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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PC방 요금제나 단골 술집 소주 가격 말고) 제대로 된 실물경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다름 아닌 금 가격이었다. 물론 금이 비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체중 만큼의 금만 있다면 몇 대가 부자 소리를 들으면서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 없는데 그 동안 금 가격이 5배 넘게 올랐다는 점을 생각하면 꽤나 재밌는 사실이다. 학창 시절 배웠던 대로 금은 전자공학이나 화학 분야에서 어느 정도 도움을 주긴하지만, 지금 당장 사라진다고 해도 현실 세계는 여전히 잘 돌아갈 것이 틀림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의 착상이 시작된다. 세상에 있으나 없으나 매 한 가지인 광물을 위해 이렇게나 엄청난 노력을 들이다니?(미국 유타주 코르테즈 광산에서는 골드바 표준중량인 12.4kg을 만들기 위해 5,000톤의 흙을 파내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 우리 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물질은 무엇이고, 이 물질들을 채굴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나는 답을 알고난 뒤에야 생각했기 때문에 공평한 언사는 아니지만) 나 또한 저자처럼 강철Iron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 온 세대인만큼 석유Oil가 거의 동시에 떠올랐고,(대왕고래 프로젝트를 공표한지 1년이 훌쩍 넘었지만 내 고향 포항은 아직도 제철, 제강의 도시다, 산유국의 꿈은 아직도 요원하다) 코로나 시절 2차전지 관련주 주가 추이를 열심히 공부했던 가락으로 원자재 공급 이슈로 급등했던 기억에 리튬Lithium은 어찌어찌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반도체의 차이, 팹리스와 파운드리의 차이 정도는 기초 상식 급으로 취급하는 세태에 밀려 규소(책에서는 모래Sand)까지도. 나머지 둘인 구리Copper와 소금Salt는 나 아닌 다른 예비독자들에게도 쉬운 문제가 아니었으리라. 사실 구리는 보자마자 전기회로까지 생각했지만 물질세계에서 소금이 해내는 다재다능함은 정말이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예로부터 생명의 물질이라 불렸던 소금이 말 그대로의 소금NaCl으로 하는 일 뿐만 아니라 위생과 제약분야에서 해내는 놀라운 일들, 이를 테면 우리집 주방에 있는 베이킹소다, 락스, 배수관부터 TSMC의 클린룸에서 소금이 해내는 모든 일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작업도 항상 재밌지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들이 큰 틀에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조망해주는 순간은 언제나 예술적이다.
선사시대 유적부터 과거 조세 제도, 과학사에서 놀라운 발견의 순간들을 종횡무진하는 저자의 필치가 훌륭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저 관심뿐이 아니라 필자가 직접 세계 이곳저곳을 방문했다는 점이다. 금의 효용가치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자마자 촬영팀을 제작해 미국으로 떠나기 시작해서 독일의 베셀링 정유공장, 영국의 로칼린 모래광상, 사우디 가와르 유정,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 등등, 이 짧은 글에서는 다 언급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곳을 굳이 두 발로 직접 찾아간다. (아마 평생을 비물질의 세계에서 일해왔던 저자의 경력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저자의 수고에 바로 따라오는 설득력과 현장감은 물론이고, 현장에서 만나는 인물들의 설명을 직접 듣는 듯한 생동감까지 느낄 수 있다. (자리에 없는 사람 얘기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이런 태도는 바츨라프 스밀의 책에선 단 한 번도 찾아보지 못한 장점이다.(참고로 이 책의 말미에 있는 참고문헌 꼭지의 도입부에서 저자는 “물질세계의 정수를 담은 지식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바틀라프 스밍일 것이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스밀의 책이 항상 흥미로운 주제 선택에 비해 숫자 자체에만 과몰입한다는 점이 아쉬웠다면, 에드 콘웨이의 책은 그 대척점에 있다.(참고로 저자는 그 또한 숫자에 대해 말하지만, 그 출처가 책상머리에 앉은 비전문가가 아니라 물질세계 동시대 현장의 전문가의 입을 빌려 복화술을 하는 것 같다. 복화술자를 보이지도 않게 할 뿐 아니라, 전혀 궁금하게 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에드 콘웨이는 교양서 저자로서 굉장한 특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 한 번 자리에 없는 사람 얘기를 하자면) 이 사람이 쓴 어떤 책을 읽더라도 머리숱보다 수염이 더 풍성한, 때로는 심하게 진정대고 보통은 넘치도록 유쾌한 백인 할아버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에서 빌 브라이슨과도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할 만하다. (참고로 이 책의 저자 에드 콘웨이는 깔끔한 인상의 금융계 종사자가 떠로는 외모를 가졌다)
사실 벌써 2년 전인 발간 당시부터 이 책에 큰 관심을 가졌고 실제로 서점에서 몇 번이나 펼쳐 봤지만 쉽사리 첫 장을 펼치지 못했다. 600쪽이라는 분량이 감당 벅찬 육중한 체구로 느껴졌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고, (실제로 수많은 다른 책과 같이 읽었음에도 완독까지 불과 3주를 넘기지 않았다) 오히려 “6가지 물질이 그려내는 인류 문명의 대서사시”를 겨우 600쪽에 다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기우가 더 컸다. 하지만 저자는 피상적인 스케치에 머무르지 않고 세밀함에서도 뒤지지 않는 대작을 완성시켰다. 이는 전술한 저자의 성실함과 더불어, 각 물질에 3개의 장과 일정한 분량을 부여하는 영리한 전략 덕택인 듯하다.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는 두 세기 전 철학자의 유명한 어록은 잠시 미뤄두고,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오래된 속담을 밀어넣어 본다. 공급망이 제대로 작동해, 물질이 지구의 한쪽에서 다른 어느 쪽으로 자유롭게 유통되던 시절에는 물건의 산지나 유통 과정에 다들(물론 나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나 무역분쟁 그리고 무엇보다 전 세계를 휩쓴 전염병 때문에 이런 공급망이 붕괴되자 물질 세계는 급속도로 최우선 사안이 되었다.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으며 흔하다고 생각했던 물질이 실은 우리 착각 속에서만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은 엄청났다. 그 여진이 입힌 피해가 여전한데도 (각자가 속한 세계의 가장 유망한 독재자 유망주인) 두 지도자들은 물질과 에너지 자급자족이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목표인 것처럼 행동한다. 미중 무역분쟁, 우러 전쟁, 이란-이스라엘-미국 분쟁이 여전한 가운데 이 책이 주는 울림은 도드라진다. 다 읽고 난 후 물질세계의 지도를 살펴보면, 전 세계적 연결과 의존의 그물망은 너무나 복잡하여 결코 그것을 해체하거나 리모델링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이 명징해 보인다. 이상할 정도로 상찬하는 이 글의 후반부를 나조차도 수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에드 콘웨이의 다음 책을 즐겁게 기다리겠다는 다짐과 함께 짧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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