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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행로는 이에 대응하는 근대의 역사로 나타난다. 눈을 돌려 소설의 행로를 돌아보면 기이하게도 짧고 좁아 보인다. 돈키호테, 바로 그자가 세 세기에 걸친 여행 끝에 측량 기사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마을에 돌아온 것은 아닌가? 예전에 그는 스스로 모험을 택해 떠났지만, 이제 성 밑에 있는 마을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그에게 모험은 하달된다. 고작 서류상의 잘못에 대해 관리와 벌이는 한심한 말다툼이 그의 모험일 뿐이다.
- 밀란 쿤데라 저 『소설의 기술』 中
내가 처음 프란츠 카프카의 『성』을 집어든 계기가 해당 작품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연유했다. 그리해 책의 첫 장을 펼치고 반년을 넘어 근 8개월 만에 완독했다. 직장 일과 병행하며 읽기에 통 순조롭지 않은 탓이 첫 번으로 크겠고, 그 다음 가는 부분은 역시 스마트폰의 유혹이 컸다. 일을 처리하며 쌓인 잡다한 생각을 일거에 해치우고 싶으면 멍하니 유튜브 쇼츠나 보거나 혹은 운동밖에 답이 없었다. 후자는 그나마 몸에 건강을 불어넣지 전자는 그저 생각을 지우는 악순환만 반복한다. 그러며 꾸역꾸역 읽어가며 유튜브만한 재미를 느끼고 싶었다. 하다못해 주인공 K의 성 마을 적응기 브이로그를 글을 그대로 옮겨 놓는다면 이렇겠구나 싶은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정말 이야기의 전개라고 할 만한 대목은 거의 미진하다 못해 허구 인물의 브이로그를 구태여 읽을 필요가 있을지 권태가 다 날 정도였다. 적어도 전체 분량의 ⅔가 그랬다.
그나마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재미 들리는 순간이 올가의 가족사다. 하루의 장(章) 하나 읽고 끝내다 올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하나는 그래도 3~4장 연속 읽어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점점 재미가 서서히 생기려던 찰라에 카프카는 그간 앓던 결핵으로 사망해버린다. 그렇게 미완성 작품으로 남은 카프카의 『성』은 조그만 더 퇴고했더라면 괜찮을 성싶은 비운의 작품으로 내게 남는다. 소설은 이야기가 나름대로 (그를 느낄만한 인내심이 있다면) 재밌게 나아가기는 하지만, 『소송』만한 재미는 아니었다. 『성』의 K는 『소송』의 요제프 K와 서로 닳은 듯하면서도 그에 비해 제 결말을 맞이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야기의 규모나 전개 측면에서 『소송』보다 더한 진가를 발휘한다. 『소송』은 해봐야 불가해한 소송을 겪는 요제프 K 위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반면에 『성』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들까지 중첩해 가며 나아간다. 그러며 작중 언급되는 성의 정체와 그곳에서 일하는 관료와 비서들 등등. 그러면 각 마을 사람들은 성에 대해 추정과 설명, 성에 대한 생각이나, 성과 관련돼 겪은 일화 혹은 성에 대응할 장황한 계획을 저마다 낸다.
그리고 카프카 소설의 전반적인 특성대로, 서술문이건 인물 대사건 비문 하나 없는 완전한 문장체다. 그러나 모든 문장이 주어와 서술어가 명확한들 서사마저 명확하지 않고 더욱 곤궁해지는 카프카다운 문체다. 법을 공부하고 또한 법조계에서 일한 카프카답게, 『성』의 등장인물들 모두 하나같이 대사가 법 관련 양식에 적힌 진술문에 가까운 형태로 전달한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관료제에 뿌리 박힌 채 살아가고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을 이어나가다 보니 하나같이 정부에서 배포하는 공문의 글처럼 말하고 다닌다. 그러나 인물의 대사가 그렇다는 거지 속사정과 이야기 자체는 남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인물들 대사 하나하나를 그간 겪은 직장 생활로 반추하며 읽자니 성의 등장인물이 하나같이 내가 일하며 겪는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는 느낌은 단순 우연이라 치부하고 싶다. 더군다나 상기한 올가 가족사는 현대 전반의 관료 풍토를 관통하였다. 사람 개인 감정으로 인한 발단으로 이어진 공적인 업무 처리가 공적인 문제가 아닌 사항을 해결하려는 법적인 자기당착에 빠진 피해자를 잘 묘사한다.
이야기의 결말은, 나무 꺼라위키에서 K는 결국 성에 도달하지 못하고 아사한다고 적혀 있지만, 어째 성에 대한 얘기나 평이 다다른 마을 주민들처럼, 정작 역자 이재황의 후기에 따르기를 성에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지만 K는 기력이 다한 나머지 죽어가는 결말이라 썼다. 흠, 카프카가 정말 구상한 결말이 무엇인지는 나중에 학자 논문이나 찾는 한가한 때에 미루기로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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