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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앤솔로지라서 다른 리뷰처럼 도입부 쓰기 애매해 도입부랑 한줄요약은 없음ㅎㅎ;;

이번에 허블에서 낸 한국과학문학상 수상 작가들을 모아서 낸 앤솔로지 단편들이다. 제목은 표제작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음... 앤솔로지 제목의 의미는 대충 김초엽 소설의 컨셉처럼 다양한 우주(이야기)의 파편들(단편)을 의미하는 게 아닐련지?

하나하나 리뷰하려고 했었는데 김초엽 단편 리뷰가 통째로 날아가면서 의욕을 잃어버렸음. 한꺼번에 적당히 리뷰하니 궁금한 사람들은 직접 읽어보셈.


김초엽 비구름을 따라서

우리가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평행세계가 존재하게 되고, 그 평행세계와의 교류는 철저하게 '사라져도 티 나지 않는 것들'에 의해서만 일어날 때의 이야기다.

딱히 SF는 아니고, 감성과 상상력으로만 진행되는 판타지 소설이다. 감성 코드가 맞으면 여운 찐한 감동 서사일지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그런갑다...하고 읽으면 된다.

참고로 거의 중편 가까이 되는 분량인데, 내용은 거의 40페이지 단편급이다. 김초엽 작가가 원래 압축력이 없는 줄은 알고 있지만, 3인분의 회상을 구구절절 풀어내는 덕에 분량이 길다...

김초엽 작가가 풀어내고 싶은 여러 상상력을 보드게임의 형식을 빌려서 자주 쏟아내니, 김초엽의 발상력을 알고 싶다면 이 단편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나름 세계에 대한 책임을 얘기하면서도 세계를 억압하는 자에 대한 저항도 틈새에 끼워넣는데, 막상 결말은 세계에 대한 책임은 어디로 가고 이세카이로 넘어가버려서 책임 유기가 결말인가 싶기도 하다.

분량 많은 겉절이가 늘 그렇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말들을 군데군데 쑤셔넣었다는 걸 인지하고 읽는 편이 좋다.

막상 SF가 아니라 그냥 감성 판타지를 쓰니까...... 생각보다 낫다. 쓸데없이 논리적인 척하는 것보단 그냥 '낭만있는 설정' 하나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게 훨씬 낫다.

어쩌면 김초엽은 한국문단이 판타지를 허락해주지 않았기에 SF를 쓸 수밖에 없던 걸지도 모른다...!


천선란 우리를 아십니까

좀비 연작소설인데, 이전에 썼다던 두 편은 몰라도 된다고 한다. 나도 모른 채 읽었는데 딱히 신경 쓰이진 않는다. 대충 좀비가 됐지만 자의식을 가진 레즈 주인공이 무지성 좀비가 된 레즈 아내 데리고 거북이를 바다로 데려다주는 과정 중에 좀비가 되기 전 레즈 아내의 녹음을 듣는 이야기다.

대놓고 여남커플, 헤테로라고 서술하는 것도 그렇고, X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퀴어 멘트들이 좀 있다. 이렇게까지밖에 표현을 못하나 싶기도 한데......

사실 이런 건 굉장히 사소한 영역이고 초반에만 등장하는 거라 넘겨도 된다. 진짜 고비는 녹음 형식으로 이뤄지는 장문의 대사다(...)

겉절이 대사 센스는 파멸적이라고 생각하는데, 파멸은 과장된 표현이고, 실제로는 X 감성 못 따라가면 쉽지 않을 뿐이다.

김초엽도 그렇고 천선란도 그렇고 작품 전반에 깔린 감성과 분위기가 작품을 꽉 붙들고 있어서 이것부터 소화시키지 않으면 독서가 안 되는 수준이다.

그리고 천선란 특) 인간혐오 숨쉬듯 함. 이건 뭐 천선란 읽을 정도면 다 아는 사실이겠거니 싶지만.


김혜윤 오름의 말들

'오름'이라는 거대 달팽이 외계인들이 와서 그들과 소통하는 연구소가 세워지지만 부진한 실적과 성과로 인해 예산이 다 날아가게 생긴 연구소의 이야기다...

라고 하지만 그냥 쉽게 이해해서 과거 알앤디 예산 삭감 건을 다루는 소설이다. 진짜 작품 내적으로 어떻게 이해해보려는 것보단 이렇게 이해하는 게 훨씬 쉽고 빠르고 간편하다.

문제는 이게 SF소설인데 전개는 전혀 SF소설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예산 삭감 당하고 외계인들은 생체실험이나 테마파크행 될 위기 속에 어떻게 짱짱한 성과를 내는 게 아니라 그냥 외계인 등짝에 올라서 농성 시위를 하려는 것으로 끝난다.

솔직히 말해서 장르적인 작가는 아니다. 정치적인 작가가 장르를 끌어다 쓰고 있다. 외계인가의 소통을 너무 감성 넘치게만 접근했는데, 그 소통 내용은 정말 일말의 단서조차 없는 걸로 봐선 그냥 '소통 그 자체'에만 중점을 두고 그 세부적인 내용은 텅텅 빈 듯하다.

그러니 연구소 위기에 ^무대응^ ^무계획^ ^무대안^ ^그저 농성시위^가 나온 게 아닐까? 이게 그냥 시민단체 이야기면 뭐 전문가 집단도 아니니 이해할 여지가 있지만, 얘넨 연구자들이잖아... 전문가들이라고......

