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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방이라는 사고실험이 있다. 내용은 다들 알겠지만 자연스러운 진행을 위해 설명하자면, 하나의 방이 있는데, 이 방에는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참가자, 이러이러한 중국어 문장에 대해 이러이러한 중국어 문장으로 답하라는 거대한 표, 그리고 외부와의 소통을 위한 필기도구가 있다. 이에 따라 참가자는 외부에서 온 중국어 문장을 보고 표에 따라 중국어 문장을 외부에 내놓는다. 이때, 이 '방' 자체는 중국어를 '이해'하는가?

작가 바야르가 여기서 소개하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방법"은 (겉으로만 그럴 뿐이지만) 이와 유사하다. 잃시찾을 완독하기는 커녕 한 줄도 읽어보지 않은 독자가 있다고 하자. 그렇지만 그는 잃시찾에 관한 담론들을 많이 알아서, 대화 도중 마들렌에 대해 "프루스트 현상" 운운하며 베르그송이니 들뢰즈니 할 수 있다.

이렇게 서술하면 이 독자가 굉장히 속물적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우리가 늘상 하는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페아노 공준이니 ZFC에서 수가 정의되는 방법이니를 굳이 알아야 1+1=2라고 말할 수 있는건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다만 그런 것들을 아는 사람들이 1+1=2라고 말했다는 것을 보편적 상식으로서 알고 있고, 이 앎에 근거하여 1+1=2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슷하게,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존 설의 중국어 방 논문을 직접 읽은 이는 극소수일 것이고, 나도 안 읽었지만, '주워들은 것'을 통해 이렇게 비유에 써먹을 수 있고 또 그 비유를 이해할 수 있다.

작가가 말하는 것은 이런 "총체적 시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을 우리 같이 저급한 필멸자들이 전부 읽을 수는 없다. 각 출판사별로 나온 세문집들을 (중복을 제하고) 합쳐본다면 1000권 정도는 되지 않을까? 비문학 고전의 경우는 더 심각하고 말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함에도 우리는 고전을 주제로 대화할 수 있다. 율리시스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이 책의 작가는 조이스이며, 의식의 흐름이 사용되었고, 더블린을 배경으로 해 오디세이아를 패러디한 측면이 있으며, 주인공은 스티븐과 블룸이고 등등...

물론 이런 지식은 책을 실제로 읽는 일을 대체할 수 없다. 공산당 선언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 책이 맑스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 책임은 알 수 있지만 책의 초반부에서 맑스가 자본주의의 혁명적 성격을 말하는 구체적인 자세는 읽어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공산당 선언으로 논문이라도 쓸 건가? 일반적 대화 상황에서는 그런 구체적 정보 따위 대부분 불필요하다. 대화 상황에서 그런 TMI로 상대에게 꼽을 준다거나 묻지도 않았는데 줄줄 늘어놓으며 '그뭔씹'을 일으키는 사도마조히즘적 성벽이 없다면 말이다.

결과적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실용적인 "교양"의 강조라 하겠다. 책을 읽지 말라는 반지성주의가 아니라, 모든 책을 읽을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전체를 커버하는 능력을 기르자는 것이다. 그런 능력을 기르려면 여하튼 책을 계속 읽어야 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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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 안 읽었고, 그냥 제목을 한 번 실천해봤음 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