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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창가에서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이제 아무도 견디지 못한다. 모두가 괴로움에 지쳐 마침내 큰 소리로 외친다. 괴롭다! 괴롭다!”

개인의 고통을 다루는 작품은 문학에서 수없이 존재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것은 공통된 주제 내에서 어떻게 차이점을 만들어내고 더 독보적인 작품을 창조해내는가다. 솔 벨로는 유대계 작가로 그의 작품은 보통 유대인 주인공이 겪는 사건들과 사변적인 논의들로 이루어져있다. <오늘을 잡아라>는 주인공인 토미 윌헬름과 그의 주변 인물과의 대화들,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실패에 주목하며 “하루”를 전개해나간다. 주인공 토미 윌헬름은 과거 새로운 시작을 위해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개명을 했지만 현재에 와서는 후회 중이고 다른 인물들로부터는 애칭인 윌키로 불린다. 이름을 혼동하면서 생기는 정체성의 문제를 드러내는데 이름은 곧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상징이다. (아버지의 성) 토미 애들러였던 자신과 성공을 꿈꿨지만 실패와 고통 밖에 남지 않은 토미 윌헬름, 자신을 아직도 어린애 취급하는 윌키로 윌헬름은 자신이 어디에 속해있는지 무분별해지고 혼란스러워한다. 윌헬름의 실패는 어느정도 운명에 의한 것이지만 그의 책임도 분명 존재한다. 잘못된 선택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실행해 나가고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내모는 판단과 같이 그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질 수 밖에 없는 한심한 행동들과 실수로 점철되어 있다. 삶에서 최악의 시기, 가장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는 윌헬름의 하루는 식당에서 아버지와의 다툼과 사기를 당해 전재산을 잃고, 별거 중인 아내에게서 돈을 독촉하는 전화 등등 온갖 비극적인 사건들만 일어난다. 마지막에 그는 사기꾼인 탬킨 박사를 쫓다가 결국 이름 모를 누군가의 장례식에 얼떨결에 참석하게 되지만 관에 들어있는 망자를 보고, 즉 죽음을 직시하고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고통 뿐인 삶으로부터 구.원받고 해방된다. 그러나 이 해방은 과연 일시적인 것일까? 아니면 그가 재기할 수 있도록하는 신의 도움일까? <오늘을 잡아라>는 실패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대신에 현재, 바로 오늘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솔 벨로의 문학적 시도이자 회고록이다.

+ 나는 <오늘을 잡아라>는 흔히 말하는 “찐따 소설”과 구별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찐따 소설”(지하로부터의 수기, 나의 친구들 등등)은 개인의 내면과 고독에 치중하는 면이 있다. <오늘을 잡아라>에서 물론 윌헬름 본인의 생각도 표현되지만 관념적인 이야기 대부분은 타인들과의 대화에서 나온다는 것에서 차이점을 느꼈다. 이 소설은 더 거대한 구조, 인생과 운명이라는, 벗어날 수 없고 거역 불가능한 압도적인 체계 속에서 고통 받는 개인을 그려낸다는 것 역시 위에 언급한 소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근데 이렇게 써놓으면 그냥 카프카 소설들 아님?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카프카가 세계의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은 비현실적인 그로테스크함을 통해 무엇보다 공포스러운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카프카의 비현실적인 세계가 사회적 구조를 비유하는 것도 있지만 이 역시 그의 작품 속에서 부조리성과 마찬가지로 의도되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억눌린 분위기, 무력한 자아, 접근불가능한 희망과 목표… 

++ <오늘을 잡아라>와 비슷한 소설로는 작품들은 사회 속 길잃음과 존재와 언어의 해체를 다룬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인간, 교육, 시대, 국가 등 모든 것을 불신하며 증오와 멸시로 조롱하는 <원인>.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아래 도구로 이용되는 인간을 철저하게 몰락시키는 <미스 론리하트> 정도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