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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오레스테이아 삼부작을 다 읽었다. 이에 대한 감상을 남기고 싶어 이곳에 쓴다. 먼저 이 감상을 읽는 이들을 위해 이야기하자면, 이 감상은 지극히 개인적이니 앞서 책을 읽고 본문을 읽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감상을 먼저 읽으면 그것에 맞춰 고정관념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의 온전한 사유를 방할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감상을 지니고서 본문을 비판적으로 읽기를 권한다. 서문이 너무 길었다. 본문으로 가자.
오레스테이아 삼부작은 각각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로 이뤄져 있다. 큰 줄거리로는 이렇다. 일리오스를 함락시킨 후 돌아온 아가멤논은 자신의 아내인 클뤼타이메스트라와 그녀의 정부인 아이기스토스에게 살해당한다. 각각의 원한은 아가멤논의 장녀 살해, 아가멤논의 아버지 아트레우스의 동족상잔이다. 이들은 그와 캇산드라를 살해하고 집안의 권력자로 군림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오레스테스가 돌아온다. 그는 자신의 누이 엘렉트라와 시종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을 죽이나, 모친 살해의 혐의로 방황한다. 그는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나 아폴론의 도움을 받고 아테네에게로 가 그녀와 배심원들에게 판결을 받는다. 그는 무죄를 선고받고 격분한 복수의 여신들을 아테나가 달래고 설득해 그녀들은 자비로운 여신들이 되어 국익을 준다.
클뤼타이메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의 원한은 정당해 보인다. 그리고 오레스테스의 원한 또한 그렇다. 그들은 불의를 당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갈등은 "자비로운 여신들"에서 풀려야 할 터였다. 그러나 작품은 이에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적어도 내 기억은 그렇다). 이는 작품에서 유죄와 무죄의 표수가 동일한 것으로 드러난다. 말하자면, 아테네로 인한 판정승이다. 나는 예전에 이 결과를 두고 살인의 주권이 복수에서 정의(국가)로 넘어간 것이라 설명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설득력이 높은 글이었으나 이 문제의 해답이라 보기엔 어렵다. 그 글을 비방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이 문제는 굉장히 논란이 되는 철학적 갈등을 낳기 때문이다.
안티폰은 불의를 당하지 않았음에도 불의를 행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했다. 이 말은 반대로 불의를 당했으면 그 보복으로 불의를 행하는 것은 정당성이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와 대비되는 입장으론 소크라테스가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불의를 당한 경우에라도) 어떤 불의도 행해서는 안 된다고 피력했다(그러나 이것이 흔히 알려져 있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것은 아니다. 그는 플라톤의 변론에서 이것이 만약 정의롭지 않은 경우, 복종하지 않겠다는 시민불복종의 태도를 드러낸 바 있다). 이 입장들은 각각 클뤼타이메스트라와 오레스테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철학적 논의가 아닌 작품에서의 논의를 살펴보자. 그들의 논의는 엉망진창이다. 예로 이런 부분이 있다: 복수의 여신들에게 아폴론은 어째서 오레스테스만 쫓고 그녀가 자신의 남편을 죽였을 때는 침묵한 이유가 무엇이냐 물었다. 그녀들은 오레스테스는 혈연 관계이나, 아가멤논은 혈연 관계가 아니기에 그랬다고 답한다. 아폴론은 제우스가 아버지의 죽음을 가장 중시한다고 하나 그녀들의 말처럼 제우스는 제 아비 크로노스를 결박한 바 있다. 이처럼 논의는 엉망진창이고 희극적 면모가 있다(이를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는 한 작품을 연상시킨다. 아리스토파네스의 "부의 신"이다. 특히 페니아와 크레뮐로스의 논쟁을 연상시키는데, 거기선 희극적으로 헤카테 여신을 끌어들여 크레뮐로스가 이길 뿐이다. 이곳에서도 아테네의 판정승일 뿐이지 않은가? 이는 철학적 논의를 해결하지 않는다. 이 회피는 오히려 우스운 아이러니만을 불러 일으킨다. 인간의 복잡미묘한 갈등은 끝내 비극으로 가나 신들에 의해 단순하고 우스운 희극으로 끝나는 대조는 말이다. 결국 남는 것은 웃음 속의 씁쓸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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