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연구」라는 제목이 붙은 그림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그는 이 그림들에서 인간 몸의 정체가 단순한 ‘우연성’임을, 예컨대 손이 세 개이거나 무릎에 눈이 달리거나 하는 것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었던 우연성임을 밝힌다. 그의 그림들에서 나를 공포로 채우는 유일한 것들이다. 그런데 ‘공포’는 적절한 단어일까? 아니다. 이 그림들이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에 적절한 단어는 없다. 이것들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공포, 그러니까 역사의 광기, 고문, 박해, 전쟁, 대학살, 고통, 이런 것들에 의한 공포가 아니다. 그렇다. 그것은 베이컨에게 있어서 전혀 다른 공포다. 그 공포는 화가에 의해 급작스럽게 베일이 벗겨진 인간 몸의 우발적 성격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거기까지 내려가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을까?


얼굴이다.


얼굴은 무한히 연약하며 몸 안에서 전율하는 ‘자아’, 즉 ‘이 숨겨진 다이아몬드, 이 보물, 이 금괴’를 은닉하고 있다.


얼굴, 나는 그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인생이라는, ‘의미가 결핍된 이 우연성’의 삶을 살기 위한 이유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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