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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사람들처럼 책 읽기를 싫어했었음.


초딩 때 읽은 후 기억이 뚜렷해서 끄적여 볼 수 있는 책이라곤


삼국지,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등 고작 이런 몇 권 안 되는 책들.


시시껄렁한 독후감 숙제를 인터넷 검색으로 대체하는 건 다반사였음.



중딩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느 날 신종플루라는 병이 유행했었음.


꽤 심각하게 전염이 돼서 한 번 걸리면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2주는 쉬게하고


타미플루라는 약만 먹으면 간단히 나았지만 병원 측에서는 안정성을 위해서


진단 결과가 나오는 그 순간부터 격리 조치된 병실에 반강제 입원을 시켰음.



그 땐 스마트폰도 없었고 유튜브 같이 시간 때울 수 있는 심심풀이용이 부족했었음.


병실에 갇힌 첫 날 저녁 내일부터 당장 학교를 안 간다는


혼자 봄방학 맞이한 것 같은 막연한 생각에 들떴었음.



병실에 미처 적응하기도 전인 하루가 지나니 좋았던 감정이 욕으로 뒤섞임.


6명이 있는 병실이었는데 티비조차 없는


정말 무료함을 마음껏 느껴 보라며 실험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그런 공간.


왜 나이든 노인들이 고립되어 혼자 지내면 치매가 발병하는지 몸소 느낌.



같은 병실 주변 애들은 연령이 저학년 초딩 정도로 그나마 갑갑함이라는 대상을 덜 느끼는 듯해 보였음.


누군가 함께 지내며 공감하면 고통이 반감 될 텐데. 걔들은 그저 부모님 걱정 속에서 그냥 그렇게 지낼만하게 보였음.



나 혼자 멍하니 있는데 누군가 마스크를 쓰고 책을 몇 권 가지고는 찾아왔음.


마침 근처에서 엄마랑 약속을 했었던 외가쪽 친척이었는데


내 얘기를 들었는지 집에 있던 책이라며 몇 권 챙겨왔었음.



그 중 한 권인 달과 6펜스를 처음 보게 됨.


주인공이 가진 예술가의 독특한 가치관에 대한 의미는 고사하고


조금씩 읽을 때마다 상상 속 해방 그 자체였음.


현재를 박탈 당한 채 누워 지내면 한없이 지나온 과거가 현재를 대행하는 연속인데


폐쇄된 공간에서 유일하게 해방된 정신이 무엇인가에 뒤덮여서 책을 덮고 난 후까지 끊임없이 가득 차오름.


작은 방 한 켠에서 혼자 전 세계 여행하는 기분이었음.



문학이 무엇을 대신해주고 있는지 왜 이토록 오랜 기간 칭송받는지


어떤 거창한 평론과 해석을 봐도


그 당시 느낀 전율에 비하면 너무나 미약한 내 반응들 뿐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