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국문학은 리얼리즘의 전통이 강하다, 그런 말을 하는데

엄밀하게는 아닌 것 같음

한국문학은 리얼리즘보다, 이념문학으로서의 전통이 더 강함

옛날부터 그래왔음

물론 그 말이 그 말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왜냐면 리얼리즘이라는 게, 문학 뿐 아니라, 보통 이념적인 성격이 강했거든.

즉 리얼리즘이 정말 날 것의 현실을 본다기보다, 보통 어떤 이념적인 프레임으로 현실을 재구성한다는 것임

그러다보니 이런 리얼리즘에 대한 반발도

사실은 그 '현실성'에 대한 반발이 아님. 그 '이념성'에 대한 반발이었던 거임


한국에서 이런 '이념지향적'인 리얼리즘 문학에서 그나마 좀 벗어날 수 있었던 게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반이었던 것 같음

김영하, 김애란, 은희경, 정이현 등등 작가들

뿐만 아니라 그 시기 활발하게 활동했던 작가들을 떠올려 보면, 꼭 리얼리즘의 '리얼'이란 한계에서 탈피했다기보다

과거보다 훨씬 '덜 이념적'인 리얼리티를 바라보는 문학을 추구했다는 거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어느정도 기존 이념문학과 결을 같이함, 즉 기존 이념적 프레임에서 완전 벗어나고 반대한다기보다

그 베이스를 일정 유지하면서, 작가 개개인 창의적인 영역을 확장해나간 것임


그래서 그 시기가 내가 볼 때는 한국문학의 그나마 황금기였던 것 같음

그리고 지금은 그 잠깐의 곁길에서 다시 원래의 길, 이념문학으로 복귀한 것 같음

여성주의 문학이든, PC한 문학이든

결국 하는 건 옛날부터 우리문학이 추구했던 것과 다르지 않음

즉 현실에 대한 결론, 이념적 판단은 이미 정해져 있고, 그 결론과 이념에 걸맞게끔 작가의 상상력으로 현실을 재구성하는 것임,
그리고 그걸 리얼리티 혹은 리얼리즘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진지하게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임

근데 사실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계급적으로 집단화된 게 현재 한국의 주류 작가들임

현재 작가로서 돈을 많이 벌고 안 벌고를 떠나서, 대부분 상당한 교육혜택을 받은, 부르주아적 문화적 자본이 충만한 세대임

물론 스스로는 평범한 서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한국에 평범한 서민이란 없으니까. 본인이 평범하다고 자부하면, 꽤 상위권일 가능성이 높음. 즉 평범한 부르주아 아니면 가난한 서민임.

또 요즘 한국에서 작가로 책 팔고 강연도 다니고 돈 좀 벌려면, 어느정도 셀럽이 되어줘야 하는 것도 사실이고, 좋든 싫든.

그들이 작품에서 가끔 다루는 게, 옛날 할머니, 엄마, 이모 이야기인데 실은 서로가 계급 자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은 여성서사로서 같은 약자로 묶어버림. 그래서 의도한 건 아니겠으나 작가 자신의 현실적인 계급과 더불어 우리 사회 현실까지도 일정 가려버리게 됨.

최근 유독, 운동권 아버지와 딸의 서사 같은 게 인기를 끌던데 이건 옛날 운동권 문학과 현재 여성주의 문학 즉 이념문학의 족보를 만드는 듯한 인상임.
 
당장 시간이 없어서 서둘러 결론을 내야 하는데

결국 옛날부터 우리문학은 '이념적'인 '리얼리즘'의 전통이었고

근데 그 '이념'이 '리얼리티'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실제 현실은 왜곡하고 은폐하는 성격이 있어왔는데

여전히 그렇다는 거임. 그래서 지금 한국문학은 그냥 재밌다 재미없다 잘 쓴다 못 쓴다 라는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게

그들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하는 문제로 진짜 우리의 현실적 문제들을 왜곡하고 은폐하고 있음, 한국사회는 당장 5년 후 10년 후가 굉장히 불투명한데

우리문학은 진짜 현실의 문제, 본질은 보지 않음. 결과적으로 말초적 컨텐츠로 대중의 눈을 가리는 다른 미디어와 크게 다를 바 없고, 어쩌면 더 나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