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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세 잉글랜드 왕국의 궁정 시인이었던 마리 드 프랑스가 저술한 시들을 모은 것이다. '프랑스의 마리'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본래 프랑스 출신이기 때문에 원문은 영어로 쓰이지 않았다. 아카넷판의 경우 별도로 원문들도 실려 있는데, 이는 중세 노르만어이다. 시의 내용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저자가 노르망디 출신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궁정 시인이기에 드러나는 경향도 있다. 경어를 사용하고, 청자를 명시하는 등의 요소들이 그렇다. 중세 궁정에서는 낭독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직접 읽어주는 듯한 어투로 쓰인 것이다.
'래'라는 것은 시의 장르 중 하나인데, 상당히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바로 서정시와 기사도 문학 사이의 과도기적 성격을 지닌 장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래'는 간단히 설명하자면 아주 짧은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일반 서정시들과 다르게 일정한 서사가 존재한다. 다만 그 길이나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기사도 문학들에 비해 서정시적인 특징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래'를 과도기적인 장르라고 칭할 수 있다. 항간에서는 래를 중세의 단편소설, 서사시와 기사도 문학을 장편소설로 칭하기도 한다. 이는 앞서 말한 분량과 서사 구성에 따른 구분점을 잘 보여주는 비유이다.
다루는 소재 및 그에 대한 관점 역시 두 가지 장르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여기에 실린 12가지의 '래'들은 주로 궁정을 중심으로 하는 사랑, 그중에도 불륜과 같은 사회적으로 금지된 사랑을 다루고 있다. 또한 전반적으로 연인들이 사랑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에서 초자연적인 요소의 개입이 빈번하다. 이는『트리스탄과 이졸데』등의 기사도 문학과 유사한 점이다(수록된 작품 중『인동덩굴』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 중 일부를 시로 개작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의 서사시와 이를 바탕으로 한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가 유명하지만, 실은 그 이야기의 원전은 구전 설화이다.)
또 마리는 사랑과 고통을 결부시키고, 이를 때로는 비극적으로 다루기도 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 역시『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의 슈트라스부르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그는『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서문에서 사랑과 고통의 관계성에 대해 자세히 다룬 바가 있다. 또 그의 이야기 속에서 사랑과 고통은 함께 움직이고 있는데, 마리의 래에서도 종종 그러하다.)
그러나 마리의 사랑에 대한 견해는 다소 무책임하기도 하다. 그녀는 사랑의 정당성을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충직'으로만 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관점에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은 철저하게 제3자와 사회를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3자라 함은 불륜 대상의 본처나 본군을 포함한다. 어떠한 두 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불륜과 같은 사건에서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인물들은 이들이 아닌가? 그런데 마리의 시선에서는 전술했듯, 해당 사랑에 있어 그들은 단지 '제3자'다. 자신의 행동이 타자에게 어떠한 직접적 해악을 구가하는지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것은 곧 무책임하다는 뜻이다. 그러한 사랑은 그저 방종적인 것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점에 대해서는 부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물론『에퀴탕』등의 작품들에서는 타자에게 직접적인 해악을 구가하는 행위–살인 등–를 하려다가 벌을 받는 장면이 있기도 하다. 다만 그것은 마리가 생각하는 해악이라는 것이 아주 한정적이라는 사실만 보여준다. 불륜이라는 행위 자체로 인하여 피해를 볼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 시집의 이야기들이 대체로 불륜을 다루고 있지만, 어떠한 경우에는 오히려 그들에게 행복한 결말이 주어진다는 점만 봐도 그러하다.)
이러한 연애관은 매우 협소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들의 행동과 직접적인 인과적 연결이 있는 위법적인 측면과 다양한 해악들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것은 불륜을 처벌 대상으로 두는 것이 적합한지와는 별개의 이야기이다. 그 점에서는 증거 수집의 난해함과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가정 붕괴나 사회적 비용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도 그 문제 때문에 간통죄가 폐지 되었다는 견해가 없지 않다.)
이어서 각 '래'들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
『총서시』
이 시집의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역자에 따르면 이 부분 역시 운문과 율격에 맞추어 쓰여있기에 '시'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마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번째는 '래'를 작성하게 된 동기이다. 마리의 말에 따르면 당대부터 이미 유명한 학술서들의 번역이나 주석 작업은 빈번하게 이루어졌던 듯하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자신이 여러 언어에 능통(그녀는 노르만어 외에도 고대 영어, 라틴어 등에 능했다고 알려져 있다)하긴 하나, 상기한 일들로는 명성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자신이 손수 시를 작성하는 편이 더 작가로서 이름을 남기는 데에 적합할 것이라 판단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삶과 별개로, 스스로는 명성을 남기기를 바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제에서도 이 부분이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보여주는 근대적인 일면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두번째는 국왕에 대한 헌정사이다. 여기서 말하는 국왕은 잉글랜드의 헨리 2세이다. 전술했듯 그녀는 본래 프랑스 출신이지만, 잉글랜드 궁정에서 활동했다. 헨리 2세는 선조인 윌리엄 공(잉글랜드를 침공하여 소위 '노르만 왕조'를 개창한 노르망디의 공작이다. 현 영국 왕가의 근본이 되는 선조이기도 하다. 백년전쟁이 발발한 것도 그의 뒤를 이은 잉글랜드 국왕들이 노르망디를 포함한 영지들까지 계승했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의 치세 때부터 잉글랜드 국왕은 동시에 노르망디 영주로서 프랑스 국왕의 봉신이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태는 백년전쟁 이후 잉글랜드가 프랑스 영지를 거의 몰수 당함으로써 종식되었다.)과는 다르게 교양 있는 군주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런 이유로 그의 치세에는 마리와 같은 문학가들이 궁정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기주마르』
이 시는 시작부터 자신을 비판하는 당대의 작가들과 비평가들에 대고 비아냥거리는 투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역자의 주석에 따르면, 마리와 동시대에 활동한 시인 드니 피라미스가 자신의 시에서 "마리 부인의 시는 모두 허구이며, 여자들이나 좋아할 법한 이야기이다."라는 식의 폄하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비판들에 대해서 마리는 "그들은 비겁한 겁쟁이 개들일 뿐이므로, 내가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간에 나는 이야기를 이어나갈 것이다."와 같은 식으로 답하고 있다. 아무리 전통적 예법을 중시하는 시대였다고 한들, 예술가들은 자신의 자아를 무시하는 이들에게 맹렬한 대응을 보여주었음을 알 수 있는 일면이다(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을 읽고, 슈트라스부르크가『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당대의 다른 작가들에 대한 평가를 늘어놓았던 부분이 떠올랐다. 아무리 중세였어도 예술가들의 자아는 대부분 비대했던 모양이다. 물론 그들은 손꼽히는 역량을 보유한 이들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추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어서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레옹 지방 영주에게는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었다. 아들은 기주마르, 딸은 노그이다. 유년기부터 재자가인이었던 기주마르는 기사가 된(중세 귀족 자제들이 기사가 된다는 것은 성인이 되었음을 드러낸다) 후 여러 전장을 떠돌아다닌다. 그는 오직 자신을 무장으로서만 정의했다. 마리의 표현에 따르자면, '사랑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는 전혀 없었'다. 사람들은 용모가 출중함에도 사랑에 무관심한 그를 불쌍히 여겼다.
