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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녀를 좇다.
- 소녀를 좇다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갑자기 ‘소녀’가 카프카의 앞에 나타난다.
엘리베이터를 아래로 내려보내고 문의 초인종을 누른다.
그러면 소녀가 문을 열고 나는 인사를 한다.
<상인> 중
이제 이야기는 카프카의 자아성찰기에서, 소녀관찰기로 넘어간다.
그런데 왜 하필 ‘소녀’일까?
그 첫 번째 이유는 ‘소녀’가 가진 순진무구함 때문이다.
- <멍하니 밖을 내다보다>
지금 다가오는 이 봄날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오늘 아침 하늘은 잿빛이었다.
그런데 이제 창가에 가보면, 깜짝 놀라서 창문 손잡이에 볼을 기댄다.
아래엔 분명 벌써 지고 있는 태양 빛이, 주위를 둘러보며 걷고 있는 순진한 소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고, 그리고 바로 연이어 그 소녀의 뒤를 급히 따라가고 있는 한 남자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러고 나서 그 남자는 벌써 지나가 버렸고, 그 어린아이의 얼굴은 아주 밝다.
<멍하니 밖을 내다보다> 전문
밖을 내다보다 순진한 소녀와, 그 소녀에 다가가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카프카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되는데.
이는 당연하게도 소녀를 탐하려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의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소녀는 그런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았고,
밝은 얼굴로 당당히 서 있다.
소녀를 탐한 것은, 그 남자가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사실에 충격받았을 카프카는
자신 또한 ‘순수’해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 <집으로 가는 길>
뇌우가 지난 후 대기의 확실한 힘을 보라.
나의 여러 가지 공적들이 뇌리에 나타나서는 거역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압도해온다.
나는 행진을 한다.
그리고 나의 속도는 이 골목길 한쪽의 속도이고,
즉 이 골목길의, 이 지역의 속도이다.
<집으로 가는 길> 중
해당 작품에서는 자신의 ‘여러 가지 공적들’,
즉 앞선 소설에서 드러났던 것을 포함해 과거의 일들이 압도해온다는 느낌을 받으며.
마치 무도회의 소녀처럼, 주위에 속도에 맞춰 카프카는 행진한다.
나는 나의 미래보다도 나의 과거를 더 높이 평가하지만,
양자가 다 휼륭해서 우열을 가릴 수가 없으며,
나에게 그렇게 은혜를 베풀고 있는 신의 섭리가 불공평함을 단지 탓할 뿐이다.
<집으로 가는 길> 중
그래서인지 엄청난 자신감을 보여준다.
여기서 카프카가 ‘나의 미래’보다 ‘나의 과거’를 더 높이 평가한다는 건,
<독신자의 불행>과 <상인>에서 보여줬던, 독신자로서의 미래 생활보다 자신의 과거
즉 소녀같았을 때의 어린 자신을 더 높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프카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
‘양자가 다 훌륭해서 우열을 가릴 수가 없’고
‘신의 섭리가 불공평함을 단지 탓할 뿐’이라는 굉장히 나르시시스트적이고,
소녀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카프카의 소설 답게 이런 행적은 결국 좌절로 이어진다.
방에 들어오면서 나는 조금 생각에 잠긴다.
그렇다고 층계를 올라오는 동안에 무언가 숙고할 만한 것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창을 활짝 여는 일도 그리고 어느 정원에서인가 아직 음악이 연주되고 있는 것도 나에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집으로 가는 길> 중
방으로 돌아오면서, 자신과 대면하게 되자.
카프카는 소녀같은 행태를 하는 자신에게 묘한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창을 활짝 여는 일’이나 ‘음악이 연주되고 있는 것’으론 이런 기분을 떨쳐낼 수 없다.
-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밤에 골목길을 산책하고 있을 때, 멀리에서부터 한 남자가 보였고—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 앞의 골목길은 오르막길이었고 마침 보름달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우리 쪽으로 달려올 때,
비록 그가 약하거나 누더기를 입고 있더라도, 누군가 그를 쫓아와 소리를 지르더라도,
우리는 그를 붙잡지 않고, 그가 가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중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소녀’의 테마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더라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 지 아무것도 모르기에
자신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그냥 스쳐지나가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이와 유사한 상황을 <멍하니 밖을 바라보다>에서 만났었다.
