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부터의 수기> 전반부는 소설인 동시에 긴 수필이기도 하며, 때로는 소설과 따로 출간되기도 한다.
약간 유산을 받은 후 직장을 떠나고, 평범한 사회생활을 거 부하며 '지하'라는 외로움과 정신 상태에 파묻힌, 페테르부르크 출신 마흔 살 남자의 분노에 찬 독백이 그 유명한 전반부를 구성한다. 주인공은 먼저 체르니셰프스키 소설에 나오는 '이성적인 에고이즘'이라는 관점을 공격한다. 체르니셰프스키에 의하면 인간은 태생적으로 '선한' 생명체이고, 과학과 논리의 도움으로 '계몽된다면' 자신의 이익이 이성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의 이득을 좇을 때조차 이성적으로 완벽한 유토피아적인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지하 인간은 먼저 우리가 이해할 만한 추론으로, 인간은 자신의 이득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더라도 항상 그 필요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는 생명체라고 설명한다. (서구화는 러시아의 이득을 위한 것이지만 이것을 반대하고 싶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을 '이성적'으로 보는 태도는 더 복잡하다고 말한다. “한 인간의 모든 힘은 톱니 바퀴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를 위 해 우리는 우리에게 기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터무니없는 것을 한다." 지하 인간은 서양 사상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과학적 이성에도, 2×2=4라는 것에도 맞서며 저항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지하 인간이 체르니셰프스키에 맞서 주장한 정당한(최소한 더 성숙한) 논리가 아니라, 도스토예프스키가 이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설득력 있게 변호하는 주인공을 창조했다는 점이다. 그의 이후 소설에서 분명해지며, 진정한 소설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이런 주인공을 설정할 때 이루었던 발견이다. 자신의 이익과는 반대로 행동하는 것, 고통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순식간에 자신에게서 기대하는 것(유럽의 이성주의, 이기주의적 실리주의)과 반대되는 것을 열정적으로 변호하기 시작하는 것 등. 이후에 많이 모방되었던 이와 같은 고유성을 지금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항상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만 행동 하지는 않는 생명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지하 인간이 경험한 것을 한번 볼 필요가 있다.
어느 날 밤 그는 형편없는 술집 앞을 지나가다가, 술집 안 당구대 근처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잠시 후 누군가가 창밖으로 내동댕이쳐진다. 그러자 지하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질투심이 솟구친다. 그 남자처럼 자신도 무시당하고 창밖으로 내동댕이쳐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술집 안으로 들어가 보지만,
원하는 대로 몰매를 맞는 대신 전혀 다른 형태로 무시를 당한다. 한 장교가 지하 인간이 길을 막는다며 그를 원래 있던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그것도 그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옮겨 놓은 것이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이 무시에 그는 고뇌에 빠진다.
나는 이 짧은 장면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이후 소설에 나오는 모든 결정적인 요소들을 발견했다. 셰익스피어처럼, 인간이 자신에 관한 관점을 바꿔 풍부하게 할 정도로 그가 위대한 작가라면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새로운 인간 모습의 첫 징후를 읽고, 이 위대한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실패와 불행은 도스토예프스키를 승리한 사람들이나 '정당한' 사람들, 오만한 사람들의 정신세계에서 멀어지게 했고, 그는 러시아 국민들을-그리고 자신같은 사람들을- 위에서내려다보는 서구주의 지식인들에게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서구주의와 투쟁하고자 하는 바람과, 서구식 교육을 받고 자란 서구 예술(소설 예술)을 사용하는 삶 사이에 끼어 있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이 모든 정신적 상태를 경험하는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바람 혹은 모든 갈등을 설득력 있는 형태로 껴안을 수 있는 주인공과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했을 때 "어떤 것이 나올지 나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주 형편없는 것이 나올 수도 있다."라고 편집장인 형에게 쓴 바 있다. 문학사의 위대한 발명들은, 마치 글에서 개인의 스타일이라고 하는 것처럼, 대부분 계산하고 계획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놀랍고 자유로운 발명들이 서로 모순되고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독특한 상황 속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작가들이 상상력에 끝까지 매달리며 고심해야만 한다.
처음 쓰였을 때는 작가들조차 그 결과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 자신의 냄새, 추한 면, 패배, 고통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으며, 무시당하는 희열에도 논리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이 관 점은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시작되었다. 현대 문학의 많은 패배가, 유럽 사상에 친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성향과 그에 대해 느끼는 분노, 유럽인이 되는 것과 유럽에 맞서는 것 사이에서 느끼는 불가항력적인 긴장감에서 나왔다는 것을 상기하다 보면 그래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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