일은 그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시점에 사냥에 나서고 벌어졌다. 그는 이 사냥에서 한 암사슴의 이마에 활을 쏘았다. 사슴은 즉시 쓰러졌으나 화살은 튕겨나와 그의 허벅지를 관통한다. 이 암사슴은 신묘한 생물이었기에 그에게 말한다. '그 상처는 오직 사랑하는 여인만이 치료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된다면 당신은 또 다른 상처를 얻게 되겠지만, 그녀 역시 그러할 것'이라고 말이다(이 지점에서 상술한 사랑과 고통을 결부시키는 경향이 드러나고 있다.)
기주마르는 이를 가족들에게 알|리러 가던 도중, 한 배를 발견하게 된다. 그 배는 당시로서는 값비싼 자재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침실 역시 최고급이었다. 심각한 부상을 입어 지친 그는 침실에서 잠들게 된다.
그가 깨어보니 고향과 먼 지역에 도착해있었다. 거기서 그는 이후 연인이 될 부인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그 지방 영주의 부인이었고, 부군인 영주는 부인을 의심하여 탑에 가두어둔 상태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조카딸을 감시역으로 붙였는데, 오히려 그녀가 기주마르와 부인의 사랑이 성사되는 데에 도움을 주게 된다(이 점에서『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브리지트가 떠오르기도 한다.) 둘은 그렇게 1년 반 동안 영주 몰래 애인으로 지내다가 결국 적발된다. 기주마르는 타고 온 배에 다시 올라 그대로 추방되었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약속의 증표를 나눈다. 기주마르에게는 그녀 외에 풀 수 없는 매듭이, 부인에게는 그 이외에는 풀 수 없는 벨트가 증표가 된다.
그렇게 이별 후 얼마 간의 세월이 흘렀다. 부인이 창 밖을 보는데, 기주마르가 타고 간 것과 같은 배가 도착해있었다. 부인은 즉시 탑에서 탈출하여 배에 오른다. 배는 기주마르가 모시는 귀족의 영지에 도착한다. 그런데 그 귀족이 부인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증표인 벨트를 풀 수 없어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던 중 마상 시합이 개최되어 기주마르도 해당 영지에 방문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둘은 증표를 풀고 재회한다. 기주마르는 그 귀족에게 자신이 부인을 데리고 갈 수 있다면 평생 충성하겠다고 맹세하나, 반려되게 된다. 결국 기주마르는 해당 귀족의 적성 세력인 다른 영주의 편에 붙어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고는 그를 살해한 뒤에 부인을 탈환한다. 여기에서 이야기는 끝난다.
『에키탕』
이 작품의 도입부에서는 자신의 래가 본래 브르타뉴 지방 사람들이 부르던 래에서 큰 영향을 받았음을 전하고 있다(래는 본래 낭송을 기반으로 한 음유시였기 때문에 부른다는 표현이 적합할 듯 싶다. 마리는 간혹 이야기가 끝날 때 해당 작품이 곡으로 편곡 되었다는 정보를 전하기도 한다.) 앞선 작품의 것과는 다르게 이외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 역시 제목과 같은 에키탕인데, 여기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이 '공정'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공정을 뜻하는 'Equity'와 유사한 'Equitant'가 그 이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해석으로는 에키탕이라는 이름이 사냥을 뜻하는 단어에서 왔다고도 한다. 이 해석을 채택할 시에는 앞선 작품과 같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계기를 의미할 것이다. 또한 극중에서 에키탕은 사냥을 좋아하는 성격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또 마리는 에키탕을 '예의바른' 인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실은 굉장히 무례한 성격의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반어법일 것이다.
일국의 왕인 에키탕에게는 충직한 집사가 있었다. 사냥과 향락에 빠져 지내는 왕이 등한시 하는 일을 모두 그가 처리하고 있었다. 집사는 어느날 결혼을 한다. 그리고 부부는 왕과도 대면하게 된다.
이때 왕은 집사의 부인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왕은 사랑을 고백할 때 진실한 사랑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남을 속이는 자는 반드시 비웃음을 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스꽝스러운 점은 왕 본인이 집사의 부인을 정부로 삼고, 심지어 집사를 해하려고 시도하다가 어이없는 죽음을 맞는다는 점이다. 본인 말을 본인이 증명하였다.
두 사람이 불륜 관계로 지내던 중, 국왕이 결혼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오자 부인은 불안해한다. 정식으로 왕비를 맞이한다면 자신은 버려질 것이라는 데에서 불안감이 엄습한 것이다. 이에 왕은 집사가 죽는다면 자신과 결혼해줄 것이라고 장담한다.
여기에 힘입어 두 사람은 집사를 암살할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그 계획이란 왕이 목욕을 권할 때, 집사가 들어갈 욕조에 매우 뜨거운 물을 채워놓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륜에 대해 눈치챈 집사에 의해 두 사람의 계획은 실패하게 된다. 집사는 목욕에 들어가기 전에 일부러 잠시 외출을 했는데, 이는 불륜 현장을 적발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통정할 때 집사는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당황한 왕은 집사를 암살할 용도로 마련해둔 욕조에 뛰어들고 만다. 그는 그대로 화상을 입어 죽었다. 이어서 집사는 부정을 한 자신의 부인 역시 욕조에 담가죽인다.
여기서 이야기는 끝나게 된다. 후대에 쓰인『캔터베리 이야기』나『데카메론』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롯이라고 하겠다.
『르 프렌』
이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 틀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는 주인공 프렌이 어머니의 실책으로 인해 버려지기까지의 이야기이며, 두번째는 장성한 프렌이 애인 고롱을 미천한 신분 때문에 떠나보내는 이야기이고, 세번째는 본래 고귀한 신분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애인과 해소하는 결말부이다.
프렌의 어머니는 이웃집 부인을 질투하여 그녀에게 중상모략을 한다. 이웃집 부인이 쌍둥이를 출산한 것은 불륜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당대 유럽에서 쌍둥이를 출산하는 것은 두 남자와 통정했기 때문이라는 미신이 퍼져 있었다. 그런 관계로 부군에게 의심을 받게 된 이웃 부인의 명예는 실추된다.
그런데 몇 년 뒤 그렇게 중상모략을 한 자신 역시 쌍둥이를 출산하게 된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자신에게 위험이 닥칠 것을 염려하여 쌍둥이 중 하나를 버리기로 결심한다. 그 버려진 딸이 주인공 프렌이었다. 당시에는 실제로 원치 않는 아이나 기형아 등을 수도원 문 앞에 유기하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지체 높은 가문에서 그렇게 해야할 때는 부모의 귀중품 중 하나를 소지한 채로 보내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 작품에도 등장한다. 그 어머니가 묶어보낸 루비가 박힌 금반지와 아이에게 덮인 고급 천은 향후에 프렌의 본래 신분을 밝히는 데에 공헌하게 된다.
