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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해방과 순환 구조
- 해방을 향한 필사적인 몸부림
자아를 탐구하지만 실패하고, 소녀를 관찰하지만 실패한다.
이 두 실패는 해방을 향한 발걸음으로 연결된다.
두 실패의 공통적 원인은, 일체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는 동시에 공존할 수 없고, 하나로 수렴할 수도 없다.
소녀 또한 가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따라잡을 수 없는 순수를 가진,
카프카와는 너무 동떨어진 존재이다.
그래서 카프카는 일체화가 가능한 것은 자신의 움직임뿐이라는 결과에 도달한다.
- <남자 기수들을 위한 숙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경마에서 일 위가 되고자 하는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남자 기수들을 위한 숙고> 중
해방 파트의 첫 소설인 <남자 기수들을 위한 숙고>는 경마를 완전히 해체하는 소설이다.
카프카는 경마의 우스꽝스러움을 하나 둘 나열한다.
많은 우리 친구들은 서둘러 이익금을 찾으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창구로부터 어깨 너머로 우리에게 환호를 보낸다. 하지만 가장 좋은 친구들은 우리들 말에 결코 건 적이 없는데, 그 이유는 내기에 잃고서 우리들을 원망하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 말이 일 위를 해서 그들이 돈을 하나도 벌지 못하고 우리가 옆을 지나칠 때면, 그들은 몸을 돌려 관람석을 죽 쳐다본다.
<남자 기수들을 위한 숙고> 중
‘많은 우리 친구들’이든 ‘가장 좋은 친구들’이든, 누군가는 자신과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많은 부인들에게 우승자는 우스꽝스럽게 보이는데, 그 이유는 그가 뽐내면서도 계쏙되는 악수 세례, 축하, 눈앞의 인사와 그리고 멀리 인사를 보내는 일에 어찌할 바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패자들은 입을 다문 채 대부분 흥흥대고 있는 말들의 목덜미를 가볍게 토닥거리고 있다.
<남자 기수들을 위한 숙고> 중
우승자는 타인을 위해서 인사를 하는 일에 열중해, 기쁘다는 것을 드러내는데 바쁘고, 반대로 패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
말과 그 말을 탄 기수에게 자신의 돈을 거는, 대리 배틀인 경마의 특성상
일등이 되더라도, 그 일등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한 지방의 일등 기수로 인정받는 영예는 오케스트라가 시작될 때 처럼 너무 기뻐서 다음 날 아침에도 아무 후회 없을 정도의 일이다.
<남자 기수들을 위한 숙고>
자신이 기쁜 게 아니라, 그 영예가 기쁘게 만들어줄 뿐이다.
이 모든 사항들을 종합하면 나오는 것은,
가족이 돈을 건, 남자 기수로서의 카프카이다.
교활하고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경쟁자들의 질투심이 사람들로 좁게 빙 둘러싸여 있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우리는 그 사이를 뚫고 수평선 주변에 작게 몇 트랙을 앞질러 달리고 있는 기수들 사이에 난 텅 빈 평지를 향하여 달려간다.
(중략)
마침내 찌푸린 하늘에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남자 기수들을 위한 숙고>
고통스러운 경쟁의 끝, 찌푸린 얼굴에선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 <골목길로 난 창>
고독하게 혼자 살면서도 때로는 어디엔가 관계를 갖고 싶어 하는 자,
하루 시간의 변화나 날씨의 변화, 직업 관계의 변화 또는 그와 같은 것들을 참작해서 그저 매달릴 수 있는 어떤 팔이라도 보고 싶어하는 자는 골목길로 난 창문 없이는 도저히 오래 견디어내지 못할 것이다.
<골목길로 난 창> 중
카프카는 <남자 기수들을 위한 숙고>에서 밝힌 자신의 삶에서 탈출해,
고독하게 혼자 살면서도 때로는 어디엔가 관계를 갖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에게 창문은, 고독함을 유지하면서도 가상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필수품이다.
그는 전혀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단지 피곤에 지쳐 군중과 하늘 사이, 위아래로 눈길을 돌리고, 창문 난간으로 다가가 아무런 의욕도 없이 머리를 약간 뒤로 젖히고 있으면, 어느덧 아래로 지나가는 말이 뒤에 거느리고 오는 마차와 소음이 마침내 그를 인간적인 유대감으로 끌어들인다
<골목길로 난 창> 중
그러나 그는 ‘전혀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피곤에 지쳐’ 쉬고 있기만 한다.
