이 존재할 수 있나? 없잖아

하여튼 플라톤 이후로 철학은 모든 것을 둘로 나눠서 구분하게 되었음

나 자신 / 내가 인식하는 세계
나만의 경험 / 보편타당한 진리
감각 / 이성
물질 / 정신
민트 / 초코

등등...

이 이분법을 대충 '주체-객체 문제'라고 부름

플라톤에서 칸트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사는 장장 2000년 이상

"그래서 주체가 먼저냐?(경험주의)"
"그래서 객체가 먼저냐?(합리주의)"

따위의 논의를 무한하게 반복해왔음

비유하자면, 출입문으로 연결된 두 개의 방을 무한하게 왔다갔다 반복했다는 거임




하지만 칸트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논증하며,

"우리는 진짜 객체(물자체)가 무엇인지 영원히 인식할 수 없다."
"우리가 객체 그 자체라고 착각했던 것은, 한계가 명백한 이성을 통해 받아들인 데이터의 집합일 뿐이다."

라고 주장했음

이게 철학서들이 허구한 날 사골 우려 먹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임

하지만 칸트는 여전히 주체와 객체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진리에 대해 알 수 없다고 주장했으면서도 "도덕법칙"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말했음.

본인의 순수이성비판이 보편적인 도덕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개념인데도 말이지... (물론 칸트 본인은 도덕이 자명한 진리라고 보긴 했음)




니체는 칸트에게 집착한 얀데레였는데,

바로 저 지점에서 칸트를 뒤지게 욕했어

"자기가 쫓아냈던 낡은 우상들을 다시 뒷문으로 몰래 들여오는 교활한 늙은이"
"쾨니히스베르크의 중국인(이 말이 이때도 욕으로 쓰였나 봄)"

등등...

칸트가 온갖 욕을 먹어도 도덕법칙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선량한 사람이었기 때문인데,

비록 죽고 나서 영원히 욕먹는 중이지만 그래도 신앙은 지켰잖아? 한잔해




어쨌든, 그래서 니체는 선배들과 뭐가 다른가?

<도덕의 계보>에서, 니체는 저 유명한 비유를 든다.

"번개는 번쩍인다."

우리는 그 번쩍임을 보면서 번개라고 이름 붙였을 뿐, 번쩍임 자체에 객관적이고 선험적인 이름 따위는 없음.

번쩍임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아무것도 없어. 번쩍임이라는 과정과 분리된 번개는 그냥 아무 의미 없는 공허한 울림, 언어적 습관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아

그렇다면,

인간은?
주체는?

그것들은 번개와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살아있음" 이전에도 그것을 할 행위자인 내가 존재할 수 있는가?

아니다!!! 나는, 주체는 남들이 멋대로 붙인 이름이 아니라 "살아있음"이라는 행위이자 과정 그 자체야.

그 행위와 과정의 원인은 끊임없이 약동하고 변화하는 "힘에의 의지"이며, 그것이 주체의 본질이다.

모든 번쩍임들이 동일한 번개가 아닌 것처럼,

나라는 놈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이 될 수 없는 거지




이걸 보면 알겠지만, 니체는 그냥 정신이 나가서 무지성으로 옛 철학과 도덕을 욕한 또라이가 아니라

오히려 굉장히 정합적이고 엄격하며 명료한 논리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전개했음

미친 사람은 맞는데 가끔 제정신 돌아올 때만 글을 썼나봄




하여튼 왜 이렇게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냐면,

"인간과 분리된 외부 세계의 보편타당한 진리"라는 개념의 거부는

니체가 더 이상 주체는 '인간'이라는 고정된 이름이 아니라고 선언했기에,

주체(나)와 객체(세계)의 구분이 애초부터 무의미한 뻘짓이라고 폭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리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으며,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

이런 주장들이 왜 철학을 때려 부순 "망치질"이라고 불리는지는 오직 철학사의 흐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고, 의미를 갖기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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