수녀원장에게 발견된 프렌은 수녀원에 거둬지게 된다. 그리고 물푸레나무(일리아스에 나오는 그 창 자루 제작할 때에 쓰이는 나무가 맞다. 굉장히 커다란 종이다.) 아래에서 발견 되었다고 하여 그 이름이 프렌(Frene, 물푸레나무라는 뜻이다)이 된다.
그렇게 수도원에서 양육된 프렌은 영민하고 아름다운 아가씨로 자란다. 근접 지역의 영주인 고롱 역시 그 소문을 듣고는 수도원에 방문한다. 그리고 이내 두 인물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프렌은 수도원을 떠나서 고롱의 성으로 이주한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고롱의 가신들이 그런 근본 없는 여성과 계속 교재한다면 충성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만일 프렌이 이대로 내쳐진다면 어떠한 법적인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신분상 정실 부인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고롱은 신하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코드르라는 귀족 영애와 약혼하게 된다.
고롱과 코드르의 식이 열릴 때 반전이 드러나게 된다. 프렌은 그들이 누울 침실의 이불이 영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급 천으로 바꾼다. 그때 코드르의 어머니가 들어와서 이 천을 보게 된다. 그러고는 놀랐는데, 왜냐하면 자신이 프렌을 버렸을 때 덮었던 그 천이었기 때문이다. 즉, 코드르는 프렌과 쌍둥이 자매였던 것이다. 코드르의 어머니는 확실한 검증을 위해 반지까지 확인하였다. 반지마저 당시의 것과 같음이 드러나자 프렌이 그때 자신이 버린 딸이라고 선언하게 된다. 본래 귀족 영애였다는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자 고롱은 그대로 프렌과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여기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드물게도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프렌과 고롱의 관계에는 어떤 시각에서 보던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시집에서 다루는 연애사들의 대부분이 불륜 관계인 데에 반해, 이 두 인물 사이에는 그런 요소가 전혀 없다.
『비스클라브레』
이 작품은 늑대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리는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당대의 늑대인간에 대한 인식을 소개한다. 읽어보면 알 수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늑대인간이라는 크리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주류였던 듯하다. 마리가 12-13세기 인물인 것을 생각하면 늑대인간의 전형적인 이미지는 무려 8-9세기 동안이나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이미 당대 기준에서도 예전부터 소문이 돌던 크리쳐였던 것을 생각하면, 실질적으로는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각|설하고, 마리는 지금 소개할 이야기가 잘 알려진 늑대인간의 이야기와 다르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비스클라브레는 늑대인간이지만 흉포하거나 인간에게 적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그녀는 늑대인간을 어떤 식으로 통념과 다르게 표현했을까? 한 번 보자.
브르타뉴에 한 제후가 있었다. 그는 수려한 용모와 총명한 능력으로 유명했으며, 아름다운 여인을 처로 두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간혹 사흘 정도 외출하곤 한다는 점이다. 부인은 내내 고심하다가 결국 이에 대해 묻게 된다. 제후는 그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사랑은 무너질 것'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부인은 끝내 굽히지 않았다. 집요한 질문에 제후는 이렇게 대답한다. 자신은 사흘 동안 늑대인간이 되어 숲에서 사냥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늑대인간일 때 타인을 해할까봐 스스로를 격리해둔 것이었다. 이에 부인은 늑대인간 상태일 때 옷을 어디에 숨기냐고 묻는다. 제후는 오래된 경당 아래 바위에 숨겨둔다고 답했다. 그러고는 만일 자신이 옷을 되찾지 못한다면 일생 늑대인간으로 살아야 한다고 일러둔다. 그리고 이 점은 중대한 복선이 된다.
부인은 사실 제후가 늑대로 변하여 동물을 잡아먹는다는 데에 경악하였다. 그리하여 상술한 옷 관련 사항을 이용해서 제후를 버리기로 결심한다. 하여 용모가 수려한 기사와 연인이 되고, 그와 공모해 제후의 옷을 빼돌린다. 다른 이들은 제후가 늑대인간이 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으므로, 당연히 그가 실종된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늑대인간은 항상 악역에 가까운 인물로 등장하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그가 엄연히 피해자가 된 것이다.
상황은 프랑스 국왕이 해당 숲으로 사냥을 나서며 급변한다. 제후 및 가신들의 무리와 늑대인간이 서로 마주치게 된 것이다. 늑대인간은 무리를 전혀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왕의 앞에 와서 머리를 조아렸다. 이러한 전개에 좌중은 모두 크게 놀라게 된다(인간에게 적대적인 것이 당연할 짐승이 갑자기 인간처럼 예를 지킨다고 생각해보라) 이에 감명 받은 왕은 그를 궁전으로 데려가서 극진히 대접하게 된다. 늑대인간은 전혀 인간을 해하지 않고 온유하게 행동해 모두에게 호감을 샀다.
국왕이 봉신들의 회의를 모집하면서 다시 상황은 변한다. 부인, 그리고 그녀와 재혼해 새로운 제후가 된 기사도 그 자리에 동반했기 때문이다. 늑대인간은 기사를 보자마자 곧장 돌진하여 물어뜯으려고 시도하였다. 하지만 국왕이 즉시 제지한 덕에 기사는 부상을 입지 않았다. 여기서 모든 좌중은 의문에 빠지게 된다. "모두에게 온유했던 늑대인간이 왜 기사를 공격했을까?"하는 의문 말이다. 생각 끝에 좌중들은 분명히 무슨 원한이 있어서 그런 것으로 짐작한다.
그리하여 국왕은 연회가 끝난 뒤에 처음 늑대인간을 발견한 숲을 방문한다. 그리고 이때 환영하러 나온 부인에게 늑대인간은 그대로 달려들어 코를 물어뜯어 버린다. 늑대인간은 즉시 처분될 뻔 했으나, 한 현명한 신하의 간언 덕에 목숨을 건진다. 신하의 조언에 따라 국왕은 부인과 그 부군을 신문하게 되고, 결국 진실을 알게 된다. 늑대인간이 자신의 실종된 가신 비스클라브레였던 것이다.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한 국왕은 그 부인과 기사를 곧바로 추방해버린다. 추방된 부인은 기사와 많은 자손을 남겼다고 하는데, 마리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코가 결손된 상태로 태어났다고 한다.
이야기를 마치며 그녀는 지금까지 전한 이야기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말한다(물론 우리는 믿지 않는다. 후천적 장애가 유전됐다는 것 이전에 애초에 늑대인간에 대해서 말이다.)