멍하니 있는 그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말과 마차와 소음,
그리고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는 남자 기수에 대한 ‘인간적인 유대감‘이다.
(이 구절에서 왜 이전 소설이 <남자 기수들을 ‘위한’ 숙고>였는지 알 수 있다. 카프카는 일등이든 아니든 간에 같은 경쟁을 함께한다는 것 자체에 유대감을 느끼고, 그들을 위하고자 하는 것이다.)
- <인디언이 되고 싶은 마음>
진짜 인디언이라면, 달리는 말에 서슴없이 올라타고, 비스듬히 공기를 가르며, 진동하는 땅 위에서 이따금씩 짧게 전율을 느낄 수 있다면,
마침내는 박차도 없는 박차를 내던질 때까지, 마침내는 고삐없는 말고삐를 내던질 때까지,
그리하여 앞에 보이는 땅이라곤 매끈하게 다듬어진 광야뿐일 때까지, 벌써 말 목덜미도 말 머리도 없이.
<인디언이 되고 싶은 마음> 전문
남자 기수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진짜 인디언’이 된다면 어떨까.
달리는 말과 함께, 진동하는 땅 위에서 전율을 느낀다.
그러나 그 다음 문장부터, 인디언으로서의 삶은 점차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말에게 세부적인 지시를 내리는 ‘박차’를 내던지고, 말을 붙드는 ‘고삐’마저 내던진다.
앞에 보이는 땅이라곤 매끈하게 다듬어진 광야만 남고, 말 목덜미와 말 머리는 벌써 사라져있다.
이는 모든 것에서 해방되기 위한 카프카의 시도를 상징한다.
말이란 대상을 종속시키는 행위(박차와 고삐)를 중단하고,
질주를 방해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없애고(매끈하게 다듬어진 광야),
마침내는 말에게 종속되는 걸 막기 위해, 말 마저 없애버리게 된다.
<인디언이 되고 싶은 마음>은 결국 해방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불가능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나무들>
우리는 눈 속의 나뭇등걸과도 같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것들은 미끄러질 듯 놓여 있는 것 같아서 살짝만 밀어도 밀어내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니, 그럴 수는 없다. 그것들은 땅바닥에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그것마저도 다만 겉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다.
<나무들> 전문
눈 속의 나뭇등걸, 그러니까 불확실한 위치에 놓여있는 카프카를 말한다.(<승객> 등에서 확인됨)
‘겉으로 보기에 그것들은 미끄러질 듯 놓여 있다’는 것은, 조금만이라도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면 해방이 찾아올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뭇등걸은 땅에 깊숙이 박혀 있기에, 카프카는 사회에 자리잡아 있기에, 해방은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사실 겉으로만 그런 것, 그러니까 사회에 자리를 잡은 것도 확실하지 않고, 해방이 가능할 거라는 것도 확실하지 않은, 완전한 불확실의 상태에 자신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 <불행>
이미 견딜 수 없게 되어—어느 십일월 저녁이었다—좁다란 내 방 양탄자 위를 경주 트랙에서처럼 내달려, 불들이 켜진 골목길 모습에 놀라 다시 몸을 돌려, 방 내부에서, 거울 바닥에서 새로운 목표를 발견하고, 그리고 소리를 지르지만 외치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응답도 없고, 외치는 힘에 비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상응되는 균형도 없이 외치기만 할 뿐 중지할 줄을 모르고 있을 때, 그가 막 침묵하는 순간 바로 벽으로부터 문이 열렸다.
<불행> 중
카프카는 이제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경쟁하지 않으면서도 해방을 맛보려고, 좁은 자신의 방에서 경주 트랙을 내달리듯 움직인다.
그런 자신을 누가 지켜보기라도 할까 봐, 불이 켜진 골목길 모습에 놀라 몸을 돌리고,
몸을 숙이고, 아무 대가 없이 소리를 지르는 일만을 계속한다.
그런 일도 어느새 힘들어질 때, 벽으로부터 문이 열렸다.
