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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하건대, 하이트는 현대 유명 지식인 중 가장 이상적인 보수상에 가까울 것이다. <바른 마음>에서 성공적으로 보수의 가치를 학술장에 올려놓았듯, 하이트는 대체로 제각기 다른 방식-종교, 경제, 사회, 성별, 환경 등-으로 진보 쪽에 기울어 있는 출판 시장에서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나쁜 교육>에서 대학 교육의 비생산적인 편향성을 지적할 때 그의 논조는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으며, 본디 연구 자체가 도덕에 대한 모든 논변이 감정적 반응에 이끌리는 부수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던만큼 하이트는 안건을 대체로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소박한 주장 주위로 여러 심리학적, 인지과학적 조사를 둘러싸 논쟁의 뿌리 자체를 파괴하려 하곤 한다. 이런 논쟁이 대체로 사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기만 할 뿐이라며.



<불안 세대> 역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자연스러운 저작이다. 하이트의 시선은 자기 아이들을 포함한 신세대-구체적으로는 9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모든 이들-의 부정적인 변화로 향해 있으며,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 신세대의 정신 건강이 다른 세대의 정신 건강보다 유독 좋지 않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거나 하는 다른 원인은 다른 모든 세대와 신세대를 분리해 비교하는 연구로 반박되며, 심지어 같은 외부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는 상황에조차 신세대의 우울, 불안을 비롯한 부정적 심리 작용과 정신병은 더 특출나게 증폭된다. 여기에-주로 미국 이야기지만-LGBTQ+나 성별 이외의 측면에서 다양하게 갈라지는 정체성의 싸움까지 더해지면 이야기는 더 심각해진다. 다른 모든 신세대가 그랬듯 이 세대는 뭔가 특별히 이상하지만, 그 이상함은 자해, 은둔 등 가만 둘 수 없는 문제를 낳고 있다.



하이트가 주목한 것은 바로 SNS다. <불안 세대>는 흥미로운 가설 설정을 한 서문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데, 자기 아이가 다 자라기도 전에 화성에 가서 그곳 환경에 적응하며 자라나는 것을 방치하겠냐는 말이다. 화성 생활을 위한 환경 설정은 대체로 어른만을 염두하고 설계되었으며, 주변 환경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 성장하는 이 시기에 아이들은 아직 잘 몰라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진 많은 요인으로부터 매우 강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중력의 차이는 신장, 골밀도 등의 많은 신체적 변형을 가져올 것이며 그 외에도 많은 알려진 요인에 더해 알려지지조차 않은 요인이 산재한 환경. 그리고 화성에 가서 산다는 선택지는 부모의 동의조차 받지 않고 아이의 손쉬운 클릭 한번으로 결정된다. 클릭이라는 표현에서 짐작했겠지만, 이는 현실 세계로부터 거리를 두고 디지털 세계에 훨씬 깊숙이 뿌리를 내리는 일에 대한 비유다.



노골적으로 말해 하이트의 지적은 합당하다. 청소년, 특히 여자 청소년이 인스타그램의 파괴적인 위험성을 호소하고 있으며, 남성의 경우-하이트 본인도 인정하듯-많은 부분이 추측에 가깝지만, 그리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았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통속 심리학에 가까우며 나와 주변 사람들의 개인적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인터넷 SNS의 '평등'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글, 사진, 영상으로 구성된 인터넷에서 각 사용자는 거의 익명화된 상태나 다름없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노력하게 되며, 그것이 모종의 탁월함-아름다움, 웃음 등-을 겨루는 과정에서 사람을 중독시키는 기제는 게임 중독에 대한 모든 논란을 하찮게 만든다. 그리고 SNS는 실제로 사람들의 관심을 생산해 팔아야 하는 서비스이기에, 이 관심을 착취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 모든 건 당연한 이야기다.



