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게 고통은 = 의미 라는 등식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세상은 고통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아름답다 인데


고통이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바라본다


여기서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은


그녀의 소설 대부분의 서사가 고통없이는 진행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필시 외상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기반으로 돌아가는데


그 사건에는 항상 폭력을 부과하는 타자가 등장한다


예를 들면 군인의 형상은 바로 그러한 타자 중 하나인데


채식주의자 같이 역사적 현실을 다루지 않는 소설에서도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영혜에게 강제로 탕수육을 먹이려한다


그렇다면 왜 모순적인가?


한강은 폭력과 고통이 부과되는 몸들에게


부정적인 방식이든 긍정적인 방식이든 실존의 최소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강은 세상에 폭력이 존재하는 현실을 묘사함에 있어


폭력을 부과하는 몸과 폭력을 받는 몸 이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혀 현실에서 폭력이 생겨나는 원인에 대한


사유를 전혀하지 않는다


즉 그녀는 철저히 희생자의 입장에서 소설을 전개하는데 폭력이 발생하는 이데올로기 측면을 철저히 무시함으로써


그녀의 소설을 어느 정도는 이데올로기화 시킨다


즉 모순이 들어난다


인간 존재의 고통이 (여기서는 철저히 그녀가 상정한 고통)  있는 세계야 말로 아름답다.


고통이 있는 세계 = 아름다운 세계 = 소설가가 의존하는 의미

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한강이 결코


불교식으로 생의 보편적인 고통, 윤회에 사로잡히는 인간 동물 존재의 고통과 같이 추상적으로 인간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약삭 빠르게 현실에서 고통을 취사선택한다


채식주의자거나 여성이거나 역사적 희생자거나


그녀의 고통받는 몸에는 주로 폭력을 부과하는 몸으로 그려지는 


군인은 포함되지 않는다


간단히 정리하면 그녀의 작품이 모순적인 이유는


그녀에게 인간 실존의 고통은


절대 모든 인간 존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게 하면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리해보자 한강에게 세계는, 그리고 가장 놀라운 점은


폭력과 고통이 존재한다가 아니다


폭력과 고통을 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이다


여기서부터 한강을 읽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