『랑발』
이 작품은 아서왕(그는 브리튼인들의 영웅으로, 앵글로색슨족의 침입에 맞서 잉글랜드를 지켜냈다고 전해진다. 물론 실존인물인지의 여부는 불확실하다. 또한 연관된 전설들은 다소 비현실적인 내용도 담고 있으므로, 걸러들을 필요성이 있다.) 및 원탁의 기사들(아서왕의 궁정에서 활동했다고 전해지는 가신들이다. 여러 국가들의 영웅 서사들이 아서왕 전설에 편입되며 만들어진 설정이다. 원탁의 기사들 중 유명한 인물로는 랜슬롯이 있다. 그는 아서왕의 부인인 기네비어와 불륜 관계였다고 전해진다.)과 연관된 이야기이다. 이 시기에 아서왕 전설과 관련된 문학들이 여럿 집필된 바 있다. 시대적 배경을 더해서 생각했을 때, 당대에 유행하던 소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실은 아서왕 전설 이외에도 전반적으로 켈트 신화적인 요소를 종종 차용하고 있다. 말이 연못을 지날 때 심하게 떠는 장면이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켈트 신화에서 이러한 장면은 요정의 등장을 알|리는 장치로 사용된다.
아서왕이 스코틀랜드인들의 침략을 피해 칼라일성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그는 많은 제후들에게 재물과 명예를 하사했다. 단 한 명, 랑발에게만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국왕과 제후들이 그의 용맹함을 시기했기 때문이다. 랑발은 외국의 지체 높은 가문 출신이었고, 아서왕을 충히 섬겼으나 그에게 돌아오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엄연히 국왕의 가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진 게 전혀 없었다. 이는 국왕을 포함한 기사단 전체가 노골적으로 그를 하대했음을 보여준다(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실상 노예나 다름이 없어보인다.)
어느 날 랑발이 연못 앞을 지나는데, 말이 심하게 떨고 있었다. 이에 모든 것이 귀찮아진 랑발은 말에서 내려 숲에 누워있게 된다. 그러다가 지나가던 아가씨 둘을 만나 그들의 안내로 한 막사에 들게 되는데, 이것이 요정들의 막사였다. 요정의 여왕이 랑발에게 사랑을 전하기 위해 찾아왔음을 밝히고 둘은 연인이 된다. 그리고 요정의 특수한 능력 때문에 랑발은 물질적으로도 풍요를 누리게 된다. 다만 한 가지 약속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요정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왕은 만일 이를 어길 시 다시는 자신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약속을 지킬 때는 언제든 원하면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일러두며 그를 보낸다.
돌아간 랑발은 풍요로워졌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에게 너그러이 베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랑발의 명예는 더욱 드높아졌고, 결국 이것이 후에 그에 대한 문제를 낳게 된다.
랑발은 아서왕의 가신인 가웨인에게 초대를 받아 연회에 가게 된다. 그런데 기네비어가 그에게 접근해왔다(기네비어와 랜슬롯의 관계에 대한 묘사도 그렇고, 아서왕 전설을 다룬 대부분의 문학에서 부정적인 인물로서 그려지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국왕과 애인에 대한 충직으로 그것을 거절한다. 이에 기네비어는 랑발이 동성애자인 게 아닌지 의심하는데, 랑발은 그 대답으로 요정 여왕에 대해 누설해버리고 만다.
또, 돌아간 기네비어는 앙심을 품고 랑발이 자신에게 불순한 감정을 표출했다며 역으로 누명을 씌운다. 결국 그는 왕비를 모욕한 죄로 기소되어 법정에 서게 된다. 자신이 여왕의 존재를 누설해버렸기 때문에, 정작 본인의 애인을 운운하며 여왕에게 분개한 사항에 대해서도 증명하기 난처해졌다. 존재가 누설된다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그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여왕의 시종들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그들은 아서왕에게 곧 자신들의 주인이 올 것이니 기다려 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러고는 그들의 주인인 요정 여왕이 도착했다. 여왕은 아서왕 앞에 서서 왕비의 말은 거짓이며, 랑발은 무고하다는 맹세를 한다. 결국 랑발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그를 구하기 위해 나타난 애인의 도움으로 목숨을 보전한다.
그는 재판이 끝난 뒤에 애인인 요정 여왕과 함께 말을 타고 '아발론'(이 이야기 속에서는 일종의 이상향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리스 신화의 엘뤼시온 같은 공간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으로 떠난다. 이후 랑발의 소식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이야기에서도 전혀 부정한 점은 없다. 랑발과 요정 여왕 사이의 사랑에는 절차적인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두 연인』
이 작품은 도입 부분의 묘사가 인상적이다.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장소의 이동이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마리가 어떻게 적었는지 직접 인용해보도록 하겠다.
"우리가 노르망디라 부르는 네우스트리아에
아주 높고 큰 산이 있는데, 그곳 정상에 두 젊은이가 누워 있어요. 그 산 근처에서 좀 떨어진 곳에 피트르의 영주이자 왕이 심사숙고하여 도시를 세우고 피트르인들의 이름을 본떠서 피트르라 불렀어요. 항상 그렇게 불렸고, 그곳에는 아직 마을과 집들이 있어요. 우리도 잘 아는 그곳은 피트르 계곡이라 불립니다. 그 왕에게는 예쁜 딸이 있었는데 정말 예절 바른 아가씨였어요."
이 대목은 확실히 두 젊은이들이 누워있는 산에서부터 시작하여, 왕이 세운 도시까지를 쭉 훑고 지나가는 듯한 감상이 든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상기 내용 대로 왕에게는 외동딸이 있었다. 왕비가 요절한 뒤로 왕은 딸을 워낙 아껴서 시집조차 보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자 가신들이 왕을 비난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프랑스에는 살리카법이 있기에, 남겨진 공주가 직접 왕위를 계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만약 사위를 맞이하지 않는다면 왕위 쟁탈전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마당이니 가신들이 염려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비난하니 왕은 불쾌했다. 그럼에도 공주를 혼인시키지 않으려고 계책을 짜냈다. 그 계책이란 한 가지 칙령이었는데, 그 조건이 아주 무리했다. 바로 공주에게 청혼하려는 사람은, 그녀를 안고('업고'가 아니다. 만약 그것이었다면 건장한 남성 중에는 해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궁정에서 (도입부에 나온 그) 산의 정상까지 올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백작가의 자제인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용모도 출중하고 예법에 능숙한 청년이었다. 그는 공주의 연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상기한 조건 때문에 부부가 될 수는 없었다. 이것이 그 둘 사이의 고충이었다. 이에 청년은 공주에게 둘이서 도피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공주는 아버지에 대한 신의로 그것을 거절한다. 대신 살레르노(이탈리아에 위치한 도시이다. 당대에 의학이 발달한 것으로 유명했다. 여기서 마리가 마법의 묘약을 얻는 곳으로 비춘 것도 그 저명함 때문인 듯하다.)에 거주하는 부유한 약사 친척을 찾아가보라고 말한다. 그곳에서 원기를 복돋아주는 마법의 묘약을 얻어오라는 뜻이었다. 묘약을 마신다면 청년이 자신을 안고 정상에 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청년은 살레르노로 간다.
