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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를 신중한 사람이라고 자부해왔고, 「생각에 관한 생각」은 그 자평을 박살내버렸다. 고백컨대 나는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저자가 제시한 거의 모든 트릭에 속아넘어갔다. 심리학 책을 적게나마 읽었으니 오류를 적게나마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내 직관은 내 이성보다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을 뿐이었다. 그러나 기분은 전혀 나쁘지 않다. 이렇게 직관에 패배하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중함이 무엇인지 깨닫는 계기였기 때문에.
「생각에 관한 생각」은 사람의 사고가 두 개의 시스템으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시스템 1은 대상을 보고 즉각적으로 발동하며, 대상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어림짐작으로 '감'을 일으킨다. 시스템 2는 즉각적으로 발동하지는 않다. 즉, 느리다. 대신에 꼼꼼하다. 문제는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믿는 경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시스템 2에 행동하는 이상적인 경제 주체(이콘)는 허상이다. 하지만 제목대로 생각에 관한 생각을 해보거나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오류를 저지르고도 그 오류를 정당화하기 위해 더 큰 오류들을 인용한다. 물론 이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신중한 삶도 좋기는 하지만 세상사의 대부분은 별 생각 없이 즉시 대응헤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의 두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은 자신의 뇌가 실시간으로 넘나드는 합리와 불합리의 장벽을 인지하지 못하고 결정적인 오류를 택하기 쉽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본 오류는 인과관계에 대한 오류다. 사람은 연속적인 사건들의 관계를 '인과'로 정의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의 관찰은 피상적일 따름이다. 정말로 인과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표면적으로 보이지 않는 다른 곳에 있을 확률이 높지만, 우리는 일단 보이는 것만 볼 수 있다. 따라서 보이는 것들을 그런대로 연결해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습성이 있다. 실제로는 상관관계이기는 해도 인과관계라고 할 수는 없는 것들, 심지어는 상관관계 축에도 못 끼는 것들도 관찰에 의홰 그럴듯한 맥락이 생성되면 즉시 이야기에 편입되어 지식의 일부로 둔갑하게 된다. 내가 이 오류에 주목한 것은 과학 공부를 하며 그런 경험을 몸소 많이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전자의 존재 혹은 부재가 꼭 어떤 현상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세포 자체에 대안이 있을 수도 있고, 실체는 해당 유전자가 아니라 그 유전자와 상호작용하는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 심지어는 책에 버젓이 대안이 적혀 있어도 집중력이 흔들려 내가 놓치는 경우도 잦다. 그럼에도 당장 아는 것이 부족하니, 나는 내가 이해하고 이름을 알게 된 것들을 이어서 마인드맵을 그린다. 교수님은 내 합리적인 몰이해에 대한 유감을 학점으로 표하시고는 했다.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비슷한 얘기가 나오니 내 지난날의 실수가 다시금 머리에 떠올랐다. '뼈저리게 공감한다'라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여하튼 시스템 1은 유익한 골칫덩어리다. 그렇다고 자유자재로 끄고 켜기에는 시스템 1의 뿌리가 너무도 깊다. 이 책의 저자를 포함해, 행동경제학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도 자기들이 손수 연구한 오류에 스스로 빠지고는 한다. 시스템 1을 억제하고 시스템 2를 사용하는 능력은 훈련으로 터득하기 어려운 것 같다. 다만 오류를 조금이나마 줄이는 방법들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다. 우선은 시스템 2로, 즉 의식적인 노력으로 발휘되는 판단력을 반복 훈련을 통해 시스템 1로 옮길 수 있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전문가의 직관이 이런 경우라고 하니, 나도 내 이해가 내 판단에 무의식적으로 직결될 수 있도록 훈련을 많이 해야겠다. 둘째로 중요한 상황에서는 통계에 기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직감은 세계의 실제 모습을 반영하지 못한다. 정말 객관적인 현답을 내리고 싶다면 정말로 객관적인 자료를 봐야 하고, 통계가 지침이 돼야 한다. 특히 잠시 두드러지는 점을 일반화해서 과대평가 혹은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이것을 놓치면 나는 평균회귀를 1886년에 발견한 골턴보다도 못한 사람이 된다. 그러니 자존심 떄문에라도 주의해야겠다. 셋째로 집단지성을 적극적으로 참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남들이 항상 옳은 얘기만 하는 법은 없으며, 오히려 그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다. 전문가조차도 훈련으로 형성된 자기 주관에 오히려 갇혀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 각각은 별 의미가 없어도 그들의 집합은, 즉 생각들의 통계에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다양한 자료가 다양한 견문으로 이어지고, 다양한 견문은 세계의 본모습을 충실히 반영하는 법이다. 자신이 남들보다 특히 합리적이라는 오만을 버리고 열린 자세로 살아가야 정말로 합리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의 마지막 장은 인생에 대한 중요한 조언이 담겨 있다. 지금 당장 기쁜 일도, 지금 당장 절망적인 일도, 결국 인생 전체를 보면 조금 유별난 '한 개의 점'에 불과하다. 우리는 전체보다 눈에 띄는 부분들에 유독 약하다. 행복은 크기도 중요하지만 길이도 중요하다. 지나간 일은 좋은 것이든 싫은 일이든 잊고 인생 전체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전체적으로 좋았던 인생'이었노라고 죽을 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뚫어지고 쳐다보는 나무 주변으로는 큰 숲이 펼쳐져 있다. 주목 착각에 주의해 인생을 즐겨 보기로 한다.
「생각에 관한 생각」은 정말 재밌고 멋진 책이다. 예전에 「넛지」를 읽고 비슷한 정도의 감흥을 느낀 기억이 나는데, 행동경제학 책은 취미로 읽기에 정말 좋은 책인 것 같다. 비록 배경지식과 시간의 한계로 자주 읽지는 못하겠지만 읽을 때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정말로 달라지는 기분이 든다. 이런 경험을 선사한 저자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하고 싶다. 불과 작년에 죽었다고 들었는데, 지금 찾아보니 자연사도 아니고 조력사를 택했다고 한다. 저자는 평소에 "내게는 매몰비용이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향년 90세, 긴 삶에서 만년의 고통보다는 보람차던 인생 전체를 보고 아쉬움이 없다는 판단하에 스스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 같다. 행동경제학의 아버지다운 선택이다. 오늘은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김에 그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며 잠을 청해야겠다.
야호~ - dc App
북마크에 묵혀뒀다 지금 꺼냈는데 재밌게 잘 봤음ㅋㅋ 인과의 오류가 정말 흥미롭네. 내가 언젠가 읽었던 복잡계에 관한 책도 같은 얘기 하더라. 인과를 어떻게든 찍어내야한다는 강박때문에 억지 이론이 난립한다고ㅋㅋㅋ
방금 다 읽고 검색해서 글 보게 된건데 덕분에 한번더 정리 된거 같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