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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은 사람처럼 해낼 수 있을까요?
로봇은 사람을 능가할 수 있을까요?
로봇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기계장치의 신은 무대의 소품에 불과한 걸까요?
한 줄 요약
무대의 소품이 관객석에 내려온다면?
2023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수상작인 청예 작가의 라스트 젤리 샷이다. 2023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수상작은 이미 리뷰를 다 했으니 찾아보면 나온다. 청예 작가는 원래 오렌지와 빵칼로 찍먹하려던 작가였었는데, 이번에 다른 작품이지만 아무튼 읽었으니 더 읽을 일은 없을 듯하다.
내용은 큰 틀로 갈라테라라는 인봇(휴머노이드) 연구개발 권위자인 갈라테아에 대한 재판을 아키스와 보호자 '나'가 구경하러 가는 것이며, 본문의 주된 내용은 재판 중 다뤄지는 인봇 3체, 곧 엑스(막내), 데우스(둘째), 마키나(첫째)에 대한 사건 기록 영상이다.
애들 이름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서 따왔는데 왜 이름 순서가 이렇냐고? 그건 에피소드 할당 때문에 둘째인 데우스가 '신'을 강조해야 해서 그렇다. 솔직히 읽는 내내 개불편했지만, 독자인 내가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다...... 엑스 데우스 마키나 가지고 그럴싸한 변명을 암만 만들어보려고 해도 그냥 데우스 에피소드 때문에 데우스한테 데우스 이름 줬다는 것 이상의 이유가 없음.
각각 노동의 신 엑스, 지능의 신 데우스, 간병의 신 마키나...라는 에피소드 챕터를 달고 있으며, 갈라테아는 이 세 인봇을 '사회화 실험'을 명분으로 자기 과거 은인이었던 부부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축차 투입한다.
첫 번째 에피인 노동의 신 엑스는 그동안 노동 현장에 투입돼 극한의 효율 개선을 추구한 엑스가 5년차 하꼬 작곡망생이에게 2주 동안 파견된 이야기다. AI의 창작을 다루는 파트로 엑스는 창작 노동 역시 노동이면 본인이 최적화할 수 있다고 자신하며 하꼬망생이의 에고를 철저하게 깨부순다. 근데 하필 소재가 소설이 아니라 작곡인 게, 임성순이 현대미술 비판하는 소설 썼던 게 떠올라서 살짝 거시기했다. 임성순이 썼던 건 그래도 똑같은 현대 국문에까지 확장되기라도 하는데, 이 에피소드는 진짜로 그냥 "차트 100 학습해서 짜집기하니까 되던데요? 이 쉬운 걸 왜 못함?"이라서......
물론 현실로 따져보면 이미 작곡 AI는 한때 유행했던 suno가 있고(지금은 4.5버전까지 나옴), 굳이 작곡 분야가 아니더라도 전반적인 창작 분야에서 AI의 종횡무진한 활약 아닌 활약들은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 AI 창작에 대한 어떤 결론이나 소재 자체에 대해선 별로 관심도 없고 뭐라 평가할 마음도 없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건 AI 창작으로 타 분야 예술 영역을 건드리는데 그 과정이 너무 얄팍하다는 점이다.
뭐 굳이 AI 학습 원리에 대한 섬세한 고증과 예술 분야에 대한 인간찬가적 리스펙을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냥 왜 하필 작곡이었어야 했냐는 거지. 소설로 해도 베스트셀러 top 100 학습해서 써내고 투고해도 됐잖아? 뭐랄까, 이 에피소드 내내 '작곡'이어야 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딱히 없었다는 건, 작곡, 음악이라는 분야에 대한 고찰이나 특성을 활용한 장면 따위가 없다는 얘기다. 왜냐면 진짜 중요한 얘기는 AI 창작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 에고가 깨진 하꼬망생이를 인봇이 이해하지 못하는 결말이거든.
그래서 인봇은 급발진을 박는다. 아니 내가 대중성 분석하고 학습해서 개쩌는 곡 만들어줬는데 왜 지랄이지? 왜 행복해하지 않는 거야? 아, 이게 다 에고를 심어놓은 저 귀 때문이구나! 귀를 조지자! 해서 귀를 진짜로 조진다. 하꼬망생이는 덕분에 인공신체 달고 배상금 받고 병원행.