그것이 아주 빨리, 하기야 신속함을 필요로 하였으니까. 그리고 저 아래 포장한 도로 위의 마차에 매어놓은 말조차 전쟁에서 거칠어진 말처럼 목구멍을 드러내놓은 채 몸을 솟구치고 있었으니까. 작은 유령처럼 한 아이가 아직까지도 불이 켜 있지 않은 캄캄한 복도에서 나와 알아차릴 수 없게 조용히 흔들리고 있는 마루 바닥재 위에 발끝으로 서 있다. 방 안의 어스름한 빛 때문에 눈이 부시어 급히 양손에 얼굴을 묻으려 했으나, 문득 창으로 눈길을 돌리고는 안심하였다. 십자 모양의 창문 앞에는 거리의 불빛이 안개처럼 떠올라 마침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불행> 중
갑작스럽게 ‘작은 유령’같은 아이가 등장한다.
이후 서술은 아이의 입장에서 쓰여졌는데, 화자가 아이의 행동을 보고 추측하는 서술이거나 아이 자신의 서술인 듯하다.
(‘방 안의 어스름한 빛 때문에 눈이 부시’려면 아이의 입장임이 명확함)
이후에는 화자와 아이의 대화가 펼쳐지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아이가 정말 자신을 찾아온 게 맞는지 화자가 질문하고, 아이는 맞다고 함
2. 화자가 아이에게 문을 제대로 닫으라고 요청 (주위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3. 화자는 조심스럽게 말하려다 되려 아이를 불안하게 함 (협박 비슷하게 느껴짐)
4. 아이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왜 그런 말을 하냐고 하자. 화자는 아이이지만 이미 어른이라고 함.
5. 아이는 화자를 잘 알고 있으며, 거짓말과 겉치레는 필요 없다고 함, 그러나 어둠 속에서 그다지 안심되는 존재는 아니라고 하며 협박당했다는 걸 기억한다고 함.
6. 화자가 왜 실수가지고 뭐라하냐며 슬퍼함, 낯선 사람이라도 아이보단 친절할 거라고 함
7. 아이는 자신이 화자와 가깝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며, 질질 짤거면 나가겠다고 함
8. 화자는 아이의 본성이 이런 식의 대화를 강요한다는 말이냐며 물음. 그리고 아이의 본성은 화자의 본성과 같으며, 그러므로 화자가 친절하게 대한다면 아이도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건데 왜 그렇지 않은건지 의아해함
9. 아이는 그게 친절한 거냐고 묻고, 화자는 이번이 아니라 전에 있던 일에 관하여 말하는 거라고 함
10. 아이가 자신의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아냐고 물음, 화자는 모른다고 답함
이런 식의 대화이다.
무슨 소리하는지 이해가 안가는게 정상이다.
일단 끝부분까지 읽고, 다음 섹션에서 부가설명하겠다.
그럼 다시 이어가자.
이 대화가 끝난 다음에, 아이는 갑자기 사라진 듯 등장하지 않으며.
화자는 같은 층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랑 만나 대화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말했다. “지금 나는 방에서 유령을 보았어요.”
“마치 수프 속에서 머리카락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그렇게 불쾌하게 말하시는군요.”
“농담이지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유령은 역시 유령이거든요.”
“정말 그래요. 그렇지만 유령 같은 것을 전혀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지요?”
“그거야 내가 유령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만 믿지 않는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실제로 유령이 나타나더라도 더 이상 불안해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네, 그렇지만 그건 이차적인 불안입니다. 본래의 불안은 유령이 나타나는 원인에 대한 불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은 가시질 않습니다. 그러한 불안을 나는 지금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어요.”
<불행> 중
카프카는 방금 전 아이가 유령이라고 말하며,
본래의 불안이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서 힘들다고 말한다.
이후로 약간의 대화가 좀 더 오간 후
이야기하던 친구는 올라가고, 화자는 혼자 남는다.
이제 진정으로 조용히 산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외톨이가 된 기분이어서 차라리 위로 올라가 누워 잠을 잤다.
<불행> 중
- 아이의 정체
이 단편집을 통틀어서 아이가 중심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국도의 아이들>과 <불행> 둘 뿐이다.
그리고 나는 <국도의 아이들>과 <불행>에서 등장한 아이 두 명이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몇가지 근거를 정리해 보자.
1. 남쪽 도시로 달려나간 <국도의 아이들>의 아이
2. 아이의 속성과 대화에서의 언급
3. <불행> 후반부에서의 언급
첫 근거는 <국도의 아이들> 마지막에 아이가 남쪽 도시로 달려나갔다는 언급이 있기 때문에.
카프카가 현재 사는 곳이 도시라서 그 연결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나머지 근거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2. 아이의 속성과 대화에서의 언급
<국도의 아이들>의 아이는 카프카가 꿈 속에서 만들어낸 대상이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아이가 가지게 되는 속성들이 있는데, 이는 <불행>에서 언급된다.