살레르노에서 물약을 얻어온 청년은 즉시 등정에 도전한다. 하지만 그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연인과 곧 혼인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뻤던 나머지 물약을 마시지 않은 것이다. 결국 그는 정상에 올랐지만, 그 발걸음을 멈추는 즉시 탈진했다. 그가 기절했다고 생각한 공주는, 그의 품에서 물약을 발견하고는 먹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미 그는 죽어버린 것이다. 충격을 받은 공주는 약을 병째로 던져버리고, 심장마비로 애인 곁에서 사망한다. 해가 지도록 두 사람이 돌아오지 않자 왕과 신하들은 산에 오른다. 그러고는 나란히 누워 죽어있는 두 사람을 발견한다. 왕은 자신이 내걸었던 조건에 대해 후회하며 그들을 함께 묻었다.
즉, 도입부에서 말한 두 젊은이는 청년과 공주였던 것이다.
마리에 의하면, 공주가 약을 뿌렸던 곳에서는 훗날 초목이 번성했다고 한다.
약과 관련된 이야기이며, 연인이 모두 사망하고, 그들의 죽음을 본 사람들이 후회를 느낀다는 점에서 그 유명한『로미오와 줄리엣』이 연상되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불가항력적인 요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난 비극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다르지만 말이다.
『요넥』
이 이야기는 다분히 영웅 서사시적인 면모도 가지고 있다. 도입부에서부터 주인공의 가계를 소개한다는 점, 연애 소재보다도 부친의 복수가 주 소재라는 점이 그러하다. 또한『비스클라브레』에서 그랬던 것처럼, 변신 모티브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 작품에서는 늑대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매이다.
마리는 먼저 요넥이 태어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를 소개한다. 요넥의 아버지는 멀뒤마렉이라고 불리는 이였다.
오래 전 브리튼(여기서는 브르타뉴가 아니라 잉글랜드를 뜻한다)에는 연로하지만 부유한 영주가 있었다. 영주는 후사를 볼 요량으로 젊은 부인을 얻는다. 부인은 지체 높은 집안의 영애였고,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 영주는 그녀를 사랑했으나, 항상 감시하고자 탑에 가두어 두었다. 영주에게는 과부인 누이가 있었다. 그 누이가 부인의 감시역이 되었다.
부인은 영주 누이의 허락 없이는 외출할 수도 없었다. 부인은 우울함 속에 세월을 보낸다. 그렇게 7년이 흘렀다. 여전히 영주와 부인 간에는 후사가 없었다.
어느 날 영주와 그 누이는 아침부터 숲으로 사냥을 나선다. 부인은 홀로 자신의 처지에 한탄한다. 그녀는 신에게 자신을 사랑해줄 기사를 보내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창문을 넘어 매 한 마리가 날아들어온다. 발에 쪽지가 묶여있었던 매는 갑자기 용모가 출중한 청년으로 변신한다. 부인은 이 광경을 보고 놀라서 얼어붙는다. 그때 기사가 먼저 말을 건낸다. 기사는 전부터 부인을 사모했다며, 자신의 연인이 되어달라고 요청한다. 부인은 '당신이 신자(당연히 가톨릭을 말하는 것이다)라면 받아주겠노라'고 대답한다. 이에 기사는 사제를 불러 성사를 받는다면 자신이 악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부인은 이 청을 받아들여 자신이 곧 죽을 것 같으니, 빨리 병자성사를 집전해달라고 영주 누이에게 요구한다. 이윽고 사제가 들어와서 성사를 했고, 기사는 성체와 포도주를 섭취했다(그러고도 이상이 없었다는 것은 악마와 관련된 존재가 아님을 말해준다. 그리스도교에서 성체와 포도주는 예수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사와 부인은 이후로도 연인으로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영주는 굉장히 예리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부인의 상태가 달라진 것을 직감한다. 이전에는 항상 우울한 기분으로 수수한 차림을 하고 지냈으나, 지금에 와서는 너무도 화사해진 것이다. 도대체가 거의 항상 홀로 있는 인간이 그토록 급변할 리가 없었다. 그 원인을 알기 위해 영주는 누이와 작전을 수립하게 된다. 그 작전이란 영주가 아침에 출타했을 때, 몰래 누이도 외출하는 척하면서 비밀 장소에 숨어 탑을 사찰하는 것이었다.
사흘 뒤, 이 계획은 실행에 옮겨졌다. 그렇게 부인은 기사와의 행각을 들키고 만다. 기사의 정체가 매였다는 것까지도 전부 적발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목격한 누이는 곧바로 영주에게 본 사실을 전부 폭로했다. 영주는 기사를 죽일 궁리를 하게 된다.
영주는 쇠꼬챙이를 창문에 가까이 설치해둔다. 기사가 매의 모습으로 창문을 넘어 탑에 출입한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기사는 창문을 넘다가 큰 부상을 입는다. 자신은 곧 죽을 것이니 부인에게는 아이의 이름을 요넥이라 짓고, 잘 키워달라는 말을 남긴다. 그러고는 마지막 힘을 다해 날아간다. 하지만 부인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탑에서 뛰어내려 핏자국을 쫓아간다(탑의 높이가 굉장히 높은데, 아이를 가진 몸으로 뛰어내리고도 아무런 부상을 입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사랑의 힘을 통해 극복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를 쫓다가 한 동굴에 이르게 된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모든 소재가 은으로 된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이는 변신 능력과 더불어 기사의 정체가 인간이 아님을 말해준다.) 여기서 우여곡절 끝에 부인은 기사의 방을 찾는다. 하지만 기사는 반지와 검을 유품으로 남기고 그녀를 다시 떠나보낸다. 반지를 끼고 있는 한 영주는 지금까지의 일을 잊고, 부인을 감금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말이다. 또, 검은 자신의 아들이 장성했을 때를 대비하여 보존하여 두라고 일렀다. 요넥이 장성하면 한 무덤 앞에서 부친의 복수를 할 것이라고 예고하며 말이다.
부인은 성으로 돌아갔다. 영주는 모든 일을 잊었다. 더이상 부인을 감금하지도 않았다. 부인은 아들을 낳았다. 기사의 유언 대로 그 이름은 요넥이 되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긴 세월이 지나고, 요넥은 장성하여 기사 작위를 받는다. 그 해에 영주는 유명한 축제에 초청 받는다. 그리하여 부인, 아들 등을 대동하고 그곳으로 간다. 그 고장에 있는 수도원을 돌아다니던 중 한 무덤을 보게 된다. 그 무덤에는 금칠이 되어 있었으며, 스무 개의 촛불이 타고 있었다. 영주는 이 무덤의 누구의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울면서 대답했다. 그는 '가장 위대한 기사였으며, 자신들의 왕이었는데, 한 귀부인을 사랑한 죄로 쇠꼬챙이 찔려 죽었다'고 말이다. 부인은 이 순간 직감했다. 바로 이 순간이 기사가 말한 복수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느낀 것이다. 그녀는 요넥을 불렀다. '여기 누워있는 분이 바로 네 아버지이고, 네가 아버지라고 믿는 사람이 그의 원수라'고 일러주었다(앞서 말한 기사와 부인의 이야기를 요넥에게 되풀이 해주는데, 그 부분은 생략하겠다.) 그 뒤 부인은 쓰러져 죽는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요넥은 생부의 검을 받아들고 그의 원수인 영주를 베어죽인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요넥을 새로운 영주로 추대하였다고 한다. 그 친부의 후계자로서 말이다.
