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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게도, 나는 지금까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 물론 들어보기야 많이 들어보긴 했다. 학교, 인터넷, 친구,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 문학 이론, 소설 등.. 여기저기서 질리도록 들었다. 그러나 막상 작품을 읽어볼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아마 실망감이 크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던 거 같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희곡을, 고귀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비루한 일반인인 내가 어찌 공감할 수 있겠냐고 늘 생각해왔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내가 독서를 시작했을 때 소설에 강하게 이끌렸던 걸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니까. 오뒷세우스의 위대한 여정, 아킬레우스의 분노, 오이디푸스의 참회 대신 평범한 인물들의 극적인 삶만을 다루니까..
그러나 다행히도, 한 달 전에 신곡을 읽으면서 나의 고집, 혹은 불안이 괜한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생각한다. 왜 문학이 주는 숭고함을 거부하는가?
단테는 나에게 정확히, 그가 의도했던 대로 문학이 주는 숭고함, 인간적인 숭고함의 느낌을 일깨워주었고, 이런 경험은 나의 고질적인 셰익스피어 알레르기를 치료해주었다.
난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좋아한다. 디킨스는 그의 놀라운 재능으로, 독자를 죄의식 가득한 어린시절로 되돌아가게 하며, 사랑과 명예 그리고 우정의 장으로 초대한다. 단테와 셰익스피어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말 하나하나에 감정을 집약시킨 뒤, 숭고함과 비장함을 증폭시키고, 인간적 고뇌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편이다.
멕베스는 권력에 눈이 먼 인간의 비극을 다루는 작품이다. 글래미스의 영주인 멕베스는 코더 영주가 되자, 이내 끓어오르는 야심을 느낀다. 그것은 지위 상승과 함께 솟아오르는 권력욕이다. 이러한 욕망은 단순히 독백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그것을 필연적으로 만들며, 육화시킨다. 바로 마녀들이다.
성으로 귀환하는 멕베스의 귀에 들려온 기쁜 소식은, 이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한 음심으로 바뀌며, 마녀들의 속삭임으로 육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선행하는 속삭임이며, 이러한 점이 야심을 운명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장차 왕이 되실 멕베스 만만세!"
그러나 마녀는 오로지 멕베스의 야망을 대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내 두려움으로 변질되며, 이런 이유에서 멕베스는 평범한 야심가로 전락하지 않는다.
"멕베스보다 못하다, 그리고 더 위대하다."
"왕이 되지는 못하지만, 대대로 왕을 낳으리라"
마녀들의 말은 예언적이다. 그들은 멕베스의 기대를 드러내고, 경쟁자에 대한 끝없는 불안을 암시한다.
그러나 마녀들은 허구의 존재이다. 그렇다면 인물들은 모두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들처럼 허구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수용하는가? 그렇지도 않다. 마녀들의 존재는 뱅코우와 멕베스의 눈에만 보일 뿐이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 속 등장하는 모든 초현실적 사건들은 인물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뱅코우의 유령은 오로지 멕베스만을 두렵게 한다. 멕베스는 악인이지만, 그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뱅코우의 유령은 그러한 멕베스의 두려움이 육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에서 셰익스피어가 인간의 고뇌를 묵살하는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예전에 티르소 데 몰리나의 돈 후안을 읽고 적잖이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돈 후안은 단지 악을 위한 악이다. 그는 모든 인습을 거부하는 '악'이 의인화한 것이며, 그는 악행을 저지름에 있어 아무런 고뇌도 느끼지 않는다. 나는 돈 후안을 읽으며 아마 스페인 관객들이 느꼈을 계몽된 웃음, 도덕적 우월감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멕베스는 다르다. 그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공포를 느끼기도 하며, 잔악함에 무감해지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멕베스는 독자로하여금 공포와 연민을 불러 일으키고, 고뇌를 유발한다. 그리고 이런 고뇌는 언제나 그렇듯이, 나를 복잡하게 만든다.
김영하 작가가 자신의 에세이 읽다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소설은 우리가 라스콜니코프, 혐버트 혐버트, 히스클리프라고 말함으로써 독자의 내면의 자리잡은 독선을 해체한다고. 이것은 가해자와 연대하는 일이 아니다. 단선적인 사고 속에서 형성된 나의 이미지, 나의 자아를 해체하고 재조직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해럴드 블룸의 말대로, 그렇게 불쾌한 경험은 아니다. 구태의연한 자아에 충격을 주는 일은 언제나 색다른 경험이기 때문이다.
"독서는 자아를 분열시킨다. 즉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이 흩어진다.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문학은 자아를 분열시킨다. 그리고 그 분열 속에서, 나는 내가 몰랐던 감정과 사유를 만난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끝없는 자기 갱신의 과정을 의미한다.
나는 그것이, 문학이 내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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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추
멕베스는 마이클 패스밴더가 나온 영화판도 괜찮게 봤었음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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