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지하란 개연성과 인과성에 기초한 모든 논리와 맥락에 반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무중력의 시공간이다. 여기서 지하 인간은 사회와 개인, 전체성과 개별성, 몽상과 환멸, 꿈과 현실, 이성과 욕망, 합리와 부조리, 상식과 광기의 경계를 오가며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성의 요소를 찾으려 한다. 그리고 그는 본질적으로 무정형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욕망과 자유의지를, 나아가 자연 법칙에 대한 부조리한 반항(치통!)을 찬미한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떤 이익도 주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억지로 지어낸 가짜일 수도 있지만, 세계로부터 나에게 폭력적으로 주어진 ‘2×2=4’와는 달리, 내가 의식하고 내가 창조한 세계이다. 그것이 또한, 우리 내부에 깃들어 있는 침침하고 눅눅한 지하이기도 하다. 지하 인간은 지하가 비참하다는 것을 또렷이 의식할수록 더더욱 지하에 침몰한다. 지하는 ‘책에 따라 말하는(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그러고 싶지도 않은 그의 실존이기 때문이다.
-알라딘 eBook <지하로부터의 수기>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중에서
세계로부터 나에게 폭력적으로 주어진 ~ 이라는 구절이 정말 좋은거같습니다
비록 본문 뒤에 딸린 짧은 해석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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