烋야 보아라.
집안 두루 평안하냐? 그때 네 누나 희(熙)가 내 떠나오기 며칠 전 수원고롱(水原高農; 서울 농대의 전신) 관사 높은 창틀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쳤는데, 그 뒤 어찌 되었느냐. 인천 쪽에서 들리는 함포 소리와 미제 폭격기의 불벼락에 쫓기는 중에도 그 어린 것이 열이 펄펄 끓는 몸으로 앓던 모습이 사뭇 눈에 밟히더구나.
나는 이곳 청진에서 환갑을 넘기면서 조국에 바친 것보다 받은 것이 많은 감격에 겨워 산다. 이제 투쟁의 일선에서는 멀어졌으나 아직도 조국은 나에게 실존이다. 또 통일의 날이 오면 너는 이 북쪽에서 손아래 동기 다섯을 만나게 될 것이다.
네 소식은 이곳 군당일꾼들이 전해주어 알았다. 네가 썼다는 글의 요약도 들었고, 거창한 평설도 몇 구절 읽어보았다. 네 얼굴이 손바닥만 하게 나온 남쪽 신문도 보고.
기껏해야 전하는 이의 마음에 드는 인용 몇 줄이고, 이해하고 싶은 대로 이해한 네 글 일부의 요약이겠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고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데가 있었다. 너는 대체로 섬세하고 심약한 품성을 기른 것 같고, 땅과 사람의 일보다는 관념과 추상 쪽에 관심이 더 깊은 듯하구나.
하지만 외세와 억압을 뼈아프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네 애매한 태도에 대해서는 한마디 일깨워주고 싶은 게 있다. 이제 너도 서른이 넘었으니, 고향과 문중을 아주 버린 게 아니라면 집안 족보쯤은 한번 훑어보았을 것이다. 경주에서 관향(貫鄕)을 갈라나온 이후 800년, 우리 족보 어디에도 예속과 굴종의 기록은 없다.
주체 연호(年號)를 쓴들 네가 알겠느냐. 서력기원 1982년 가을 시월에 아비가 쓴다.
ㅡㅡㅡㅡㅡㅡㅡ
이문열은 아버지 편지 받고 자기의
글쓰기 재능이 아버지로부터
물러받았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함
집안 두루 평안하냐? 그때 네 누나 희(熙)가 내 떠나오기 며칠 전 수원고롱(水原高農; 서울 농대의 전신) 관사 높은 창틀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쳤는데, 그 뒤 어찌 되었느냐. 인천 쪽에서 들리는 함포 소리와 미제 폭격기의 불벼락에 쫓기는 중에도 그 어린 것이 열이 펄펄 끓는 몸으로 앓던 모습이 사뭇 눈에 밟히더구나.
나는 이곳 청진에서 환갑을 넘기면서 조국에 바친 것보다 받은 것이 많은 감격에 겨워 산다. 이제 투쟁의 일선에서는 멀어졌으나 아직도 조국은 나에게 실존이다. 또 통일의 날이 오면 너는 이 북쪽에서 손아래 동기 다섯을 만나게 될 것이다.
네 소식은 이곳 군당일꾼들이 전해주어 알았다. 네가 썼다는 글의 요약도 들었고, 거창한 평설도 몇 구절 읽어보았다. 네 얼굴이 손바닥만 하게 나온 남쪽 신문도 보고.
기껏해야 전하는 이의 마음에 드는 인용 몇 줄이고, 이해하고 싶은 대로 이해한 네 글 일부의 요약이겠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고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데가 있었다. 너는 대체로 섬세하고 심약한 품성을 기른 것 같고, 땅과 사람의 일보다는 관념과 추상 쪽에 관심이 더 깊은 듯하구나.
하지만 외세와 억압을 뼈아프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네 애매한 태도에 대해서는 한마디 일깨워주고 싶은 게 있다. 이제 너도 서른이 넘었으니, 고향과 문중을 아주 버린 게 아니라면 집안 족보쯤은 한번 훑어보았을 것이다. 경주에서 관향(貫鄕)을 갈라나온 이후 800년, 우리 족보 어디에도 예속과 굴종의 기록은 없다.
주체 연호(年號)를 쓴들 네가 알겠느냐. 서력기원 1982년 가을 시월에 아비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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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은 아버지 편지 받고 자기의
글쓰기 재능이 아버지로부터
물러받았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함
이문열 아빠가 글은 진짜 기가막히게 써서 저런 재능은 유전이라고들 정설이났지
그런데 그 사람은 본래 이공계 전공으로 서울 농대에서 교수를 하다가 월북하였고, 6.25 끝나고는 공학 수학으로 전공을 바꾸어서 교수로 남은 생애를 보냈다고... 그래서 6.25 이후 북쪽에서 벌어진 혹독한 남로당 숙청에서도 불구하고, 이공계의 근간인 수학에 대해 워낙 유능한 인재로 판단되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으로 추정됨. 그런 사람이 저렇게 글재주 마저도 좋으니 원... 최고 전성기 시절에 쓴 장편 영웅시대는 사실상 부친과 모친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인데, 일가족을 버리고 월북한 그 행동 때문에 남은 가족들이 모진 고생을 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가감없는 묘사를 보면서 결국 부친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마음 속 깊이 용서할 수 없다는 절절한 심정이 느껴졌음
서울대 교수였구나 아버지가
수학이 아니라 수리학임. 수리학은 물의 흐름을 연구하는 학문(예: 댐, 관개시설).
뭔소리야 이게. 이글은 연재소설 둔주곡 80년대 중에 있는 글이지 이문열 아버지가 진짜 쓴 편지글이냐? 왜 이렇게 작가와 작품을 구분 못하냐.
이문열이 아버지에게서 직접 편지를 받았음. 신문인터뷰에서 "아직도 조국은 나에게 실존이다."라는 문장을 보고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글재주를 물러받았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했음. 둔주곡에서 나온 내용인데 크게 고쳤다고 생각 안했음
위 내용은 당연히 연도가 맞지 않고, 내용도 각색한 것이지만, 부친이 편지를 보낸 것은 맞고 대략 핵심 내용은 비슷하다고 알고 있음. 이문열이 부친의 생존을 알게 된 것은 1990년대 초반 황석영이 방북사건을 일으킨 후 뉴욕에 도피했을 때였음. 한국에 귀국 못하고 뉴욕에서 도피생활하는 황석영에게 이문열이 직접 찾아가서 북한에 아는 사람 있을 테니 자신의 부친의 생사를 수소문해달라고 부탁했고, 황석영이 뉴욕의 북한 영사관을 통해서 이문열 부친이 어떻게 살고 있는 지 찾아주었음. (이문열은 이 때문에 계속 황석영에게 고마움을 표함) 그 후에 이문열은 부친으로부터 편지를 받았고, 얼마 안가 부친이 사망하였다는 연락과 함께 이복동생이 만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중국에서 만남.
이문열의 아버지는 유교봉건사상 공산주의 민족주의 가족주의가 뒤섞인 정신을 가진 복잡하고 시대착오적인 사람이네
아버지는 그 후 어떻게 됐냐 숙청안당하고 버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