이 급발진은 앞으로 두 번 더 나온다. 청예 작가가 인간이 아닌 타 지성체에 대한 공감불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급발진을 만들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그래도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이것만 놓고 봤을 땐 그냥 결말에 급발진 박아서 충격을 준 무난한 에피소드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능지의 신 데우스......는 매우 똑똑한 초지능이며 논리와 이성, 합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엑스가 노동 현장에 투입돼 노동 효율을 개선해왔다면, 데우스는 연구소에 파견되는 몸이었는데 이번엔 무당집에 파견된다. 수보살과 마찰을 겪은 끝에 데우스는 수보살을 계몽시키는 게 본인 역할이라고 생각하며 수보살을 찾아온 부부를 이성과 합리로 설득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뭐, 결과부터 말하자면 데우스는 무당이니 신이니 하는 건 죄다 사짜라고 하며 수보살을 물귀신으로 만들어버린다. 메데타시 메데타시. 문제가 있다면 데우스가 능지의 신이라면서 막상 전개하는 논리들은 거의 초딩 수준의 떼쓰기에 가깝다는 것...... 대충 무신론과 유신론의 논리 충돌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딴 거 하나도 없다. 무신론 흉내와 유신론 흉내만 남았다.
무당 물귀신으로 만들게 된 것도 역시 급발진 박은 결론이다. 여기서부터 나는 슬슬 이해를 많이 내려놨음...... 아니 솔직히 말해서 인간의 비이성적인 결정과 비합리적인 마음에 대해 논할 거면 굳이 무당이 아니어도 됐다. 여태 디테일이 박살 난 서술 속에서 무당 고증만 알차게 된 걸 보면 뭐 작가가 잘 아는 걸 쓰는 게 맞지 싶은데...... 아니 그럴 거면 왜 엑스 파트는 작곡이어야 했음?
이런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세 번째 에피소드까지 맞이해야 한다. 중간중간 재판 장면을 보여주는데, 2023 한과상 단편 대상인 최후의 심판(한이솔) 때 지적했던 단점인 빌런 조형이 형편없다는 걸 똑같이 공유한다. 문제가 있다면 갈라테아도 위악 행세 하느라 원고랑 똑같은 수준으로 보인다는 것. 가치 중립성 운운하며 대기업의 횡포를 논하는 건 작가의 사상이 톡 튀어나온 파트니까 유일하다시피 논리가 존재한다.
마지막 세 번째 간병의 신 마키나는 간병 전문 인봇인데 부부네 아픈 아들을 돌봐주기로 파견된다. 부부가 되게 정이 넘쳐서 간병 인봇도 사람처럼 대우해주고 가족처럼 대해줘서 마키나는 마지텐시...! 감동을 먹게 되지만, 종종 일어나는 사고를 통해 본인이 가족이 될 수 없는 타자임을 느낀다. 그래서 가족이 되기 위해 피가 필요하다고 급발진을 박아 부부의 피를 모조리 빼내고 거기에다가 기름을 채운다. 빼낸 피는 본인 인조 가죽에 혈관을 그리는데 알차게 써먹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읽는 내내 간병 로봇이 왜? 라는 생각인데 이럴 거면 굳이 간병 로봇이라고 해야 했나...... 좀 더 자연스러운 설정은 없었나... 싶어진다.
참고로 엑스가 찾은 하꼬망생이는 마키나가 찾은 부부의 장남이고, 데우스가 찾은 무당은 이 부부가 아픈 아들(둘째) 좀 고쳐달라고 찾은 무당집이며, 마키나는 이 아픈 아들의 간병을 맡으러 갔다가 부부를 조져버렸다.
그게 곧 갈라테아가 재판을 받는 이유이자 갈라테아가 위악자 행세하는 이유기도 하다. 본인이 과거 은혜를 입어서 갚을라고 인봇을 보냈는데 셋 다 자기 은인들을 조져버렸으니(데우스는 정확히는 무당을 조져서 갈라테아도 그딴 사기꾼에게 가는 건 옳지 않다고 한다) 마지막 살아남은 둘째를 멋대로 고쳐주고 그 둘째 앞에서 본인이 심판받는 걸 보여줌으로써 속죄의식이라도 올리는 것이었다.