앤디 위어가 쓴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외계인 소통 파트를 읽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훨씬 전문가스럽고, 훨씬 연구자다우며, 훨씬 재미있거든......

디테일이 그야말로 제대로 뭉개진 소설이었다.


청예 아모 에르고 숨

복제인간을 통해 진정한 사랑에 대해 데카르트식 성찰로 결론을 내는 이야기다. 근데 작가가 진짜로 뭐 엄밀한 논증을 거치는 건 아니고, 그냥 논증 파트가 나올 때마다 아~ 작가는 이런 식으로 사랑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넘기는 편이 좋다. 일단 철스퍼거는 이거 읽으면 호흡곤란 옴.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뻔했다. 복제할 때 유전적 결함을 일부러 심어 모체에 대한 무한한 순종과 애정을 쏟는 복제체를 통해 아가페적 사랑을 깨닫는 게 소설의 주된 내용이자 핵심 주제인데......

자기에게 아가페적 사랑을 알려준 전남친의 복제체가 현남친이었다는 반전이 막판에 드러나는데, 이는 작중에 밝혀진 사실대로 따지면 모체에 대한 애정과 순종을 제외하면 모체와 다를 게 없는 복제체가 주인공에게 질린다며 떠났다는 사실이 나온다.

여기서 되게 많이 당황했음...... 복제체 맞음? 그렇다고 현남친이 전남친의 불완전한 복제였다거나 그런 언급은 전혀 없는 데다가, 전남친은 마술사였는데 현남친은 연구자로 나온다. 근데 이 두 직업간의 괴리를 좁혀줄 서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순된 정황을 작중에서 어떻게든 끼워맞출 설명이야 내놓을 수 있지만, 그런 게 가능한 것과 그걸 작품이 유도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후자가 있으면 작가의 의도를 내가 당혹감에 미처 읽어내지 못한 것이기라도 하지......

더군다나 아가페적 사랑을 유전적 결함을 고의로 넣은 복제체로부터 깨닫고 인정하게 되는 서사도 되게 유물론스러워서 좀 기묘(혹은 기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건 내 성향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만......

앞선 세 작품에 비하면 상대적 선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조서월에 비하면 범부일 뿐......


조서월 I'm Not a Robot

사막에 사는 로봇정비공 프랭크와 매번 사막으로 임무를 수행하러 나갔다가 고장나면 돌아오는 로봇 랜슬롯의 이야기다.

상처 받은 인간인 프랭크가 사람에게 다시 닿기 위해 소설을 쓰지만 매번 캡차가 내는 시험인 '로봇이 아닙니다'를 통과하지 못해(사막에 너무 오래 살아서 구급차나 도로표지판이 어떻게 생겼는지 까먹었다고 한다) 번번이 좌절하고 만다.

랜슬롯은 프랭크가 쓰는 소설을 듣지만 분석만 가능할 뿐 감상을 들려주는 건 불가능하다. 거기에 랜슬롯은 자기가 맡은 임무는 발설이 불가능하게 프로그래밍돼 있어서 그저 프랭크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다.

둘 사이의 관계를 통해 조서월은 '소설 쓰기'가 무엇인지 말한다. 몰라야 쓸 수 있는 것이라고.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쓰는 것이라고.

그렇기에 프랭크가 더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그는 쓰기를 멈췄고, 타인에게 닿기를 포기한 그는 진정으로 사막에 고독한 존재로 남아 죽게 된다.

프랭크가 죽기 전 랜슬롯과 프랭크의 만남은 상당히 희극적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때 몇 가지 사실이 밝혀지면서 둘 사이의 관계가 생각보다 더 깊고도 내밀했음이 드러난다.

진짜 반전은 랜슬롯의 임무인데, 이 랜슬롯이 수행하는 임무야말로 랜슬롯의 그간 행적과 대조돼 그가 '로봇'임을 더할 나위 없이 증명해준다. K-SF에서 수없이 나오는 유사 로봇들과 비교하면 랜슬롯은 그야말로 진짜배기 '로봇'인 것이다.

그것 외에도 겉절이에서 거의 필력 뽀록나기 쉬운 장광설이 여기서도 나오는데, 조서월은 여지없이 본인이 서사와 재미 TO를 운으로 차지한 게 아님을 증명했다.

앞선 소설들처럼 이 소설 역시 사막의 풍경이 먼저 제시되고, 사막의 삭막함과 메말라가는 죽음의 이미지가 작품 전반에 은은히 깔려있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해도 작품 감상에 큰 문제는 없다.

역시 믿고 읽는 꿀잼 작가 조서월이다. 아마 김필산이나 최우준이 여기에 참여했다면 앞선 네 작품과 분위기도 성향도 판이하게 다른 소설이 나왔을 텐데, 다행히 조서월은 삼사라 때부터 K-SF의 감성을 기묘하게 캐치하고 있는 만큼 큰 위화감은 없었다.

이거 하나 생각하고 이 책을 사는 건...... 썩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노트는 홍보 수단이 여기밖에 없어서인지 몰라도 이런저런 사실을 많이 알 수 있었는데, 여러모로 조서월의 첫 책이 기대되는 바다.