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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정도에 걸쳐 「에티카」를 다 읽었다. 책 자체는 그리 두껍지 않지만 내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오래 걸렸다. 이해를 위해 스티븐 내들러의 「에티카를 읽는다」와 필립 아마도의 「스피노자의 에티카」의 도움을 얻었다. 두 책 모두 매우 큰 도움이 됐다. 


우선 스피노자의 세계관이 정말 내 마음에 들었다. 물질과 정신(사유, 관념)은 똑같은 존재의 양면이며, 모든 존재들은 대자연(대우주, 신)의 양태라는 가정이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인 철학은 대립하는 두 소재를 두고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심도 있게 논한다. 그러나 스피노자에게는 대립의 문제를 처음부터 회피한다. 개인적으로는 둘 다 의미가 있어보임에도 하나를 강요하는 철학들이 썩 맘에 들지 않았는데, 스피노자는 훌륭한 대안을 보여주었다. 스피노자가 자신의 세계관을 설명하며 제시한 특유의 체계도 인상적이었다.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제시한 '줄세우기'를 스피노자는 정말로 해냈다. 그가 3부에서 제시한 기하학적 심리학은 (현대 심리학에서의 입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재밌었다.


모든 원인의 시초는 자연이고, 이 무한한 연쇄를 파악하는 것이 삶과 우주에 대한 진정한 이해라는 그의 의견에 특히 공감한다. 유한한 우리는 세상에서 극히 일부를 봤을 뿐임에도 모든 인과를 파악해 대상을 이해했노라고 착각하고는 한다. 심지어는 우리가 끼어들어 세상의 이치를 바꾸고 만물을 지배할 힘이 있다는 오만한 생각에 젖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까지나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는 근원을 대체할 수 없다. 단지 근원을 지향하는 것으로 헛된 생각을 버려가며 생을 다듬을 수 있을 뿐이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충격적이었다. 나는 윤리를 '상호간의'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상대에게 호의를 베풀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든, 아니면 조건 없이 상대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든, 상대를 위해 좋은 일을 해주는 것이 윤리의 골자라고 생각했다. 「에티카」는 나의 뻔한 생각을 강하게 흔들었다. 결국 만물의 목적은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는 것이고, 그 지속을 위한 노력(코나투스)이 바로 덕이다. 덕은 남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다. 다만 '나를 위한 것'이라는 말은 단순한 감이 있다. 스피노자는 단순히 이기심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욕심이나 이기심 같은 것들은 외부 사물에 현혹되어 품게 되는 수동적인 감정이다. 이것들은 일시적으로 쾌락을 줄 수는 있지만 자신이 주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 근시안적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사람에게 이롭지 않다. 스피노자는 감정들로부터 멀어질 것을 권한다. 대상을 보고 수동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에서 벗어나, 원초적인 개념에서 시작해 스스로 내린 판단을 행동의 기준으로 삼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감정에서 멀어져 이성으로 돌아오라는 것이 스피노자의 주장이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크게 공감한다. 무언가에 취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면 거슬릴 것이 없겠지만, 자신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에 매달려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실수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인간의 삶은 훨씬 질이 높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 스피노자의 윤리학이 현실적이지는 않다고 본다. 인간의 이성을 앞세워 세상을 개선하려는 시도는 늘 있어왔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늘 실패해왔다. 프랑스 혁명의 이념은 나폴레옹과 함께 포화 속으로 뛰어들었고, 공산주의는 한계를 드러내다 못해 유사국가를 양산하는 이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간의 우(愚)는 스피노자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뿌리가 깊다고 본다. 그렇다면 결국 스피노자가 제시한 이성의 이상향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상향일 뿐이다.


마지막 5부는 다소 아리송했다. 돌연 영혼의 불멸에 대해 논하는데, 여태까지 몸과 영혼을 하나처럼 설명하다가 '몸이 죽어도 영혼은 남는다.'라는 식의 설명이 나오니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내 나름대로는 이렇게 해석했다. '죽음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영혼은 죽음을 통해 자연 전체의 영혼에 완전히 귀속된다.' 다만 이렇게 생각한다면 자연 자체가 아니라 자연의 양태로서, 즉 사람으로서 살 때 자신을 완성하는 일에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결국 그 안으로 들어가 전체의 지혜를 얻을 것이라면, 지금을 살며 얻는 지혜도 일순간의 것으로서 큰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단 스피노자가 자기 이론에 생길 수 있는 이 커다란 구멍을 몰랐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무언가 놓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이렇듯 「에티카」를 읽고 많은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내 지식에 뚫린 수많은 구멍들을 발견하게 됐다. 어찌됐건 나는 '더 나은 삶'을 늘 갈망한다. 이 갈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식의 구멍들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나의 완전성을 높이기 위해 지성을 교정하고 원초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러면 나의 노력은 덕으로 돌아올 것이다. 「에티카」를 통해 나는 이렇게 확신하게 됐다.


「에티카」는 정말 신비한 체험이었다. 지금은 다른 책을 읽을 차례가 왔기에 잠시 내려놓아야겠지만, 이 책은 평생 내 책꽂이에 꽂아둘 것이다. 다음에 「에티카」를 읽게 되면 더 정확한 앎을 얻고 더 올바른 글을 쓸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바란다. 솔직히 몇 번을 읽어도 직관과 다른 내용이 많아 어려울 것 같기는 하지만, 분명 가치 있는 도전이 되리라 믿는다. "모든 고귀한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드물다."라고 스피노자도 말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