특히 아이와의 대화에서 직접적으로 확인된다.
1. 아이가 정말 자신을 찾아온 게 맞는지 화자가 질문하고, 아이는 맞다고 함
2. 화자가 아이에게 문을 제대로 닫으라고 요청 (주위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3. 화자는 조심스럽게 말하려다 되려 아이를 불안하게 함 (협박 비슷하게 느껴짐)
4. 아이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왜 그런 말을 하냐고 하자. 화자는 아이이지만 그렇게 어리지 않으며 사실상 이미 어른이라고 함.
5. 아이는 화자를 잘 알고 있으며, 거짓말과 겉치레는 필요 없다고 함, 그러나 어둠 속에서 그다지 안심되는 존재는 아니라고 하며 협박당했다는 걸 기억한다고 함.
6. 화자가 왜 실수가지고 뭐라하냐며 슬퍼함, 낯선 사람이라도 아이보단 친절할 거라고 함
7. 아이는 자신이 화자와 가깝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며, 질질 짤거면 나가겠다고 함
8. 화자는 아이의 본성이 이런 식의 대화를 강요한다는 말이냐며 물음. 그리고 아이의 본성은 화자의 본성과 같으며, 그러므로 화자가 친절하게 대한다면 아이도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건데 왜 그렇지 않은건지 의아해함
9. 아이는 그게 친절한 거냐고 묻고, 화자는 이번이 아니라 전에 있던 일에 관하여 말하는 거라고 함
10. 아이가 자신의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아냐고 물음, 화자는 모른다고 답함
4번과 5번과 7번에서
화자가 아이를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아이가 화자를 잘 알고 있는 이유, 거짓말과 겉치레가 필요 없는 이유, 아이의 본성이 화자의 본성과 같은 이유는 <국도의 아이들>의 아이와 <불행>의 아이가 같다고 생각했을 때, 논리적 오류 없이 들어맞는다.
어른인 자신이 머리 쥐어짜내 만든 거니까, 아이를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고, 아이가 화자를 잘 아는 것과 거짓말과 겉치레가 필요 없는 것은 화자 자신이 창조한 거니까 당연한 것이고, 본성이 같은 것도 이런 관점에서 당연하다.
3. 불행 후반부에서의 언급
“그러나 내가 들은 바로는 유령을 기를 수도 있다는데요.”
“잘 아셨습니다.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누가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왜 안 하겠어요. 이를테면 만약 그것이 여자 유령이라면 말입니다.” 라고 말하고는 그는 뛰어서 윗계단으로 올라갔다. “아하 그렇군요. 하지만 그것도 보장할 수는 없지요.”라고 나는 말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내 친구는 벌써 멀리 올라가 버려서 나를 보려면, 층계의 둥근 천장에서 굽어보아야만 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나는 외쳤다. “당신이 그 위 유령을 내쫓는다면, 그땐 우리 사이는 끝장입니다. 영원히.”
“그러나 그것은 단지 농담일 뿐이었지요.” 그렇게 말하고 그는 머리를 움츠렸다. “그렇다면 좋아요.” 이렇게 나는 말했다.
<불행> 중
이 장면은 별 대화가 아닌 것 같아보이지만, 상당히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화자가 유령을 기르는 것이 가능하다고 언급하는 것은,
이미 기르고 있거나 그래 본 적이 있다는 것이므로, 근거가 된다.
또한 아이(‘그 위 유령’)를 감싸는 모습에서, <국도에서의 아이들>이 자신의 상상적 유년기를 형상화한 작품이라면, 유년기를 보호한다는 것도 말이 된다.
결국 정리하면 우리는
<국도의 아이들>과 <불행>에서 등장한 아이는 동일인물이며,
아이는 카프카가 자신의 유년기를 꿈에서 상상적으로 형상화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소설의 내용은 끝없는 불안 속에서 허우적대는 카프카가, 자신이 만든 상상적 대상에 빠져 시간을 보내고 잠에 드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왜 제목이 <불행> 인가?
그것은 이 단편집이 순환적 구조를 띄고 있고, <불행>은 그 도돌이표를 찍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 순환적 구조
이제 진정으로 조용히 산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외톨이가 된 기분이어서 차라리 위로 올라가 누워 잠을 잤다.
