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줄리앙의 철학서 고요한 변화 첫 두 문단
출판본 번역
필경 명백하게 우리 눈앞에 쉼없이 일어나는 가장 실효(實效)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보이지 않는 사태는 어디서 비롯하는가?
당연히 실효하다. 결국 이 사태에서 실제의 효과가 가장 적나라하게 느껴지며 우리의 전면에 닥치는 한 그렇다. 왜냐하면 내면의 은밀한 질서와 관련한 비가시성이나 감정에 속하는 비가시성도, 철학이 감각의 차원과 다른 본질로서 즉각 결정한 데이터들의 비가시성도 관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비가시성은 ‘현상’ 특유의 것으로서 현상의 역설을 이루는 것이다. 즉, 비가시성은 멈춤 없이 일어나고 우리 앞에 가장 공공연히 나타나지만, 극히 끊임없이 전체에 걸쳐 이루어지는바, 분간되지는 않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그 느림 때문에 구분하기에는 은미한 동시에 너무 펼쳐져 있다. 이 현상의 출현으로 인한, 시선을 가로막을 정도의 갑작스러운 눈부심은 없다. 반대로 가장 평범한 일일 뿐이다. 시각에 주어진 이 모든 곳과 모든 시간은 바로 이런 사태 자체로 인해 결코 지각되지 않으며 우리는 그 결과를 확인할 뿐이다.
뭔말인지 이해가 안돼서 프랑스어 원전 구해서 기계번역 돌려봄.
아래 읽어보기 전에 너희도 위 번역을 충분히 읽어보셈 이해가 되는지.
먼저 ChatGPT AI 번역
어째서 우리의 눈앞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며, 가장 실질적인 것이 분명히 드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가?
그것은 분명히 실질적이다. 결국 그것은 가장 격렬하게 현실의 효과를 발산하며 우리 얼굴에 정면으로 되돌아오니까.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비가시성은 내면적이거나 은밀하거나 심리적인, 즉 감정에 속하는 종류의 비가시성이 아니며, 또한 철학이 처음부터 감각적인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선언했던 사유의 비가시성도 아니다.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비가시성은 ‘현상’에 고유한 것이며 바로 그것이 역설을 이룬다. 즉, 우리 앞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끊임없이 생성되고 드러나는 것 — 그러나 너무도 지속적이고 전체적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도리어 식별되지 않는 것이다. 그 느릿함으로 인해 미세하게 감추어지는 동시에,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구분되지 않는다. 이는 갑작스러운 출현으로 인해 시선을 눈부시게 하며 맹목으로 이끄는 그런 종류의 현현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일상적인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시야에 드러나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결코 지각되지 않는 것 — 우리는 다만 그 결과만을 인지할 뿐이다.
그다음 DeepL 번역
왜 우리 눈앞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효과적임은 분명합니다: 결국 현실의 효과가 가장 잔인하게 느껴지고 우리에게 직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면적, 비밀스러운, 심리적인 보이지 않음—감정과 관련된 것—도 아니며, 철학이 감각적 본질과 다른 것으로 규정해 온 아이디어의 보이지 않음도 아닙니다. 아니요, 제가 말하는 보이지 않음은 '현상'에 특유하며 그 역설을 이룹니다: 우리 앞에 가장 공개적으로 끊임없이 발생하고 드러나지만, 너무도 지속적으로 전체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분되지 않습니다. 느림으로 인해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너무도 널리 퍼져 있어 구분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여기에는 갑작스러운 눈부심으로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가장 평범한 것입니다: 어디서나 언제나 시야에 제시되지만, 그 자체로 인해 결코 인식되지 않습니다 – 우리는 그 결과만 관찰할 뿐입니다.
이렇게 두 개 읽고 나니까 원 역본 의미가 그제서야 이해가 가더라.
그런 면에서 분명 오역은 아닌데
뭐랄까.. 첨 읽을 땐 너무 이해가 안간다고 해야하나
이래서 사람들이 차라리 원전을 읽는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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