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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중국의 ‘바틀비’라 봐야 하는가?>

제목: 탕핑주의자 선언
저자: 익명
출판사: 미디어버스

아래 링크에서 번역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platformc.kr/2023/02/the-tangpingnist-manifesto

중국 「탕핑주의자 선언 躺平主义者宣言」 번역2021년 중국 대륙에서 ‘탕핑’이라는 말이 일종의 행동주의적 지침으로 유행하자, 당국은 서둘러 이 말을 검색 금지어로 등록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가난하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파트타임 일자리를 전전하는 인민들 사이에 널리 퍼진 후였다. <탕핑주의자 선언>은 이런 물결 속에서 작성됐다. 2021년 6월 1일 중국 대륙에서 처음 발표되었고, 이내 목각으로 제작되어 불법 출간되었다. 1년이 지난 2022년 6월 1일 수정된 버전이 ‘제2판’으로 발표됐다. 플랫폼C에서 ‘미상’으로 알려진 작성자의 동의를 얻어 번역하였다. 이 글은 일본어로도 번역 출간되었다.platformc.kr



자본주의가 야기한 경쟁 사회는, 젊은이들을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그렇게 집에 들어가 누워 있는 이들을 혹자는 ‘은둔형 외톨이’라 표현한다. 하지만 이 표현 중 은둔이란 단어에게선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에게 향유되기 시작하는 이 공포에 대하여, 우리는 관점을 다시 조정해야 하지 않을까?

세계를 90도만 돌려서 보면, 사람들은 평소에는 말할 수 없는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바로 눕는 것이 서는 것이고 서있는 것은 기어가는 것이란 점이다. - 7p

‘탕핑(躺平)’은 단순히 말하자면, 눕는 것을 의미한다. 탕핑의 핑(平)은 해석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데, 평화이기도 하고, 평형이기도 하고, 평등이기도 하다. 『탕핑주의자 선언』(익명)은 독자들로 하여금 이 다양한 핑의 뜻을 반영한 눕기를 실천하도록 요청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탕핑을 말하는 건가? 바로 세상을 향한 탕핑이다. 더 이상 일하지 말자. 더 이상 세상에게 휘둘리지 않고 이제 그만 눕자. 익명의 저자는 탕핑주의자가 되자고 선언했다.

생명을 연료로 바꾸려는 위대한 시대의 부름들은 일찍이 극도로 흥분하며 앞으로 가라고 그들을 재촉해왔다. 지금도 여전히 한 마리의 파리처럼 맵살스럽게 귓가에 맴돌고 있다. - 5p

저자는 탕핑을 추구하는 탕핑주의자가 누구인지 구체화했다. 단순히 안락한 삶이어서 눕는 자들(탕잉주의자)도 아니고, 온건한 방법을 취하는 자칭 탕핑주의자도 아니다. 기술적 낙관주의로 똘똘 뭉쳐 인간의 노동력이 대체될 거라 주장하는 이들도 아니다. (본문에서는 콕 집어 명시하지 않았지만, 특이점주의자일 거라고 생각해본다.)

작중 명시된 탕핑주의자의 약점은 바로 독립성이다. 탕핑주의자들은 사회로부터 유리된 자들이라 연결성이 약하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사회의 비주류 계층 모두에게 같이 연대하자고 호소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 계층들과 위인들을 호명한다.

탕핑주의자는 그들 자신의 명절을 발명한다. 이러한 명절에서 그들은 풍작이나 승리를 축하하지 않는다. 자동차가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기계가 돌아가고 몸이 마비된 공장 안에서도 탕핑주의자는 눕는다. - 29p

하지만 호명 과정에서도, 탕핑주의의 구체화 과정에서도 허언 멜빌이 창조한 캐릭터, 바틀비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놀라웠다. 익명의 저자가 쓴 이 선언문에는 다양한 인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라며 끊임없이 상사로부터, 사회의 질서로부터 바틀비는 거절했다. 이 거절의 행위는 틀림없이 탕핑과 닮았다. 하지만 『탕핑주의자 선언』과 『필경사 바틀비』, 이 두 작품 사이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

익명 저자의 선언문에서는 탕핑이 무엇인지, 그리고 탕핑주의자의 친구가 누구인지 등등 끊임없이 구체화하고 방향을 명확하게 만들었다. 이에 반해 허언 멜빌의 단편에서는 독자가 끝까지 바틀비의 거절 이유를 알 수 없게 한다. 이러한 방향성의 차이는 (설령 익명의 저자가 바틀비에서 아이디어를 따왔어도) 바틀비와 다른 길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익명의 저자 눈앞에는 책 꾸러미가 아닌, 차디찬 사회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탕핑주의자는 21세기의 바틀비라고 물으면, 나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바틀비와 달리 탕핑주의자는 허구의 텍스트를 뚫고 현실에서 직접 누우려는 자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