허나 하이트의 소박한 주장은 다른 미묘하게 거창한 주장과 뒤섞인다. SNS를 비롯한 관심 경제 인터넷 플랫폼은 미성년이 아니라 성인에게도 평범하게 해로우며, 극도로 어린 아기가 매일 유튜브 영상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게 성장에 좋지 않으리라는 당연한 생각과 별개로 그 사이, 사춘기 청소년에게만 어른과 구분되어 특히 규제를 강하게 할 만한 이유는 그리 많지 않다. 나는 굳이 따지면 신세대가 옛 세대와 비교해 이미 디지털 세계에 익숙해져 인터넷과 더 깊숙하게 연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연스레 더 많은 피해를 입고 있을 뿐이고, SNS의 유해함으로부터 차단되어야 하는 건 어른이라도 마찬가지라고 보는 편이다. 그런 결론이 나올 수 없는 건 미국의 특성상 1. 어른은 어떤 식으로 자신을 상처 입히든 그건 자신의 권리이자 책임에 맡겨야 한다는 것과 2. 정반대로 아이는 어떤 식으로든 보호받아야 하며 나이에 따라 모종의 사회적 선이 있어 이 선을 넘기 전까지는 그 자유 정신을 누릴 수 없다는 두 가정이 일반 담론을 강력히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덕분에 하이트는 미국의 근간에 가까운 1번 가정을 포기하고-어쩌면 그 본인도 마찬가지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훨씬 더 최근에 등장한 2번 가정을 공격한다. 그는 이 안전 지향성이 90년대부터 생긴 것임을 지적하며 아이의 학습을 위해 어린 나이에 훨씬 더 많은 걸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때로는 상처를 입기도 하며 실수가 큰 대가로 돌아오지 않는 나이에 이런 불규칙한 세상에 적응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인류 공동체가 비슷한 양육 방식을 채택했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운다. 마찬가지로 2번 가정을 1번 가정과 최대한 분리하기 위해 청소년과 어른 사이의 분명한 선을 긋기 위해 마찬가지로 인류에게 보편적이었던 '성년식'을 끌고와 SNS 규제가 이 위험한 세계에 들어가기 전과 후로 아이들을 어른으로 만드는 모종의 사회적인 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럴듯하지만 설득력이 그리 높지는 않다.



<불안 세대>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 역시 이 두 가지를 공격하는데, 변화한 사회 구조 속에서 비단 SNS만이 이 파국을 불러일으킨 것이 맞느냐는 것과, 그 영향이 책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고전적인 양육과 대비될 정도의 큰 차이를 부르느냐는 것이다. 네이처 지의 <불안 세대> 서평(링크)을 예로 들자면, 하이트는 신세대의 악화된 정신 상태라는 요인을 분석하기 위해 SNS와의 연결고리를-통계적으로 따졌을 때 다른 요인에 비해 여전히 그리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과도하게 강조하고 있으며, 아동 발달 과정에 SNS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 역시 분석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미흡하다는 평을 하고 있다. (서평 말미에는 약간 반농담 반진심으로, 그의 도덕과 감정 사이의 연구가 보여주듯 그 역시 SNS에 대한 거부감에 먼저 사로잡혀 이 자료들에 대한 모든 서사를 자아낸 것에 가깝다는 말이 있고 나 역시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대중교양서는 원래 그런 법이다)



그럼에도 비판자들이 동의하는 것이 있다면, 청소년의 SNS 사용은 확실히 지금보다는 훨씬 규제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SNS가 얼마나, 어떤 식으로 악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분석이 아무리 미흡하더래도 그 결과는 현재부터 일목요연하니, 간단히 줄일 수 있는 것부터 일단 대처를 해보자는 것.1) 하이트의 제안 역시 우리가 아직 모르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약간의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것에 가까우며, SNS의 사회적 특성을 고려하여 개인으로서는 온전히 대처할 수 없으니 좀 더 집단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세상은 붉은 여왕 효과 속에서 살고 있으며 내가 돈을 쓰지 않더라도 통화량이 늘어나면 그 돈은 '줄어들고' 내가 그대로 있으면 내 가치는 주변의 이들에 비해 '떨어지며' 그 밖의 다양한 감가상각의 논리가 가득하다-애석하게도 나는 바로 그 FOMO에 시달리는 불안한 신세대 중 하나라는 뜻이기도 할 테다) <불안 세대>는 엄밀한 학술서보다는 정치적 선동서에 더 가깝지만, 그래서 오히려 괜찮다고 본다. 바로 그 목적으로 쓴 책이기도 하니까. 여기서 뭔가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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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이트의 논조는 현대 사회의 구조 자체에 대한 비판에 더 가깝다. 개편되는 사회 및 경제 구조 속에서 여성 지위가 상승함에 따라 남성 지위가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하락 일로를 걷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겪는 피해 역시 분명하다. 육체적 능력과 도전 정신은 그 가치가 더욱 더 떨어지고 있으며 고학력/고소득 남성의 지위에 비해 그 아래 남성의 지위는 개선된 적이 없다. 아마 이것은 꼭 "유해한 남성성" 운운의 사회적 분위기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점차 반인간적으로 해체되어가는 현실의 영향일 것이며, 서구권에서 비단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반체계적인 정치 세력이 과거에 비해 훨씬 더 힘을 얻고 있는 이유기도 할 테다. 하이트가 추후 쓰고자 하는 <바벨 이후>는 자유민주주의의 승리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아마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논조로-서술하는 책이 될 예정인데, 개인적으로는 <불안 세대>보다 이쪽이 좀 더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