아, 물론 그 둘째는 뇌 수술 당해서 본인 과거를 전혀 기억 못한다. 앞선 영상으로 자기 가족이 다 조져지는 걸 봤음에도 '나랑 이름이 똑같은 애가 있다니 스게~'하는 선에서 그침. 그리고 갈라테아는 이 애에게 진실을 전해줄 마지막 순간에서조차 덕담이나 건네주고 물러간다.
솔직히 말해서...... 난 이 소설의 결론을 모르겠다. 비극 그 자체로 즐기기엔 갈라테아가 너무 바보 같은 게, 본인이 인봇 만들 때 '인간 보호'를 최우선으로 놓지 않고 '목적 수행'을 최고 가치로 올려뒀으면서 사고가 일어나니까 하는 게 "왜? 어째서?"다. 이딴 게...... 세계 최고 인봇 권위자...?
각 에피소드도 인봇 급발진이 밟는 논리 회로가 너무...... 심사평의 표현은 '만화적인 비약'이라고 하는데, 아니 비약은 토도가 비브라 슬랩 들고 오는 게 만화적 비약이지, 갑자기 결정적 성찰과 분석 시간에 '귀를 조지면 꿈을 안 꾸겠지' '내가 진짜 유능한 신이니까 날 따라(논거 x)' '피가 있어야 가족이니까 부모의 피를 빼내자' 같은 결론을 내는 게 만화적 비약이냐고. 만화에서 이딴 식으로 결론 내면 분서갱유 당한다.
물론 이런 급발진이 없었으면 이 소설은 진짜 노잼에 지루했을 것이다. 급발진이라도 박아서 자극적인 사건을 만들어내니까 황당하단 감정이라도 일단 치솟긴 하니 말이다...
그 외에 데우스 에피 들어갈 때 갈라테아 아닌 척 다른 이름 써서 썰 풀고, 마키나 때엔 아~ 이 사람들에게 은혜 입은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네.하는 건 뭐랄까...... 복선으로선...... 뭐, 망가지거나 저급한 건 아니고 그냥 눈가리고 아웅이니 그냥 그랬다. 개인적으로 이거 읽으면서 했던 추측 하나가 빗나갔었는데, 복선도 아닌 걸 복선으로 착각해서 생각한 탓이었다. 복선이나 이야기 구조 자체는 딱히 문제 있는 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세부 디테일, '가장 단단한 소체'를 썼다는 설정 하나가 만들어낸 각종 무수한 연출 찐빠들이라거나......(솔직히 소체 설정만 없었어도 그냥 평범하게 넘겼을 것이다) 굳이 미래 시대에 전기도 아닌 기름으로 움직인다는 설정을 넣는다든지(이건 마키나가 피 대신 기름 넣는다는 그 결말 하나만을 위한 설정에 가깝다), 데우스의 논리 전개가 '초지능'이 아닌 '초등학생'에 가깝다든지, 작중 재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초지능의 판단이 그냥 '작가가 이렇답니다'에 가깝다든지, 갈라테아의 위악자 행세가 눈 뜨고 보기 힘들다든지, 뜬금없이 가치중립성 비판하며 대기업의 횡포를 욕한다든지, 스폰 받아서 겨우 연구하고 개발하는 주제에 지 잘못으로 사단난 거 스폰서가 항의하니까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판에 기싸움 한다든지, 유사 일제강점기 연출한다든지......
솔직히 말해서 각종 설정들이 작가가 딱 '필요해서 끼워넣은' 설정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연출하는데 필요하니까 그때 설정 서술하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가장 단단한 소체에 인공 피부도 없는 로봇이 입술소리를 내고 손이 자유롭게 변형하지...... 락스에 넣을 때도 '가장 단단한 소체니까 다이죠부!'라는데 관절부 기믹은 어떻게 생겨먹은지도 솔직히 궁금할 따름. 이런 연출만을 위한 설정의 끝은 마키나인데, 마키나 설정만 보면 얘는 대체 어떻게 만든 거지... 싶은 생각을 떨쳐내기가 힘들다.
역시 세계 최고 인봇 권위자는 뭐가 다르긴 한가보다.
뭐 그래도 이런 문제들이 결정적인 문제......까진 아니고 몰입을 철저하게 방해하고 작품의 깊이를 해칠지언정 작품 전체를 망가뜨린 건 아니니 좋았쓰!
깊이 읽으면 실망하기 딱 좋은 소설이다.
진짜 읽느라 고생했겠네 나였으면 중간에 포기하고 집어 던졌을듯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