『나이팅게일』
주석에 따르면, 이 작품은 오비디우스의『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퓌라모스와 티스베 이야기를 비틀은 것이라고 한다(바빌론에 살던 어린 소녀와 소년이 벽을 통해 소통하며 사랑을 키워가다가,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이다. 직접 대면하지 못하던 이유는 두 가문의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결말부에서는 연인이 죽었다는 착각 때문에 남성 쪽이 自殺–그대로 쓰면 알바가 잘라서 어쩔 수가 없다. 이것만 한자로 대체하겠다.–하고, 여성 쪽도 후에 이를 따라 죽는다. 참고로 오디나무 꽃의 꽃말이 '이루지 못한 사랑'인 것 역시 이 작품에서 유래한 것이다. 상술한 것과 유사한 모티브는 제프리 초서와 윌리엄 셰익스피어 등의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셰익스피어는 모두가 알다시피『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이 모티브를 변주했다. 초서의 경우『선량한 여인들의 전설』에서 거의 그대로 사용한 바 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쓴 작품이 많았는데, 마리의 이 시가 더 선구적인 것 중 하나라는 것이다. 마리의 시가 특징적인 것은 해당 모티브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비틀었다는 점이다. 오비디우스의 원전에서 퓌라모스와 티스베 사이의 사랑은 순수하고, 진지하며, 애절하다. 반면 이 이야기에서 묘사되는 두 인물 간의 사랑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다분히 피상적이고, 자기애적이며, 불륜 관계이다. 다시 말해 모티브의 원 출처는 '진정한 사랑의 숭고함'을 드러내지만, 이 이야기는 '사랑의 이름을 빌린 얄팍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물론 이것은 마리가 이 작품을 통해 주려고 한 감상일 뿐이다. 개인적인 감상과는 별개에 있다. 나에게 불륜 대상자들 간의 관계가 '진정한 사랑'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오직 해당 사건이 모든 관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심대하게 볼 뿐이다.)
생말로 지역에 두 기사가 살았다. 서로의 성은 이웃해 있었다. 둘 중 한 기사가 부인을 얻었다. 아름답고 예법에 밝은 여성이었다. 미혼인 기사는 역량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다.
이 둘은 사실 내연 관계에 있었다. 성이 마주보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소통이 가능했다. 부인이 침실에 서면 미혼인 기사와 마주보고 있을 수 있었다. 그 둘을 가로막는 것은 오직 높은 담 뿐이었다. 둘은 서로 물건을 던져서 주고받기도 했다. 만날 수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거칠 것이 없었다(부군 기혼 기사가 의심이 많은 성격이었기 때문에, 두 인물이 만날 수는 없었다고 묘사된다.)
그렇게 밤마다 일어나 연인을 만나던 나날이 이어지는데, 여기서 상황은 전환된다. 어느 날 부인은 침대에서 너무 자주 일어난다고 의심을 받는다. 이에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가 감미로워서 잠을 설치고 있다'는 식의 변명을 한다. 이 말을 들은 기혼 기사는 분노와 악의에 휩싸여 나이팅게일을 잡아죽이기로 결심한다(일반론적으로 보았을 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주석에서는 이미 이 나이팅게일이 내연남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아차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튿날부터 기혼 기사는 온 영지의 일꾼들을 모두 동원하여 나이팅게일을 잡는다. 그러고는 목을 꺾어서 죽이고 부인에게 던져버린다. 이에 부인은 경악하고 만다.
그녀는 연인에게 이 소식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로 글자를 수놓은 비단 조각에 나이팅게일의 시신을 싸서 미혼 기사에게 보낸다. 그러나 기사는 전령에게 모든 것을 듣고는 부인과의 사랑을 단념한다.
퓌라모스와 티스베의 사랑과는 다르게, 미혼 기사와 부인의 사랑은 역경을 뛰어넘어 이어질만큼 진실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밀롱』
이 작품에 등장하는 '소문 모티브' 역시 중요한 소재가 된다. 특정 인물에 대한 소문만을 듣고 그에 대한 사랑을 품는다는 모티브인데, 주석에 의하면 중세 문학 전반과 연관이 있다. 예컨대 제프리 초서의『캔터베리 이야기』에서 법률가의 이야기 부분이 이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다(시리아 술탄이 로마 황녀에 대한 소문만을 듣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구혼하는 전개가 있다. 참고로 로마 황제는 혼인의 조건으로 모든 시리아 국민의 가톨릭 개종을 내걸었다. 이후의 전개는 작품을 읽어보면 알 수 있으므로, 더 이야기 하지는 않겠다.)
남웨일스에는 밀롱이라는 유명한 기사가 있었다. 그에 대한 소문을 들은 한 귀족의 영애가 그와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진 그녀는 밀롱에게 전령을 보내 연락한다. 연애에 대하여 동의한다. 이후 그녀에게 연애를 승인한 증표로 반지를 전하라며 전령을 돌려보낸다. 이후 그들은 귀족 영애의 정원에서 밀회를 하게 된다.
아주 빈번하게 만났기 때문에 그녀는 아이를 가지게 된다. 혼인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이것이 적발될 시에는 모든 명예와 안녕을 잃게 된다(작중에서는 고문을 당하거나, 타국에 팔려 갈 거라고 염려하고 있다. 당시에 혼전순결을 위반하면 실제로 그런 처벌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주석에서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밀롱에게 이를 알|리며 한 가지 조언을 한다. 조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이가 태어난다면 노섬벌랜드에 거주 중인 나의 자매에게 데려가라. 그녀에게 데려간 아이가 본인의 자매 소생이고, 자매가 이로 인해 고통 받았다는 사실을 고하라. 아이가 아들이든 딸이든 반드시 성심껏 키워야 한다는 규칙 역시 고하라. 당신이 하사한 반지와 편지를 아이와 함께 보낼 것이니 그것을 잘 간직하게 하라."
이 계획에 따라 아이가 태어났을 때 반지, 편지 등과 함께 목표지로 보내지게 된다. 밀롱은 용병이 되어 고국을 떠난다. 남겨진 그의 연인은 한 부유한 영주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여담으로 이 부분에서 그녀는 새로 혼인하는 부군에게 자신이 숫처녀가 아닌 것을 들킬까 염려하기도 한다. 중세시대의 이야기들에서는 마치 숫처녀인지 아닌지가 확실히 분간이 되는 것처럼 묘사될 때가 많다.『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도 그런 이유로 브랑게네가 이졸데 내외의 첫날밤에 대리 신부로 들어간다.) 그 시점에 밀롱은 본국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돌아왔음을 은밀히 알|리기 위해 백조의 목에 편지를 묶어, 자기 수하의 견습기사를 통해 보낸다. 견습기사는 문지기에게 자신이 백조를 잡았다며, 이것을 영주 부인에게 후원을 받기 위한 선물로 하겠다는 거짓말을 한다. 우여곡절 끝에 견습기사는 (혼인으로 호칭이 바뀐) 영주 부인에게 백조를 선물로 바친다.
