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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보 로망은 인간과, 세계 속에서의 인간의 상황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책에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작중 인물 personnages> 들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약간 조급하게도 거기에서 전혀 인간을 만나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인물들을 읽어낸다는 것이 물론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매 페이지마다, 매 행마다, 단어 하나하나마다 인간이 현전하고 있다. 비록 사람들이 거기에서 상세하게 묘사된 많은 물체들 을 발견하게 될 경우에도 거기에는 언제나 그리고 우선적으로 그 물체들을 보고 있는 시선이 있는 것이며 그 물체들 을 재검토하는 사유가 있는 것이며 그 물체들을 변형시 길 열정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소설의 물체들은 인간의 지각이나 현실적인 지각이나 혹은 상상적인 지각을 떠나서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물체들이란, 우리의 일상 생활의 물체들 즉 끊임없이 우리의 정신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과 같은 일상 생활의 물체들에 비교할 만한 물체들이다.
그런데 만일 사람들이 물체를 일반적인 의미(사전에서는 물체란 감각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것이라고 한다)로 받아들인다면, 내 소설들에는 물체들만이 있는 것은 정상적이다. 즉 그것들은 내 생활에 있어서 내 방의 가구들이거나, 내가 듣게 되는 말이거나, 내가 사랑하는 여자이거나, 이 여자의 몸짓 등이다. 그런데 보다 넓은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사전에서는 또한, 물체란 정신 속에 자리잡고 있는 모든 것이라고 한다), 추억 (이것을 통해서 나는 과거의 물체로 돌아간다), 계획 (이것이 나를 미래의 물체로 옮겨 놓는다. 즉 만일 내가 수영을 하러 가기로 결정한다면 나는 이미 머리 속으로 바다와 해변을 보게 된다), 그리고 모 든 형태의 상상력이 또한 물체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사물들 choses 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말하자면, 소설에는 언제나 대단히 많은 사물들이 있었다. 발자크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집 · 가구 · 의상 • 보석 • 도구· 기계 등 모든 것이 여기에서는 현대의 작품들을 부러워할 게 아무 것도 없을 정도로 정성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바로 이 물체들이 우리가 묘사하고 있는 물체들보다 더욱 <인간적 humains> 이라면, 그것은 단지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에 있어서 오늘날 인간의 상황이 100년 전의 그것과는 이제 더 이상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묘사가 너무나 중성적이고 너무나 객관적이기 때문인 것은 전혀 아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묘사도 바로 중성적이지
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누보 로망은 완전한 주관성만을 목표로 한다:



우리의 소설책에는 많은 물체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들이 그 책에서 엉뚱한 어떤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소설책들에 관해서 어떤 비평가들이 대단히 특별한 의미, 즉 물체 쪽으로 향했다는 의미로 사용한 <객관성 ivité>이라는 말을 재빨리 강조하였다. 흔히 사용되는 의미-중성적이고 냉정하며 편파성이 없는-로 생각된 이 단어는 터무니없는 것이 되었다. 예를 들어서 내 소설들에 있어서 일체의 사물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하나의 인간일 뿐만 아니라, 인간들 가운데서도 가장 덜 중성적이며 편파성이 가장 심한 인간인 것이다. 즉 그는 오히려 흔히 자신의 시각을 변화시킬 정도로, 그리고 자기 안에서 망상에 가까운 상상력을 일으킬 정도로 언제나 가장 끈질기게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들로 된 열정적인 어떤 모험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내 소설들-모든 내 동료들의 소설들과 마찬가지로-이 예를 들어서 발자크의 소설들보다 더욱 주관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다. 발자크의 소설에서는 누가 세계를 묘사하고 있는가? 동시에 도처에 위치해 있고 사물들의 표면과 이면을 동시에 보고 있고 얼굴의 움직임과 의식의 움직임을 동시에 쫓아가고 있으며 모험 전체의 현재. 과거. 미래를 동시에 알고 있는 그 전지의 화자, 그 어디에나 존재하는 화자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거야말로 하나의 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객관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뿐이다. 반면에 우리의 소설책에서는 오히려 보고 느끼며 상상하는 것은 하나의 인간, 시간과 공간 속에 위치한 하나의 인간, 자기의 열정에 조건 지어진 하나의 인간, 여러분이나 나 같은 하나의 인간인 것이다. 그리고 그 소설책은 그 인간의 경험, 제한되고 불확실한 경험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있는 한 인간, 지금의 한 인간이 결국 자기 자신의 화자인 것이다. 실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문학에 있어서 독자가 이 모든 기성 관념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받아들이자마자 우리의 소설책들이 독자 전체의 이해의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아마도 이처럼 분명한 사실에 대해서 자신의 눈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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