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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고백 하나 하자면 나는 아직 성관계를 해본 적이 없다. 나이 30이 다 되도록 경험 한번 없을 수가 있다니. 진짜 이 정도면 인터넷에 떠도는 말들처럼 마법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닌가싶다. 일부러 여자친구를 안 사귀고 연애를 기피한 건 아닌데, 살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다. 세상에! 아무튼. 서른 노총각의 시선으로 이런 베드신이 많은 영화, 예컨대 셰임과 러브호텔, 혹은 성관계에 대한 묘사가 자주 나오는 소설, 예컨대 노르웨이의 숲이나 서울의달빛 0장, 이런 영화나 소설들을 볼때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과연 섹스라는 게 매체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그렇게나 황홀하고 기분이 좋을까? 이건 정말 단순하고 순수한 질문이다. 난 한번도 안해봤으니까. 물론 연애도 마찬가지이고. 난 로맨스 코미디나 멜로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당연하게도 1도 공감이 안되기 때문이다. 타인과 연애를 하거나 성관계를 한다는 건 무슨 의미를 가질까? 난 늘 그것이 궁금했다.

우선 셰임에 대해 얘기해보자. 셰임을 보고 느낀 건 묘하게 김승옥 작가의 소설인 '서울의달빛 0장'과 닮았다는 점이었다. 영화가 중점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건 물론 브랜든의 성관계가 아니라, 그의 공허함일것이다. 이 점이 소설과는 다르다. 소설은 셰임의 공허함과는 거리가 있다. 무자비한 사회와 세속적인 인간들, 그 과정에서 파괴되는 부부 관계와 성착취의 순간의 포착이 소설의 주요 테마이며 은근히?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점도 있다. 다만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브랜든의 베드신이 아니라 브랜든이 달리는 순간이다. 이는 소설에도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그 여자를 위해서 어디론가 마냥 달리고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달리고 있는 몸에 썩은 감정들이 달라붙은 자리는 없을 것이다.

무진기행(김승옥, 민음사, 서울의달빛 0장 중 383p)

이런 문장들. 호오, 이건 정말 흥미롭다. 2013년에 개봉한(그것도 해외에서!) 영화에서 1977년에 쓰여진 한국 소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니. 아무튼. 영화에서 나오는 브랜든의 러닝씬도 위 문장과 비슷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동생이 자신의 보스와 성관계를 하고 있을 때 이를 견디지 못한 브랜든은 옷을 갈아입고 도시를 뛰어다닌다. 또 흥미로운 지점. 이전 러닝을 위해 갈아입은 옷 그대로 다시 집을 나온 브랜든은 이번엔 러닝을 하지 않고 처음 보는 여자와 남편에게 성희롱을 하고 이후 도시 곳곳에 있는 사창가를 누비며 성관계를 한다. 그러니까, '달리기'가 마치 위 문장처럼,

'썩은 감정들이 달라붙을 자리를 사라지게 하는 행위'로 동작한다면 '성관계'는 '썩은 감정들이 달라붙을 자리를 만드는 행위'로 동작한다. 실제로, 영화에서의 브랜든의 성관계는, 마치 하루키의 성관계가 소통과 화해의 몸짓이라면, 소통의 부재를 만들어내는 행위이며 파괴와 자해의 행위로 동작한다. 브랜든은 아무하고나 성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누구와도 소통을 할 수 없다. 마지막. 엔딩에 이르면 브랜든은 도시를 배경으로 브랜든이 걸어온다. 브랜든은 비명을 지르지만 소리 지를 수 없다. 이내 그는 무너진다. 그가 소리 지를 수 있는 공간은 마치 사창가와 창녀들의 성관계에서만이 허락된 것처럼. 그는 도시에 있지만 도시에서 추방된 사람이다. 그에게 허락된 건 단발적인 쾌락 뿐이다. 그는 치료된 바이러스처럼 보인다. 그가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은 사창가와 그의 집 뿐이다. 그 바이러스는 외부로 빠져나갈 수 없으며 오직 폐쇄된 내부만을 떠돌다 사라진다.

이제 소마이 신지의 러브 호텔. 아, 소마이 신지의 영화는 태풍클럽(1985) 이후로 두번째인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소마이 신지의 롱테이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보여준다. 왜지? 같은 롱테이크이지만 유독 소마이의 롱테이크는 다르다. 무엇이 다를까,를 계속 생각해보지만 모르겠다.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아무튼...