부인은 백조의 목에 묶인 편지를 보고 밀롱이 보냈음을 알아차린다. 그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밀롱은 여기서 백조를 통해 간접적으로 연락할 수 있는 방안을 전하고 있다. 그 방안이란 일단 백조를 잘 보살핀 뒤, 사흘 동안 굶기고 나서 풀어주면 본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때 편지를 묶어서 보내면 연락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무려 20년 동안 이런 식으로 연락해왔다(백조가 매번 그렇게 예측가능하게 움직인다는 점은 상당히 핍진성이 떨어지지만 넘기도록 하자. 그 전개를 제외하면 이야기가 성립될 수가 없다. 다만 "왜 하필 작은 새가 아니라, 덩치도 큰 백조를 전령으로 쓰는가? 적발되기 딱 좋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굉장히 핍진성 있다. 그 당시 남웨일스 지역에서는 귀족가의 백조 양식이 성행했다고 한다. 즉, 영주의 집에 백조가 수시로 드나들어도 그다지 의심을 살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라면 확실히 납득이 간다.)
한편, 부인의 자매가 키우던 아이 역시 20년이 흘러 성인이 되어 있었다(= 정식으로 기사 서임식을 받았다.) 아이는 이모에게 자신의 출생에 대해 들은 뒤, 기사로서 모험을 떠난다. 아이는, 아니 기사는 브르타뉴 지역에서 최고의 명예를 얻어 그 이름이 본국까지 닿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친부인 밀롱은 이 기사의 명예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와 대결하기 위해 브르타뉴로 떠난다.
부자는 몽셸미셸에서 만나 마창시합을 벌인다. 두 기사는 용맹하게 싸웠지만 아들 쪽이 승리한다(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대결하는 이 모티브는 11세기 무훈시『고르몽과 이장바르』에서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말을 다시 일으키면서 밀롱은 기사의 손에서 반지를 보게 된다. 자신이 연인에게 주었던, 또 아들을 보낼 때 보았던 그 반지 말이다. 그가 자신의 아들임을 직감한 밀롱은 기사에게 부친이 누구냐고 물었다. 기사는 자신의 아버지가 웨일스 출신의 밀롱이라고 대답한다. 이를 들은 밀롱은 당장 달려가 '네가 바로 내 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둘은 감동의 재회를 이룬다.
이후 기사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모든 사실을 전해듣고는 자신이 영주를 죽이고 부모 모두와 재회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그때 편지가 도착한다. 밀롱의 연인에게서 온 편지였다. 편지의 내용을 보니 그들에게는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그 내용은 자신의 부군이 그 사이에 이미 죽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그들은 웨일즈로 돌아가서 재회한다. 밀롱과 부인은 정식으로 혼인했고, 이 가족은 평생 단란하게 살았다고 한다.
『불행한 자』
마리는 이 래가『네 가지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왜 그런지를 이야기 해주겠다며 운을 뗀다(이 이야기를 통해서 래의 음악적 성격이 드러나기도 한다. 구전의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불행한 자』라고, 어떤 사람은『네 가지 슬픔』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이 작품이 정형화 된 것이 지어진 때에 비해 나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어쩌면 마리가 최초로 정형화 한 인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옛 낭트 지방에 한 귀부인이 있었다. 아름답고 명망 높은 인물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구애해왔다. 구애자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4인이 있었다. 그들은 각각 이 지방에서 가장 뛰어난 무용을 가진 기사들이었다. 부인은 그들 중 어떤 사람도 선택하지 않았다. 아니, 모두를 선택했다는 말이 더 가까울 듯 싶다. 그녀는 네 명의 기사에게 모두 사랑의 증표를 주고, 연인으로 삼는다. 그러나 기사들은 자신 이외의 다른 연인들이 더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얼마 뒤 귀부인이 사는 지역에서 마상시합이 열리게 된다. 본선 전야에 있었던 예비시합에서 기사들은 자신 외에 다른 기사들도 부인의 증표를 지닌 것을 보게 된다(이것으로 하여 어떠한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리는 이에 대해 아무런 전개도 이어나가지 않는다.) 네 명의 기사들은 모두 용맹하게 예비시합을 마치고 돌아간다.
이튿날 본선이 열렸을 때, 네 명의 기사는 같은 조로 배정된다(당시의 마상시합은 서로 조를 나눠서 수행했다. 후술하는 것처럼 실제로 사상자가 빈번하게 나오는 위험한 대회였다. 하지만 당시의 기사라면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명예로운 활동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본선에서 끝까지 용맹하게 싸웠다. 하지만 그 결과는 불행했다. 명예를 쟁취하는 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기사 넷 중 셋은 대회 중에 사망했고, 한 명만이 중상을 입은 채로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기사는 허벅지 중앙을 관통당하는 부상을 입었는데, 주석에 따르면 거세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해석된다.
자신이 사랑했던 기사 넷 중 셋이 죽고, 하나는 중상을 입었으니 부인은 실의에 빠진다. 그리하여 그들을 기리는 뜻에서 래를 한 편 짓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바로 도입부에 말한『네 가지 슬픔』이다. 하지만 이때 살아남은 기사가 제목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인이 실상 살아남은 자신이 아니라 죽은 세 기사에게 더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운명이 이렇게 비참하니 그 래의 제목은『불행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부인은 제안에 따라 제목을『불행한 자』로 바꾸었으나, 여전히 구전되는 과정에서『네 가지 슬픔』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리는 이를『불행한 자』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고 짚으며 이야기를 끝맺는다.
『인동덩굴』
서두에서도 이야기 했듯, 이 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설화의 일부를 담고 있다. 이졸데와의 밀회가 적발되어 추방당한 트리스탄이 몰래 잠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내가 읽은 판본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나는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가 정리한『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읽었다. 슈트라스부르크의 저작은 미완성이라고도 하니 다른 시인의 것에는 포함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나 같은 경우 슈트라스부르크보다 이전에 활동한 토마스 폰 브리타니아의 것은 읽지 않았다. 그런데 마리가 이것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다는 추정이 있다.)
콘월에서 추방된(이전 내용은『트리스탄과 이졸데』전체를 정리한 서사시 등을 참고하라) 트리스탄은 고향인 남웨일스로 돌아갔다(사실 이 부분도 슈트라스부르크의 판본과는 다르다. 그의 판본에서 트리스탄은 웨일스가 아니라 파르메니에라고 불리는 잉글랜드 본토 지방 출신이다.) 그는 고향에서 1년을 보냈으나, 결국은 그의 연인을 보기 위해 콘월로 돌아간다. 당연히 추방령이 있어서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위험했기 때문에 신분을 위장한다.
