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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0. 읽기 전

이기호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7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풍경소리'(개인적으로 읽은 이상문학상 작품집 중 제일 띵작 같음, 대상 작품 뿐만 아니라 수록작품 하나하나가 다 재밌음.) 속 수록 작품인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였다.(심사평을 보니, 이 작품과 구효서 작가의 풍경소리를 놓고 대상을 고민했다고 한다. 대상을 놓고 고민한 나머지 한 작품은 기억이 안 남.) 이 작품에서 화자이자 주인공인 김숙희의 시선으로 삶의 비참함이나, 같은 행동을 가지고 다른 결과가 나오는 아이러니 등을 드러내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며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이기호 작가의 책인 '웬만하면 아무렇지 않다' '차남들의 세계사' '목양면 방화사건 전말기(욥기 43장)'과 이기호 작가가 대상을 받았던 17회 황순원문학상 작품집의 대상 작품인 '한정희와 나', 그리고 수상한 작가가 쓰는 개인 작품'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기호 작가의 팬이 되었다. 그가 작품 속에서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장면, 신마저도 그의 작품 속에서는 단지 희롱거리로 전락되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 중간중간 플롯 자체에서 느껴지는 유머 등은 신선했고 재미있었다.(김유정이나 현진건이 뿜어내는 유머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


이 책은 총 8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1. 버니

랩을 기반으로 쓴 소설이자 작가의 등단작이다. 1999년이라 그런가, 지금 읽는 데 굉장히 애매하고 촌스럽다. 이 단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에 화자가 역사 시험에서 칠지도를 몰라 사시미라고 썼는데 선생이 화자를 죽어라고 팬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쓴 글에는 농담으로 웃어넘겨 놓고선(아니면 넘기는 척한 걸 수도 있지만) 정작 공부를 못하는 화자가 쓴 글에는 감정적으로 반응할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그 선생의 성격을 암시하는 걸지도 모르겠고.

2. 햄릿 포에버

서사의 틀이 앞서 얘기한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와 흡사한 취조방식이다. 주인공 이시봉이 극단주에게 본드를 흡입시켜 질식하게 한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앞에서 그간의 있었던 일을 진술하는 방식으로 사건이 진행된다. 연극을 하던 중 주인공은 본드를 흡입할 때마다 햄릿을 만나게 되고 형편없는 연출로 배우들에게도 질시를 받고 있던 극단주가 이를 은근히 부추기는 데, 어느 순간 주인공이 연극에서 맡은 배역과 주인공의 아버지가 오버랩이 되고, 주인공은 옆에서 같이 본드를 빨면서 연출 방향에 대해 조언을 들었던 햄릿과 오버랩이 되기 시작한다. 바로 이 주인공과 그의 아버지가 햄릿과 그의 아버지와 각각 오버랩이 되는 장면이 가장 인상깊었다. 이 장면으로 인해서 햄릿이 단순히 주인공의 환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분신으로도 여겨지면서 주인공의 전사(前史)를 유추하게 되고, 그러면서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는 효과를 단번에 만들어낸다.

3. 옆에서 본 저 고백은

다른 소설들에 비하면 평범하게 보이는 작품. 그렇다고 이기호만의 특성마저 빠진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관계의 불안정. 화자와 화자의 친구가 표면적으로는 관계의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건이 진행될수록 그들은 관계에서 우위를 빼앗기는 것처럼 보이고, 그들은 불안해하면서도 우위를 무모하게 힘으로 유지하려고 애쓰는 장면들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4. 머리칼 傳言

판타지와 고전설화를 섞어놓은 듯한 플롯. 이 소설에서 스님과 남자는 여자에 대해 구속하고 속박하고자 한다. 스님은 여자가 절을 떠나면 절에서 혼자 남은 자신을 생각하며, 남자는 자신의 바람이 들킬 것을 걱정하면서 여자를 속박하고자 한다. 머리칼은 그녀의 자유, 또는 자유의지를 상징하는 걸로 보이는데 머리칼이 속박된 이후 여자는 구속되고 속박된 굉장히 우둔하게 보이는 반면 머리칼의 자유를 얻으면 여자는 활기를 얻는다는 점에서 그렇게 여겼다.

5. 백미러 사나이

시대의 압력 속에서 판타지로 무장한 설정을 가진 주인공이 난데없이 등장하여 주는 재미가 쏠쏠했다.

6. 간첩이 다녀가셨다

강릉 무장공비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기억한다. 외부인을 통해 갈등이 시작되었고, 결국 주인공 중 한 명이 외부인을 살해한다. 그러고 이들이 갈등을 봉합한 방법은, 역시 외부 세력인 '간첩'이 외부인을 살해했다는 내용이었다. 내부의 갈등을 억제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이용하는 방법이 그럴듯 했다.

7. 최순덕 성령충만기

성경구절처럼 쓴 소설. 단언컨대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 중에서 제일 재미있다. '그러면 세종대왕도 이순신 장군님도 다 지옥에 가셨나이까'라는 구절부터 나는 낄낄거렸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부모 아래 자란 아이가 자기 삶의 의미를 찾고자 바바리맨을 전도한다는 골때리는 줄거리와 이 줄거리를 받쳐주는 발군의 유머가 좋았다.

8. 발 밑으로 사라진 사람들

성폭행 당한 순박한 소녀가 군용지에서 감자 농사를 짓다가 소가 죽어서 성폭행의 산물로 태어난 아들을 데리고 감자농사를 짓는다는 내용. 줄거리만 보면 되게 암울해 보이지만 읽다 보면 의외로 밝은 것에 좀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