셰임의 성관계가 파괴와 고갈의 몸짓이었다면 러브 호텔의 성관계는 어느정도의 치유와 화해의 분위기를 지닌다. 야쿠자에게 돈을 빌려서 아내를 잃은 주인공과(사실 아내를 잃었다기보다는 아내가 겁탈당하는 걸 무력하게 보고 있어야 했음) 유부남에게 버림 받은 나미?였나 유미였나 아무튼...... 이 두 사람의 치유가 영화의 목표다. 실제로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무라키와 나미는 성관계를 맺음으로써 치유 아닌 치유가 되는것처럼 보인다. 내가 이렇게 쓰는 이유는 사실 별 설득이 안되기 때문이다(나에게는). 근데 워낙 이 영화가 B급 감성이기도 하고 연출도 훌륭하냐고 하면 그닥... 잘 만든 AV 영화를 보는 것 같달까. 아무튼... 이건 내가 실제로 30살 넘은 모쏠아다라서 그런 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러브 호텔'의 훌륭한 점은, 성관계의 역동성, 그러니까 육체의 역동성을 훌륭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태풍클럽을 볼 때에도 느꼈던거지만 소마이의 롱테이크는 생명들의 지속성을 담아내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셰임과 비교하자면, 셰임의 베드신이 그다지 에로틱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어떤 쾌락이나 관능적인 베드신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자해를 하는듯한 가학성이 함께 담겨있기 때문인데, 이에 반해 러브 호텔의 베드신은 에로틱하다. 육체의 역동성. 육체의 저항성. 어떠한 힘에 반하는 움직임들이 이 영화에 훌륭히 표현되어 있다.

물론 이 영화가 정말 '상처받은 우리를 섹스로써 치유해봅시다!' 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나서도 그런 생각이 들기보다는, 뭐랄까, 뭐 이런 영화가 다 있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 아무튼... 소마이 신지 특유의 생명력 넘치는 쇼트와 테이크를 보고 싶다면 추천하는 영화다. 그리고 의외로 베드신은 많이 나오진 않는다. 횟수는 적은데 수위가 매우 높긴 하다.

그리고 서울의달빛 0장. 사실 나는 무진기행보다 서울의달빛 0장을 더 좋아한다. 김승옥 소설 전반에 깔려있는 삐뚤어진 성적 관념과 에로스가 이 소설에 전부 담겨있달까. 어찌됐건 김승옥 소설에서의 '여성'은 성기로써의 상징에 다름아니니까.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김승옥 소설을 좋아하진 않을 것 같다. 아무튼. 내가 김승옥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급격한 산업화로 인간성이 상실되어가는 '서울'을 잘 묘사해서이며, 마치 그 서울처럼, 그의 소설은 모더니즘적인 특징과 이른 바 옛소설 특유의 '서사가 있어야 한다'라는 강박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승옥이라는 인간 자체가 '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는 '서울'의 인간화 같달까. 그래서 김승옥의 소설은 묘하게 세련되었지만, 묘하게 천박한 느낌도 든다. 그리고 서울의달빛 0장은 매우 천박한 소설이다.

갖가지 친구들의 충고. 그러니까 일찍일찍 하나라도 많이 주워 먹는 거야. 여편네는 어차피 처녀가 아닐 테니까.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수 있니? 자기가 터뜨린 처녀가 하나만 있어도 좋아. 여편네 생각하고 화가 날 때 나도 처녀 하나 먹었으니까 하면 되니까. 많이 먹을수록 좋아. 그 기억만으로 충분히 위로 받을 수 있어.

p.371

당장에 이런 문장만 봐도 이 소설이 얼마나 천박한지는... 말을 아끼겠다. 지금 이런 소설이 나왔다가는 난리가 났을텐데.

그럼에도 난 이 소설이 좋다. 가끔씩은 마치 영화 마스터(2012, 폴 토마스 앤더슨)의 한 장면처럼, 모든 사람들이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니까 남성은 고환과 요도로서 존재하고, 여성은 음부로서만 존재하는, 마치 남성과 여성이 성기와 성욕의 상징으로만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소설이 특히 그런데, 이 소설에서 남성과 여성은 성기로서 존재하는 존재이다. 흔히 인문 소설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위대함이라거나 고난을 극복하는 힘! 이런 건 서울의달빛 0장에선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세속적이고 타락한 무언가로서 존재할 뿐. 마치 태어난 이유가 성관계를 맺기 위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달까. 아무튼 이 소설에선 인간을 그만큼 아래로 격하시키는 힘이 있다.

사실 뭐 셰임이니 러브호텔이니 소설이니 주절주절 떠들어댔지만 이 글을 쓴 이유는 나도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풋풋한 성관계와 성행위를 하고 싶어서 쓴거다. 살면서 이런 감정이 든 건 몇 년 된 것 같은데, 아직 연애를 하지 못하고 있다. 아, 나도 언젠간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이상 30살모쏠아다의 투정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