그렇게 현지인들과 섞여 지내던 도중 국왕의 회의 소집으로 인해 왕비가 한 숲을 지나간다는 것을 듣게 된다. 트리스탄은 날짜에 맞춰 그 숲에 잠입했다. 그러고는 나뭇가지를 꺾어서 글귀를 적어놓았다. 그 글귀에서는 자신과 이졸데 간의 관계를 인동덩굴과 개암나무에 비유하고 있다(주석에 따르면 이 두 식물은 공생관계라서 서로가 없으면 말라 죽는다고 한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제목이『인동덩굴』인 이유이다.
이졸데는 지나가다가 적힌 글을 알아보고는 마차의 행렬을 멈춘다. 주위에 트리스탄이 있음을 직감한 이졸데는 브랑게네에게 그를 찾아보라고 명령한다(브랑게네는 이졸데의 사촌동생이자 충신이다. 실은 이 설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의 묘약'과 관련된 사건이 그녀의 부주의로 인해 일어났다. 역시 자세한 내용은『트리스탄과 이졸데』전반을 정리한 판본들을 참고하라.) 브랑게네는 트리스탄을 찾았고, 마르케가 그를 추방한 일을 후회하고 있음을 전한다(마르케는 트리스탄의 삼촌이자 이졸데의 부군이다. 이 대목에서 후회하고 있다는 것은 그를 심증만으로 추방했다는 사실에 대해서인 듯하다. 슈트라스부르크의 판본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첫번째 추방을 당하지만, 이졸데와 같이 당한다. 두 인물은 재치를 발휘하여 다시 성으로 복귀하게 된다. 하지만 마리가 참고한 판본에서는 트리스탄만 추방되는 듯하다.)
그리하여 트리스탄은 그 기회에 다시 성에 복귀하게 된다. 그러고는 이 래를 지어 남겼다고 한다(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읽었던 판본에서는 후반부에 이졸데와의 불륜을 완전히 들키고는 트리스탄이 도주한다. 이 래는 첫번째 추방 부분까지만 반영한 듯하다. 상기한 전개가 어떻게 처리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엘리뒥』
마리의 언급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본래 (당대 기준으로도) 아주 오래된 전승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주석에서는 그것이 신빙성 있어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잉글랜드에 이주하기 이전의 켈트 문명에서부터 전승된 이야기로 추정된다고 한다. 거의『베오울프』와 비슷한 수준의 역사를 가진 구전 문학이라는 것이다.
또, 마리는 이 이야기 역시 제목이 구전되면서 바뀌었음을 짚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이 이야기하는『엘리뒥』이 그 제목이었으나, 이내『길드루엑과 길리아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주인공 엘리뒥보다 길드루엑과 길리아됭 간의 관계성이 더 중점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브르타뉴에 거주하는 기사 엘리뒥은 국왕의 충신이었다. 국왕은 그를 자신의 신하 중에도 특히 신뢰했다. 하지만 그에게만 특혜를 주니 다른 신하들이 엘리뒥을 모략하기 시작한다. 결국 국왕은 선동에 못 이겨 엘리뒥에게 추방령을 내린다. 그는 항변하려고 했으나 국왕은 어떤 것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몇 년 동안 국외에 나가 있기로 결심한다. 부인인 길드루엑은 걱정했으나 엘리뒥은 자신에 대해서 염려할 것이 없다고 당부하며 떠난다(그리고 이것이 복선이 된다.)
엘리뒥은 옆 나라 국왕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혼기가 찬 딸이 있었으나 인접 지역 영주에게 보내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그 영주가 왕국을 침략해와 현재 전쟁 중이라고 한다. 이를 듣고서 엘리뒥은 용병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곧바로 해당 왕국으로 향해서 용병이 된다. 이후 전술을 재정비 하여 대승을 거두어 큰 명예를 누리게 된다.
그런데 국왕의 딸인 길리아됭 공주가 그를 사랑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공주는 자신의 사랑을 전하고자 엘리뒥에게 다양한 선물들을 보낸다. 엘리뒥은 그것들을 받아보고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자신은 부인에게 신의를 지킨다고 약속했는데, 국외에서 이런 상황을 맞이한다면 어떻게 해야할지를 말이다. 고심 끝에 엘리뒥은 1년 간은 공주의 바람 대로 할 것이나, 이후에 자신은 다시 고국으로 떠난다고 말했다.
그렇게 연인으로서 보내던 찰나, 엘리뒥의 고국에서 한 서신이 날아든다. 브르타뉴의 국왕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이었다. 엘리뒥이 이전에 한 충성의 맹세를 바탕으로 국왕은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충성스러운 기사 엘리뒥은 결국 주군을 도우러 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국왕에게 자신의 고국으로 급히 돌아갈 일이 생겼다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한다. 후에 공주에게도 작별인사를 전하러 향한다. 그는 공주에게 곧 돌아오겠다고 말하고서는 고국으로 간다.
고국에 있던 부인은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곧장 마중을 나왔다. 하지만 그는 왜인지 줄곧 부인을 피했다. 그는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급히 일처리를 마쳤다. 할 일을 모두 마치자 곧바로 돌아가버렸다.
그는 돌아가서 공주와 사랑의 도피를 택하기로 한다. 자신의 충신들과 함께 배를 타고 다른 지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위험에 빠졌다. 게다가 공주는 혼절해버렸다. 이에 신하들은 부정한 일을 하려고 해서 신의 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화가 난 엘리뒥은 사공을 죽여버리고 자신이 배를 운전해 고향으로 향한다. 공주가 죽었다고 생각한 그는 그녀를 묻어주고자 성당으로 갔다. 그러고는 부인에게 돌아왔지만 피곤해서 곧바로 집까지 행군하지는 않겠다고 전령을 통해 알린다.
이런 상황이 며칠이나 이어지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부인은 전령을 보내 부군의 상황을 알아보게 한다. 그는 성당에서 울고 있었다. 부인은 결국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성당에 난입한다. 그렇게 모든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차린다. 엘리뒥은 애인의 존재 때문에 그간 자신에게 무심했던 것이고, 성당에서 울었던 것도 애인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하지만 부인은 분노하지 않는다. 오히려 약초를 통해 공주를 다시 살려낸다(사실 공주에게 분노한다고 하면 그것 역시 정당하지는 않다. 그녀는 엘리뒥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전혀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깨어난 공주에게 그간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엘리뒥이 모두(부인, 공주의 부왕, 공주를 전부 속인 셈이다)를 속이고 여기까지 왔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자신을 속인 것에 대해서는 용서해주기로 했다. 이후 엘리뒥에게 자신은 수녀가 되어 출가할 것이니 사랑을 이루라며 떠난다. 길드루엑이 떠난 뒤 엘리뒥과 길리아됭은 정식으로 혼인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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