소녀의 옆에 한 남자가 스쳐 지나가는 상황.
그러니 이 소설의 의미는 카프카가 소녀가 가진 순수함이라는 자질을
자기 마음대로 곡해한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마침 밤이고, 그리고 우리 앞 골목길이 보름달 속에 오르막길이었기 때문이고,
거기다가 아마도 이 두 사람은 그들 대화에 열중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마 두 사람이 제삼자를 쫓고 있기 땨문일지도 모르며, 첫 번째 사람이 죄 없이 쫓길지도 모르며, 두 번째 사람이 살인을 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르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살인 공범이 될 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지도 모르며, 그래서 단지 각자 자신의 침대를 향해 달리고 있는지도 모르며, 아마도 그들은 몽유병 환자일지도 모르며, 첫 번째 사람은 무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중
잡념이나 걱정 없이 ‘순수’를 유지하는 소녀의 모습을,
여러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생각해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치환해놓은 것이다.
피곤해해서는 안 되는데도, 기어코 우리는 그렇게도 많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던가.
두 번째 사람마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우리는 즐거웠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중
피곤해해서는 안된다. 천진난만한 소녀가 되어야 하기에.
그러나 ‘그렇게도 많은 포도주’를 마셔버린, 그러니까 나이를 먹어버렸기에,
타인이 사라지고, 아는 사람들 간의 친근감만 남을 때,
그러니까 미지와 대면할 필요가 없을 때 가장 즐거워지게 된다.
- <승객>
나는 전차 승강장 위에 서 있다.
이 세계에서, 이 도시에서, 나의 가족에게서 나의 처지를 되돌아볼 때
나는 정말 불확실하다.
(중략)
전차가 정류장으로 다가온다.
한 소녀가 내리려고 계단 가까이에 선다.
마치 그녀는 내가 만져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확실하게 보인다.
<승객> 중
카프카적 주체는 언제나 타인과의 거리감을 느낀다.
자신이 ‘불확실한’위치에 서 있다고 말하며
카프카는 전차 위에서 사색하다, 전차는 정류장으로 다가오고,
한 소녀가 나타난다.
카프카는 그 모습을 마치 ‘만져보기라도 한 것처럼’ 관찰한다.
여기서 등장한 소녀는 카프카가
자신과 동류라고 생각하는 존재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느꼈던 카프카,
그는 <승객> 즉 다른 어디선가 온 이방인인 소녀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그녀를 세밀히 관찰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당시 나는 이렇게 자문했다.
어떻게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며,
입을 다물고 전혀 그와 같은 것을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수 있는가?
<승객> 중
지금까지의 내용을 한번 정리해보자면,
<멍하니 밖을 바라보다>에서는 소녀를 탐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를 없애기 위해 소녀처럼 되기 위해서 <집으로 가는 길>에 행진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없음을 서서히 깨닫게 되고,
진짜 자신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 등장한 염세적인 모습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카프카는 소녀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의 위치가, 타인과의 관계가.
그리고 카프카는 깨닫는다.
그녀들이 똑같은 존재이길 강요당한다는 것을.
그래서 불안을 느끼지 못하고, 시선을 감내한다는 것을
- <옷>
종종 나는 다양한 주름과 접힌 주름살 그리고 여러 가지 장식이 달린 옷이
아름다운 몸에 보기 좋게 감겨 있는 경우를 보게 될 때면, 그것들이 오랫동안 이렇게 있지는 않겠지,
구김살이 생겨 더 이상 똑바로 펴지지 않고 먼지가 묻어 장식품 깊이 박혀 털지도 못하겠지 하고 생각한다.
(중략)
그러나 나는 정말 아름답고 그리고 여러 가지 매력적인 근육과 관절을 지니고 있으며,
팽팽한 살갗과 가느다란 머릿결을 지닌 소녀를 본다.
그것도 날마다 이렇듯 자연스러운 무도회 드레스를 입고서 나타나며,
언제나 똑같은 손바닥에 똑같은 얼굴을 대고 자기의 손거울에 비춰 보고 있는 그녀를 본다.