<불행> 마지막 부분
유령이 가시고 불안에서 벗어나 조용히 산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외톨이가 된 기분, 즉 그동안 자신을 감싸던 모든 불안들이 급격히 가신 느낌이 드니까 오히려 외로워지고.
결국 잠을 자게 되는데.
계속 말하고 있지만, ‘아이’는 꿈의 대상.
즉 이 소설은 다시 <국도의 아이들>과 연결된다.
카프카는 하나의 거대한 일대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과 독자가 순환하도록 만들어 둔 것이다.
이것이 비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몇 가지 근거가 있다.
특히 <결심>에서 모든 것이 결국엔 다 원래대로 돌아가게 된다고 말하는데, 이는 이 순환 구조를 미리 암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단편집은 정말 잔인하다.
자신이 하는 고민들을 하나씩 적어두고, 그 안에서 자신을 무한 루프시키는 작품이므로….
마지막으로 전체 흐름을 정리해보고, 길었던 단편집 <관찰>의 해석을 마치도록 하자.
- <관찰> 해석 전체 요약
카프카는 꿈을 꾸고, 거기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발견하지만, 그의 사고방식은 어른의 것이다.
어린이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아이는 현실의 자신으로, 남쪽 도시로 달려간다. - <국도의 아이들>
‘자아’ 탐구
믿을 수 없는 화자를 이용하여, 카프카 자신의 외적 자아를 신랄하게 까내린다 - <사기꾼의 가면을 벗기다>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사회적 환경에서 벗어나기를 강렬히 원하지만, 상상에만 그친다 - <갑작스러운 산책>
내면을 억누르겠다는 결심. 그러나 그 모습은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 <결심>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아무 지위도 존재도 없는 것들과 소풍을 가지만, 결국 공상에 불과할 뿐임을 깨닫는다 - <산으로의 소풍>
혼란스러운 내면은 독신자로서의 인생을 낳을 거라 판단하고 절망한다 - <독신자의 불행>
자신의 미래 모습을 상상하며, 가장 행복한 미래에서조차도 나 자신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을까 불안해한다. 마지막에는 소녀로 시선을 옮긴다.- <상인>
‘소녀’ 관찰
자신의 시선이 소녀를 겁탈한 거라는 생각을 한다. - <멍하니 밖을 내다보다>
소녀의 순진무구함을 따라하기 위해 행진하지만, 결국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오고야 만다. - <집으로 가는 길>
소녀의 순수함을 어른인 자신의 염세적 성격으로 대체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의미없음을 깨닫는다. -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전차 승강장에 서서 자신의 입장을 자조하며, 막 들어온 전차에서 내린 소녀를 관찰한다. 그러면서 자신과 동일한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던지지 않는지 궁금해한다.- <승객>
불변을 갈망하는 존재인 소녀의 본질을 깨닫는다. 그러나 옷은 타인의 시선을 거치면 삭아버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그녀들은 단지 겉으로만 똑같아 보일 뿐이다.- <옷>
소녀와 상상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결국 자신은 소녀의 입장에 설 수 없음을 깨닫고 돌아선다. - <거부>
‘해방’ 추구
자신의 삶의 경쟁적 측면을, 경마를 통해 우회적으로 돌아본다. - <남자 기수들을 위한 숙고>
경쟁에서 벗어나고 고독하게 살고 싶음에도, 말 소리만 들으면 인간적인 유대감을 느낀다. - <골목길로 난 창>
남자 기수라는 지위에서 벗어나, 진짜 인디언이 되어 모든 속박에서 해방되고 싶어 마구 달리지만. 모든 속박을 풀고 나면, 박차와 고삐는 물론, 말도 없어져 있다. - <인디언이 되고 싶은 마음>
자신이 해방되지도, 그렇다고 사회에 완전히 속하지도 못하는 존재임을 재확인하며, 직접적인 시도 없이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 - <나무들>
마침내 아이는 불안에 잠식된 카프카에게 도착한다. 잠깐의 대화를 나누고, 아이는 사라지며. 카프카는 잠에 다시 든다. 이는 <국도의 아이들>로 연결되며, 결국 카프카는 영영 고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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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단편집 <관찰> 하나 끝난... 거고요. 이제 아버지 3부작(선고, 변신, 실종자) 준비하려고 합니다.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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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가 무거워지네요.. <변신>은 카프카의 삶과 직결된 소설인지라 자료조사 분량을 더 늘려 보겠습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