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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 대학의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가 쓴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는 2005년 출간 당시, 불과 100페이지 남짓한 짧은 에세이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기현상을 일으키며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이 책은 '개소리(bullshit)'라는, 다소 상스럽고 일상적인 개념을 날카로운 철학적 분석의 중심에 놓는다. 저자는 현대 사회가 진실보다는 그럴듯함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러한 '개소리'가 담론의 장을 지배하는 현실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는 정치인의 공허한 약속, 현란한 광고 문구, 소셜 미디어의 필터링된 자기 과시를 떠올리며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사회는 이미 진실의 무게보다 이미지의 화려함에, 사실의 정확성보다 감정적 호소력에 더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난 지금, 나는 이 책이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는 것을 넘어, 마치 한 편의 예언서처럼 미래의 한 단면을 섬뜩할 정도로 정확히 묘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발견한 가장 완벽하고도 정교한 '개소리'의 구현체는 인간 세상이 아닌, 우리 시대 가장 진보한 기술인 '인공지능(AI)'의 심장부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논의의 출발점은 프랭크퍼트가 세운 '거짓말쟁이'와 '개소리꾼'의 개념을 명확히 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는 둘을 엄격하게 구분하는데, 거짓말쟁이는 진실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그것을 등지는 자다. 그는 진실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의도적으로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그의 행위는 진실이라는 게임의 규칙을 알면서 반칙을 저지르는 것과 같기에, 역설적으로 진실의 권위와 가치를 인정하는 셈이다. 진실이 없다면 거짓말도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개소리꾼은 진실과 거짓의 기준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말이 듣는 사람에게 특정 인상을 주거나, 주어진 상황을 매끄럽게 모면하는 것이다. 진실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거나 확인하려는 노력 없이, 오직 목적 달성을 위해 언어를 도구로 사용할 뿐이다. 프랭크퍼트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훨씬 더 위험한 '진실의 적'이라고 경고한다. 거짓말은 진실이라는 기준을 훼손하지만, 개소리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려는 노력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진실 탐구라는 사회적 기반을 통째로 허물어뜨리기 때문이다.
이 프레임은 AI의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을 설명할 때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예를 들어, 존재하지 않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질문하면 AI는 "모른다" 또는 "자료가 없다"고 답하는 대신, 그 사건의 배경과 경과, 심지어 후대에 미친 영향까지 그럴듯하게 꾸며낸 설명을 자신감 있게 제시한다. 이때 AI는 진실을 알고도 속이려는 '의도'가 없으므로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그저 주어진 질문에 대해 학습한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가장 확률적으로 자연스러운 단어의 배열을 생성할 뿐, 그 내용의 진위 여부에는 완전히 무관심하다. 이것이야말로 '진실에 대한 무관심', 즉 프랭크퍼트가 정의한 '개소리'의 완벽한 기술적 구현이다.
그렇다면 AI는 어째서 이토록 완벽한 '개소리꾼'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을까? 그 구조적인 운명은 철학자 존 설의 '중국어 방' 사고 실험을 통해 섬뜩할 정도로 명확해진다. 설은 중국어를 전혀 못 하는 사람이 오직 영어로 된 규칙이 담긴 책만을 가지고, 밖에서 중국어로 쓴 질문이 들어오면 책의 지시에 따라 완벽한 중국어 답변을 내보내는 상황을 가정한다. 방 밖의 사람은 안에 있는 사람이 중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고 믿겠지만, 방 안의 사람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기호를 조작할 뿐이다.
현재의 거대 언어 모델(LLM)이 바로 이 '중국어 방'의 첨단 기술적 구현체다. 수십억, 수조 개의 매개변수라는 지극히 정교한 규칙 책에 따라, AI는 입력된 기호(질문)에 대해 가장 통계적으로 그럴듯한 기호 조합(답변)을 출력한다. '이해'가 아닌 '패턴 맞추기'와 '확률적 예측'이 그 본질인 것이다. 존 설의 논증은 해리 프랭크퍼트의 개념에 기술적 해설을 제공하는 셈이다. '진실'과 '거짓'은 세계에 대한 '의미'의 영역에 속하지만, AI가 중국어 방처럼 순수한 기호 조작 엔진이라면 애초에 그 영역에 발을 들일 수 없다. 진실에 관심을 가지려야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AI의 할루시네이션은 시스템의 '오류'나 '결함'이라기보다, 의미의 이해 없이 작동하는 그 본질이 필연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AI가 중국어 방의 메커니즘으로 개소리를 생산한다는 결론에 이르면, 우리는 가장 기이하고도 철학적인 역설과 마주하게 된다. '이해 없이 그럴듯하게 말하는 능력', 즉 정교한 개소리는 과연 기계의 한계에 불과한 것일까?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가장 섬뜩할 정도로 '인간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의 언어생활 역시 순수한 진실의 교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있어 보이기 위해 전문 용어를 섞어 쓰거나, 조직의 화합을 위해 진심 없는 칭찬을 하거나, 어색한 침묵을 채우기 위해 무의미한 말을 늘어놓는 행위 모두 넓은 의미의 '개소리'다. 이는 생존과 소통을 위한 인간의 사회적 지능의 일부이기도 하다. AI는 진정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개소리'를 하지만, 그 결과물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사회적 편의나 지적 허영심, 혹은 관계 유지를 위해 내뱉는 '개소리'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기계가 우리의 불완전함을, 우리의 진실에 대한 무관심을 비추는 거울이 된 것이다.
결국 해리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는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수적인 비판적 사유의 도구가 되었다. 이 책은 우리에게 AI의 본질을 꿰뚫어 볼 날카로운 렌즈를 제공함과 동시에, 우리 자신을 향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토록 정교하고 방대한 '개소리꾼'과 공존해야 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실의 가치를 지켜내고 탐구의 동력을 잃지 않을 것인가? 기계의 '개소리'를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는 일상 속에서 얼마나 진실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작은 책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 앞에서, 우리는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책임을 함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AI라는 거대한 거울 앞에서,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시간을 맞이했다.
중국어방 재미있는 담론이긴함
AI 모델의 '개소리'는 현 방법론의 당연한 결과이지만 그 시스템이 위치한 맥락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함. '개소리'는 기호를 해석하는 주체인 인간 안에서 성립하는 것이지, 생성되는 기호열 자체와는 무관하다면 생성되는 기호열을 두고 송신자와 수신자가 서로 다른 목적의 게임을 하고 있다고 볼 여지도 있음. 실제로 LLM 모델은 아무 목적 없이 인간의 언어를 흉내 내도록 학습하는 게 아니니까
서로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는 말에서 또 생각할 거리를 여러 개 만들어주신 거 같음. + 뭔가 배경지식에 대한 깊이가 부족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긴 글 읽어주셔서 ㄱㅅㄱㅅ
AI 얘기를 한다면... 나는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이 그 '개소리'를 하고 있는 쪽이라고 생각함
그래서 이 개소리 마저 AI가 따라하고 있기에, AI의 환각 증세가 인공지능으로서의 부족함이 아니라 오히려 더 지능화된 것이다 라는게 대충 제 생각이긴 했음요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음 개추
오. 개정2판에 LLM을 넣는 것도 고려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