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품은 채식주의자밖에 안 읽은 사람이지만 난 한강 작가 이 사람은 결국 고통이 없으면 글을 못 쓰는 사람이라고 느낌.
이건 내가 홀로코스트나 유대인 학살에 대한 책 같은 거 쓰는 사람들한테 느낀 감정인데 이걸 국문학 작가 책을 읽고 느낀 게 신기하긴 했는데 암튼.
결국 이 사람은 고통을 받지 않고 고통을 주지 않고 서로 공감하고 상처를 보듬어주자, 뭐 이런 다소 인문적인 가치로 마무리된다고 생각하는데
본인이 쓰는 건 세계의 고통에 대한 소설이고 만일 이 세계에 고통이 사라진다면 이 사람은 뭘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듦.
한강 작가의 문체가 훌륭하고 섬세한 건 알겠음. 그러나 그걸로 표현하고 있는 건 결국 고통의 재현이지 않나? 특히 그 젖가슴 어쩌구는 정말 최악인데
자신은 고통을 주지 않는 존재, 주지 않을 존재라는 걸 자각한 작가의 자의식이 너무 과잉됐다고 해야하나... 암튼...
혹시 이런 관점에서 한강을 비평한 책이 있거나 글이 있으면 좀 알려주삼.
저는 가끔 요즘의 공감이라는게 참 피상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해결은 내놓기 어려운 법이고 공감 역시 필요하죠. 다만 그것만을 말한다면 겉도는 느낌은 지워 지지않더라고요. 마치 몇년 째 되풀이 되는 해결되지 않는 부부싸움을 보는것 같아요. 네가 과거에 이랬잖아 에서 시작되는 그런 싸움들 말입니다. 또 그얘긴가 하는 생각이 드는건 당연하다 생각이듭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고통이 사라질일은 없으니 걱정 ㄴㄴ해도 될듯
책을 읽을 땐 (차이에 따라) 사회 안에서 책임이 이리저리 이동하는 한 고통은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한강) 그런 고통을 기록해줘서 고맙다 생각했네요.
"폭력의 위기와 그 대응 - 한강 소설의 폭력론 -" 이거 논문이 한강 소설을 고발자 측면에서 분석합니다. 비판적이진 않아요.
@김1도현 감사합니다.
그런데 고통이 없어질 수 있나
삶과 고통은 뗄레야 뗄 수 없는건데 고통을 주제로 다루는건 너무나 자연스럽고 또 인간적이라고 생각함
다룰 수 있지. 근데 내가 비판하고자 하는 건 '고통'을 반대하는 척 하면서 '고통'을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럼. 재현의 윤리에 관한 내용일수도 있겠다만 이 이 '채식주의자'라는 책이 보여주고자 하는 건 결국 고통의 '체험'임. 고통을 반대하는 사람이 고통을 체험시켜주려고 애를 쓰는 게 내 눈에는 좀 모순적인 태도로 보인다는거임.
@독붕이(121.136) 아 그런 뜻이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확실히 한강의 소설은 고통을 도구로서 활용하고 있지. 근데 그 목적은 그 고통이 얼마나 참혹하고 다시는 되풀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를 독자들에게 간접적으로 체험시켜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함. 마치 너가 비유했듯이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알-리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아유슈비츠 수용소를 보존해놓고 민간에게 개방해 놓는 목적과도 닮아있지.
@마르골 그건 또한 맞음. 과거의 참상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취지로 참상의 공간을 기록하고 남겨놓는 것은 필요한 행위니까. 그렇지만 한강의 소설은 역사의 기록이나 참상의 기록으로써의 관람, 즉 수용소의 보존을 예로 들자면 관람자와 공간의 거리가 어느 정도 존재한다면, 한강의 소설에서는 화자와 독자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보인다는 게 내 생각임. 물론 채식주의자만 그렇고 나머지 2개의 단편에서는 어느 정도 거리가 먼 곳에서의 기록이나 체험이 느껴짐.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에는 고통의 기록이나 체험을 위한 의도가 존재하나 그것들을 체험시켜주고 싶어 안달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럼.(마치 독자를 눈물 흘리게 하기 위해 바늘을 찌르는 느낌)
@독붕이(121.136) 이러한 의도가 고통을 반대하는 그녀의 태도와는 모순적이게 느껴진다는 뜻이었음. 예컨대 위의 수용소 보존의 예를 들자면 그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의 학살 장면을 기록해놓고 영상으로 보여주진 않잖음? 그저 공간을 전시해놓는 것 뿐이고.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은 유대인들의 학살 장면을 눈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느낌이 강하게 듦. 그것이 그녀의 문학적 성취일수도 있고.
그것또한 본인이 세계를 관철하는 시선일 수 있음 그냥 한강과 님의 시선이 다른 것 일뿐임
고통 없으면 글을 못 쓸 것 같은 사람이 고통을 반대하는 게 이상해서 그럼.
맞지 고통포르노 원툴로 작품을 쓰고 있는데 고통을 반대한다? 오히려 그 사람은 고통을 유발하는 걸로 보임
"한강 작품은 채식주의자밖에 안 읽은 사람이지만 난 한강 작가 이 사람은 결국 고통이 없으면 글을 못 쓰는 사람이라고 느낌." 책 한권 읽고 이 사람은 요정도 글 쓸거라고 하는건 뭔 자신감이냐. 니가 써놓고도 존나 너무하다는 생각 안드냐?
ㅋㅋ 고작 작가 책 한권 읽어놓고 지 생각에는 줏대 제대로네 ㅋㅋ
나도 채식주의자만 읽었는데 흥미로운 얘기지만, 내 취향은 아니라 1독으로 끝냄.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에는 쾌락, 고통, 즐거움, 욕망, 분노, 슬픔, 질투, 파괴, 창조, 사랑, 증오, 호기심, 고독, 낯섦, 폭력, 전복, 공포... 이런 것들이 나오기 마련이지.
흐루쇼프가 시인은 진실을 말할수 있지만 정치가는 그럴수 없다는 말을 했다던데 한강이 상타고 어쩌고 하는거 보면 이 말도 맞는지 의문임
한권요? 아니 최소한 출간작품 절반정도는 읽어보고 뭐라 하는게 예의아님?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별개로 보는 데서 모순이 생김 고통의 갈구와 고통의 거부는 애초에 동전의 양면이 아니고 한 면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고통포르노 같음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