<옷> 중
그녀들의 옷과 몸은 표면적으로는 항상 똑같아 보인다.
날마다 ‘자연스러운 무도회 드레스를 입고서 나타나’고
‘언제나 똑같은 손바닥에 똑같은 얼굴을 대고’ 있으니.
그러나 사실, ‘옷’은 계속 부패해가고 있다.
단지 저녁 늦게 그녀들이 축제로부터 돌아올 때면 이따금 그들은
거울 속에서 이제 낡아빠지고, 부풀어 오르고, 먼지투성이가 된,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졌으니 이제 거의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되어버린 옷을 보게 될 것이다.
<옷> 중
간단히 말하면, 그녀들의 옷은 점차 식상해지고 만다.
그녀들은 계속 동일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진짜 동일한 존재로 남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계속 달라져야만 한다.
- <거부>
굴레 속에 빠진 그녀들과 카프카는 대화를 시도한다.
물론 이 단편집의 제목이 대화가 아니라 ‘관찰’이듯, 내적 독백의 형식으로 말이다.
참고로 이런 내적 독백이 등장하는 소설이
첫 소설인 <국도의 아이들>, ‘자아’파트의 마지막 소설인 <상인>
그리고 똑같이 ‘소녀’파트의 마지막 소설인 <거부>, 마지막으로
‘해방’ 파트의 마지막 소설인 <불행>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
내가 이런 식으로 소설을 테마로 나눈 이유가 더욱 납득이 갈 것이다.
그럼 바로 ‘소녀’ 파트의 마지막 작품, <거부>로 들어가보자.
내가 어떤 아름다운 소녀를 만나서 그녀에게 “함께 가지 않겠니?”하고 청했는데도,
그녀가 무심코 지나쳐버린다면,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명성이 자자한 공작도 아니고, 인디언과 같은 체격에 수평으로 붙은 눈, 잔디밭 공기와 그것을 관통해 흐르는 시냇물 공기로 마사지한 피부를 지니고 있는 미국인도 아니며, 당신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거대한 대양을 여행해본 적도 없지요. 그러니까 어여쁜 소녀인 내가 무엇 때문에 당신과 함께 가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거부> 중
자신의 초라함을 소녀의 말(이지만 사실 카프카인…)로써 성찰하며, <거부>는 시작된다.
“당신은 잊고 있어요. 당신은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에 앉아 있지도 않고, 꼭 맞는 옷을 입고서 당신을 추종하는 무리도 보이지 않아요. 당신을 위해 축복의 말을 중얼대며 정확한 반원을 그리면서 당신의 뒤를 따르는 자들 말이에요. 당신의 가슴은 코르셋으로 알맞게 감싸여 있지만 당신의 다리나 허리는 모든 절제를 보충해주고도 남아요. 당시은 지난 가을에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듯이, 주름 잡힌 호박단 옷을 입고 있군요. 하지만 당신은—이렇듯 생명에 위험한 것을 몸에 걸친 채—때때로 미소를 짓고 있다니.”
<거부> 중
당장 아무런 지위(‘거리를 달리는 자동차’, ‘꼭 맞는 옷을 입고서 당신을 추종하는 무리’)가 없음에도
‘주름 잡힌 호박단 옷’, 즉 ‘생명에 위험한 것’을 몸에 걸친 채 미소를 짓는 모습이 카프카는 이상해 보인다.
결국 타인에게 보여져 그 가치가 낮아질 것이 분명함에도,
언제나 순수를 표방하며 불안을 지우고 치장한 상태로 미소를 짓는 그녀들
카프카는 그녀들처럼 되어보려 했지만, 결국 <거부>당한다.
“그래요. 우리는 둘 다 옳아요. 우리가 그런 것을 너무 잘 알게 되어 어찌할 수 없는 처지가 되지 않도록, 정말 각자 홀로 집으로 가는 것이 더 낫겠어요.”
<거부> 중
자신의 자아를 성찰해봤지만 결말은 결국 원점,
소녀라는 순수의 대상을 따라가봤지만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카프카는 이제 전혀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들에서 ‘해방’될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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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있습니다. - dc App
흥미롭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