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현전 부재 반복하는 현상이 일어나니까, 아이가 어머니의 욕망 (상상적)팔루스가 되려고 해서 어머니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가 내가 아닌 다른것을 욕망한다"고 명명하는게 아버지의 이름의 개입으로 이해함(아버지의 이름은 꼭 생물학적 아버지인게 아니라 아이에게서 어머니를 뺏어가는 모든 대상인듯)
1. 그런데 왜 이게 모든 의미작용을 시작할수 있게 하는거임?
2. 팔루스를 실제 어머니가 잃어버린 대상이라고 파악할때 상상적 팔스가 된다는건 알겠음,그런데 상징적 팔루스가 이해가 안감. 상징적 팔루스는 왜 결여의 기표인거임?
부재현전을 반복하는게 내가 어머니와의 동일시상태인줄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고 어머니가 내가 아닌 다른 것을 욕망하고 있구나->그 욕망의 대상이 아버지였구나라는 도식에서 아버지를 어머니를 통제할수 있는 상위의 어떤 체계(상징계를 가능하게하는 아버지의 이름,대타자)로 이해하는거 아닌가. 의미작용의 시작이 상징계 그러니까 언어를 사용하는 세계로 진입하는걸 말하능것 같은데..
그러니까 상징계로의 진입자체가 나와어머니의 동일시를 갈라놓는 무엇(아버지의 이름,대타자)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면서 발생하는거라고 이해했음
어머니가 욕망하는 대상이 아버지인거랑 어머니를 통제하는 심급이 아버지인거랑 쉽게 조화가 안돼서 그럼 어머니가 아버지가 가진 팔루스를 받으려고 아버지 말을 따른다고 설명하면 너무 억지같고
@ㅇㅇ 라캉의 가설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도 봐야지 실제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설명하는 건 라캉 본인이 폐기했다고 읽은것 같은데(예컨대 아버지 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성공적으로 상징계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으니)
ㅈ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실재=잉여향락=아기가 엄마랑 붙어서 실재의 즐거움을 누리는 상태. 근데, 아기는 슬슬 (의미작용을 가능케하는) 상징계에 진입하고 그 때 애비가 나타남. 실재(모성)로부터 분리되어서 상징계(부성)로 진입할 때 두 단계를 거침. 소외 단계에서는 주체의 결여(나는 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대타자의 등장으로 '와... 애비가 엄마의 욕망의 대상(상징적 팔루스)이구나'하는 단계임. 그리고 분리 단계에서는 '대타자(아빠)도 별거 없네'하면서 고정된 팔루스를 떠나 상징적 기표를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상징계의 질서에 도달함. 소외를 거치지 못하면 상징적 질서를 모르는 정신병, 분리를 거치지 못하면 특정 상징적 팔루스(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도착증에 걸림
상징계에 진입하고 아버지가 나타나는게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 기표가 들어서고 상징계 진입되는거 아니었음?
1. 어머니의 욕망을 좇는 상상계에서 언어와 법이 지배하는 상징계로 진입하는 시기라서. 라고 정리할수 있을듯? 2. 상징계로 진입하며 어머니의 욕망, 상상적 팔루스와 자신을 동일시 하던 아기는 아빠처럼 팔루스를 소유한 주체가 되고자 하며 상징적 팔루스를 얻으려하지만 실은 이 과정에서 상상적 팔루스는 억압돼 대상a가 되고 아이는 결여된 주체로서 상징계에 진입
평생 대상 a를 찾지만 한번 상실한것을 복구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